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동안 퍼부었던 폭우가 그치고 물만골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도심 빌딩 불빛보다 화려하지 못하지만 황령산을 은은히 밝히는 물만골의 불빛이 따뜻하다.


부산 황령산 계곡에 자리한 동네다.

예로부터 물이 많이 나는 계곡이라 해서 이런 정겨운 이름이 붙었다.

물만골은 격동의 현대사를 지켜보며 이 땅의 숱한 민초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을 보듬었고, 급격한 산업화 동안에는 뿌리 뽑힌 농촌이주민들의 고향이 됐다.

부산에 큰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쫓겨난 철거민들도 물만골의 너른 품으로 찾아들었다.

물만골의 맑은 물은 외롭고 힘든 서민들의 눈물을 기꺼이 씻어줬고, 타는 목을 축이게 했다.

내일을 살아갈 힘을 보탰다.

물만골 사람들이 폭우에 유실된 하천 축대를 쌓고 있다. 주민들이 골목조, 하천조로 나뉘어 마을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이제 물만골은 400여가구 1500여명의 주민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살아가는 지역공동체가 됐다.

그러나 부산 연제구청의 지적도에는 물만골이 없다.

분명히 정 많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지만 물만골은 ‘유령 동네’다.

무허가 주택촌이기 때문이다.

그저 개발만이 최고인 줄 아는 세상. 당국이나 개발지상주의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공공미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눅눅하고 퀴퀴했던 동네 담벼락이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었다.


1991년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구청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무지막지한 철거반원들이 겁이 나고 두려웠지만, 사람들은 당당하게 맞섰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뛰쳐나와 싸웠죠. 그야말로 꼬부랑 할머니부터 동네 강아지까지도 철거반에 맞섰답니다. 하하하.”

최진권씨(44)의 말이다.

물만골 사람들은 ‘내 집’을 지켜야겠다고 싸운 것이 아니란다.

‘우리 동네’를 위해서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1998년, 이번엔 구청이 물만골을 관통하는 황령산 순환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마을을 통째로 가르는 것, 그것은 곧 물만골 사람 모두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였다.


 

집 앞에 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너머로 동네 아낙이 텃밭을 꾸미고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마을 사람들의 연대보증으로 신용대출도 받았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마을 전체부지의 3분의 1을 구매했다.

살아가는 게 넉넉지 않은 사람들로선 대단한 성과다.

토지대장에는 물만골 모든 가구주의 이름이 올라있다.

공동구매 과정에서 저절로 ‘물만골 공동체’가 생겨났다.

물만골 공동체는 마을의 공동사업도 시작했다.

생계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싸우지 않고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다.

부녀회 봉제사업, 노인회 자원재활용사업, 건설공동체 일자리 나누기 사업 등이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주거정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돗물이 없고, 비만 오면 쓸려 내려가는 둑도 걱정이었다.

동네 얼굴도 단장하고 있다.

마을 표지를 세우고, 담벼락에는 공공미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그림도 그렸다.

타박타박 소리 나는 나무 계단도 만들었다.

 

 

 

 

 

물만골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동체를 꾸리지만, 걱정이 가신 것은 아니다.

이제 순환도로는 물만골 구간을 빼고는 완공됐고, 최근 취락지구로 지정되면서 투기꾼들이 눈독을 들인다.

마을회관에 나온 물만골 공동체 김이수 위원장, 권병안 간사가 작은 한숨을 내쉰다.

노란 산수유 꽃이 어느새 앙증맞게 피어났다.

물만골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따뜻한 기운을 담은 봄이 올까.

오늘도 물만골 맑은 물은 아랫동네 회색빛 아파트촌으로 흘러간다.

 

2010년 3월 부산 물만골

 

 

 

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