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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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김창길 2013. 5. 20. 18:39

 

 

손녀의 손을 잡고 한 할아버지가 임진각 옥상 전망대에 오른다. 동전을 넣은 망원경을 손녀에게 건네며 북한 개성 송악산 방향으로 손을 가리킨다. 황해도 옹진군에서 피난 온 김기웅(인천, 72) 할아버지는 북한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7살 손녀에게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키가 장군처럼 컸어. 뱃사람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내다 팔았지. 맘씨도 좋아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도 물고기를 나누어 주었어. 시온이도 마음씨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어디 있냐며 머리를 긁적이던 손녀는 경의선 열차가 지나가자 박수를 친다.

 

저거 타고 할아버지 옛날 집 가면 되지?”

 

경의선 열차가 임진강 자유의 다리를 건넌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으로 북측에 있던 국군 포로 12773명이 남으로 건너와 자유의 다리라 불렀다. 임진강을 건너간 열차는 도라산역에서 남쪽으로 회차한다. 군사분계선 앞에서 열차는 더 이상 북진할 수 없다. 20009월에 시작된 남북 경의선복원사업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197274일 오전 10, 남북한은 서울과 평양에서 조국통일의 원칙을 동시에 발표했다. 이른바 7.4.남북공동성명으로 국토분단 이후 통일과 관련해 남북이 최초로 합의 발표한 역사적인 공동성명이다. 같은 해 101일 군산분계선 7km 이남 자유의 다리 바로 아래 실향민들을 위해 임진각이 착공됐다. 1985년에는 북한 고향 제사를 위한 망배단이 임진각 앞에 마련됐다. 북한의 자연 풍경을 담아낸 7개의 화강석 병풍으로 만들어진 제단이다.

 

 

 

 

지난 7일 이산가족 200여명이 경의선 열차를 타고 임진각 망배단을 찾았다. 서울역에서 열차에 오르는 고령의 실향민들은 다음 날이 어버이날인지라 감회의 눈물을 흘렸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2013331일 기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8800명 가운데 사망자가 54722명이다. 40%가 넘는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은 70대가 30.3%(22470), 8040.7%(3145), 90대가 9.6%(7123)이다. 70세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이 80%가 넘는다. 남북이산가족상봉은 지난 201011월에 끝난 제18차 상봉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자유의 다리 너머로 해가 진다. 붉게 물들던 임진강에도 어둠이 깔린다. 망향의 노래비 스피커에서 잃어버린 30년이 흘러나온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년 세월...’

 

 

 

 

2013. 5. 임진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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