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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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여름나기

김창길 2013. 8. 12. 16:01

 

북극곰이 얼린 물고기와 닭고기를 먹고 있다.

 

 

최장기 장마가 끝나자,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다.

아지랑이 피는 아스팔트, 인산인해를 이루는 해수욕장과 수영장 등 폭염 사진이 신문을 장식한다.

때로는 더위에 지친 동물들의 표정도 종종 등장한다. 

동물 사진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표정과 달리 초상권이 없다는 점에서 취재가 편하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동물들의 얼굴 방향은 주로 먹이를 통해 유도한다.

 

 

폭염때문인지, 야생성을 잃어서인지 백수의 왕 사자는 무료한 표정이다.

 

 

동물원 사파리에 사진기자들이 모였다.

동물원측에서 동물들의 여름나기 보도자료를 배포했기 때문.

익숙한 소재도 있었지만, 기린 여름 특식과 코뿔소 머드팩은 참신한 소재였다.

30대가 대부분인 사진기자들이었지만, 동물을 보는 표정은 어린아이들과 비슷했다.

"와!, 기린 정말 길다!"

"와!, 코끼리 정말 크다!"

유치원생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육사가 준비한 기린 먹이를 나무 구루터기에 넣었다.

여름 특식으로 수박과 얼린 오이 및 당근 먹이었다.

하지만 기린은 수박과 얼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홍보실 관계자에게 물었다.

"기린이 수박과 얼음은 안먹네요."

"네. 풀만 놓기에는 색깔이 안예뻐서요."

사진기자들의 표정이 이그러지자, 사육사는 수박 위에 풀을 놓고 기린이 수박을 먹는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단 몇 컷 셔터를 눌렀지만, 동물원측에서 왜 이런 무리한 설정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사진기자가 투덜댄다.

"저 수박 내가 먹고 싶다!"

 

 

 

 

사파리 계곡에서 수박을 먹는 코끼리다.

동물원측은 아침에 우리에서 나온 코끼리가 요즘 계곡에서 목욕을 한다는데,

그날은 코끼리가 계곡물에 들어갈 조짐이 없었다.

사육사는 코끼리를 물속으로 유인하기위해 수박 한통을 물속에 던졌다.

수박맛을 아는지 코끼리는 그제서야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론, 코끼리는 수박만 건져먹고 냉큼 땅으로 올라왔다.

 

 

 

 

다음은 사육사들이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코뿔소 머드팩이다.

말은 그럴싸한데, 전혀 시원해보이지 않는 장면이다.

날씨가 더울때 코뿔소는 진흙 목욕을 한다는 사육사들의 설명이지만, 포토제닉하지 않다.

오히려 더워 보인다.

 

 

 

 

기린, 코끼리, 코뿔소의 여름나기를 사진에 담았지만, 사진기자들의 눈에 부족했다.

눈치를 보던 동물원 홍보실 관계자는 호랑이에게 물을 뿌렸다.

물을 싫어하는 호랑이는 머리를 돌리며 물을 털어냈다.

위 시잔만 보면 더위에 지친 호랑이가 연못에 뛰어들어 '어흥, 시원하다!'라고 생각할 듯 싶지만,

사실은 '아, 이게 웬 물이람'하는 귀찮은 표정이다.

포악할 줄 알았던 호랑이는 위에서 쏟아지는 물을 피해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치타가 암벽 그늘 아래서 쉬고 있다.

 

 

모든 잘못을 동물원 홍보실쪽에 돌리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몇몇 신문사의 사진기자들이 홍보실의 협조를 얻어 코끼리에게 물을 뿌리는 장면 등을 찍는다.

더운 아프리카에서 사는 코끼리인데,

왜 한국의 여름 날씨에 코끼리가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나도 궁금하다.

먹지도 않는 얼음 야채와 수박을 기린 여름 특식으로 제공하는 홍보실쪽의 과잉 홍보 마인드도 문제다.

동물들은 어쩌면 이 폭염이 즐거울지도 모른다.

 

추운 북극지방에서 사는 북극곰에게 얼음 특식을 주는 장면은 그래서 자연스러워 보이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육사가 얼음 특식을 던져주자 북극곰이 물에 풍덩 들어간다.

특식이 좋았는지 북극곰은 앞발로 물장난도 쳤다. 

 

 

 

 

2013.8.11. 폭염 속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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