[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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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노동의 흔적

김창길 2015. 12. 25. 19:07

 

 

 

폐광산이 그대로 남아 체험관이 됐다. 광부들이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던 수직갱 조차장에서 어린이들이 손뼉치며 웃고 있다. 목욕탕, 탈의실, 세탁실은 광부들의 치열했던 검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석탄역사체험관으로 탈바꿈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이야기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에 눈이 내린다. 체험관 뒤로 56년동안 캐낸 석탄 폐석이 쌓여  검은 야산이 됐다.

 

 

 

"동원탄좌가 사라지면 사북 56년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석탄유물보존회 전주익 기획팀장이 동원탄좌 역사에 대해 운을 뗐다. 1948년 채탄을 시작한 동원탄좌는 아시아 민영 최대의 석탄회사였다. 두 차례 오일 파동으로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광부를 산업전사라 칭송했다. 한 때 5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석탄으로 먹고 살았다. 동네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니고, 운탄업자들은 포대에 돈을 쓸어모았던 시절도 있었다.
"사북은 탄광 노동운동의 중심지입니다."
1980년 사북항쟁이 일어났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던 탄광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당시 광부들의 월급체계는 도급제였다. 생산량만큼 월급이 책정되는 방식. 경영주편을 든 관리직 종사자들은 꼬투리를 잡고 광부들의 노동량을 가볍게 책정했다. 부당한 월급체계는 사측 입장에 동조하는 어용노조의 도움으로 지속됐다.
4월 18일 광부들은 노조지부장 부정선거의혹을 둘러싸고 집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집회 불허를 통보받은 광부들은 분개했다. 3일 후 21일 광부들을 사찰하던 사복 경찰관이 발각돼, 광부들을 치고 달아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통사고로 흥분한 광부들은 사북의 주요 건물들을 습격하고 기물을 파괴했다. 3일 후인 24일 노, 사, 정 대표가 합의하며 사태는 일단락되는듯 했다.
사북을 지켜보던 전두환 계엄사령부는 이 사건을 '광부난동사건'으로 규정했다.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은 4.24합의를 깨고 200여명의 광부와 주민들을 연행하며 군홧발로 짓밟았다. 검찰은 31명을 구속 기소하고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했다. 이원갑씨 등 7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녹슨 궤도에 멈춰선 광부들의 인차에 눈이 내린다. 1칸 8명씩 타고 수천미터 막장에 들어가는데 1시간이다. 광산은 갑, 을, 병 3개조로 24시간 채탄작업이 이루어졌다.

 

 

 "검은 가루는 아무리 씻어내도 배꼽에 남아 있었습니다. 광부들의 아내 배꼽에도, 서울옥 아가씨 배꼽에도 탄가루가 묻어나왔죠"
사북항쟁, 3.3투쟁 등 사북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뿌리관을 지키던 퇴역 광부가 옛 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첩첩산중인 사북의 물가는 도시보다 비쌌다. 태백에서 3벌하는 옷 값이 정선 사북에서는 1벌 값이었다. 그 만큼 오기 힘든 곳이었다. 광산이 잘 나갈때는 남편 고생 모르고 돈을 펑펑 쓰는 아내들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광부 아내들의 막장 체험이다. 지옥같은 막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광부들의 아내는 마음을 고쳐잡았다.
"광부의 아내들도 막장에 들어가면 눈씨울이 붉어졌죠"

 

 

 

 

하얀 눈만 껌뻑이며 검둥이가 된 광부들은 장화를 먼저 씻었다. 동원탄좌 세화장이 2004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1995년 주민 단위로 일어난 3.3투쟁은 폐광지역 산업시설개발에관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1988년 347개에 달하던 전국의 탄광들은 1994년에는 대형탄광 10여개만 남았다. 폐광촌에 실업자가 넘쳐났고, 지역 경제는 무너졌다. 검은 숨결이 끊어지는 상황에 사북 주민들은 힘을 모았다. 대정부 투쟁을 벌여 끝내 폐특법을 만들어냈다. 카지노를 기반으로 만든 강원랜드가 사북 검은 산 위에 들어섰다.
"흘러간 모든 것들이 유물이 된느 거 아닙니까?" 
리조트가 사북에 들어서자 주민들도 검은 도시에서 벗어나려했다. 탄가루 날리는 광산을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석탄시설이 사라지면 피땀흘렸던 광부들의 흔적도 없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퇴역 광부들은 석탄유물보존회를 결성했다. 동원탄좌의 산업시설들을 지키기로 뜻을 모았다.

 

 

 

광부복을 나누어주던 작업복실에 서양미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석탄산업이 활황일 적, 사북에 다녀와야 진정한 기생이 된다는 말도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은 5명의 퇴역광부가 지키고 있다. 홈페이지도 없고, 특별히 홍보활동을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 2004년 멈춘 동원탄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5. 12. 사북 동원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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