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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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의 저잣거리

김창길 2017. 1. 12. 22:51

 

 

 

성요셉 아파트 2017. 1.

 

 

변두리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서울 한복판에 이런 오래된 동네가 있을 줄이야. 고층 빌딩 병풍에 둘러싸인 동네에는 새벽에 어시장도 열린다. 고층 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도 있다. 서울 중구 중림동(中林洞) 마을이다.

 

 

 

중림동 도시환경 정비사업 구역. 2017. 1.

 

 

 

중림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도 있다. 약초를 키우던 밭 자리에 세운 성당이라 약현(藥峴)성당이라 불렀다.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1886년(고종 23년) 이후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자 프랑스 신부 코스트(Coste, 한국이름 고의선)가 설계해 1893년에 완공했다. 명동 성당이 4대문 안의 한양 천주교 신자를 위한 예배당이었다면, 도성 밖 신자들을 위한 성소가 바로 약현성당이었다.

 

 

 

중림동 도시환경 정비사업 구역. 2017. 1.

 

 

 

약현성당 바로 북쪽에는 성요셉 아파트가 있다. 성당의 신부들과 신자들이 살던 아파트였을까? 건축학자들은 성요셉 아파트가 성당의 수익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파트 구조를 보면 건축하자들의 의견에 수긍하게 된다. 아파트는 북향으로 아파트 내부에서 성당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복도다. 성당쪽인 남쪽으로 열린 출입구도 없다. 1971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다.

 

 

 

중림동 사회복지관에 걸린 옛 중림동 2017. 1.

 

 

 

오래된 아파트의 나이처럼 방앗간, 세탁소, 간판 없는 슈퍼 등 나이 많은 가게들이 문을 닫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다. 특이한 건, 최근 몇 개월 전부터 1층 상가에 문화예술인들이 찾아왔다. 40년 된 옛날 떡방앗간 옆 빈 상가에 '커피방앗간'이 생겨났고, 아이디어 공방점 'ㅋㅋ'도 서촌에서 이사 왔. 아파트 나이보다 어린 사람들이 성요셉 아파트 상가를 찾는 것이다.

 

 

 

 

중림동 어시장

 

 

아파트 골목길 아래쪽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온 난전 어시장이 새벽에 문을 연다. 칠패시장이라 불렸던 중림동 시장은 종로시전(鍾路市廛), 이현시장(梨峴市場)과 함께 한양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마포 나루에서 만리재를 넘어 가져온 새우젓 등 어물전이 깔렸고, 한양의 5대 싸전(쌀시장)도 있었다고 한다. 난전을 단속하는 금난전권이 폐지된 이후에는 관의 보호를 받는 종로시전보다 규모가 커졌다. 일제강점기에는 '경성수산시장'으로, 광복 뒤에는 '중림시장'으로 불렸다. 그러던 중, 1972년 육영수 여사가 도심 한복판에 재래시장이 성행하는 게 보기 좋지 않다해서 수산물은 노량진으로, 채소시장은 가락동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중림동 어시장

 

 

새벽 3시면 트럭들이 길가에 늘어서며 수산물 도매가 시작된다. 인근 생선가게와 식당 주인들이 많이 온다. 어물 난전은 날이 밝으면 파한다. 때문에 그곳에 어시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추운 겨울에는 새벽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깡통난로와 화로가 등장한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 2017. 1.

 

 

왕관 댄스화, 모던화, 싸롱화.....서울역 쪽으로 이어지는 다리 염천교는 수제화 거리로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서울역에 생긴 화물창고에서 시작된 최초의 수제화 거리다. 한때는 전국 수제화 물량을 연천교 제화상가에서 공급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번성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대형 신발업체와 값싼 중국산에 밀려 쇠퇴한 모습이다.

2017. 1. 중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