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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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꽃피는 달동네

김창길 2014. 5. 1. 13:55

 

 

 

 

슬레이트 지붕이라도 좋다. 지금 이대로 살 수 있다면. 떡 하나, 작은 음료수 한 병도 나누던 동네 인심이 재개발을 버텨냈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냥 달동네라 불리던 대전 대동 산1번지에 봄이 왔다.

 

대동 달동네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이었다. 배나무가 많아 배골산이라 불리던 계족산 남쪽 줄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산비탈을 깎아 작은 평지를 만들고 천막과 판자를 둘러 비바람을 막았다.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비가 새던 판자 지붕을 아스팔트 기름으로 바르거나 슬레이트로 바꿨다. 아스팔트 찌꺼기로 코팅한 루핑 지붕은 없어졌지만 대동 달동네는 아직도 슬레이트 지붕이 비와 눈을 막아주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뭐해. 관리비도 못 낼 텐데.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어.”

 

40년 전, 전셋돈 4000원을 들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서효열 할머니(86)가 지난 일을 회상했다.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 나누며 사이좋게 지내던 달동네는 10여년 전부터 마을을 휩쓴 재개발 광풍으로 뒤숭숭해졌다. 집값이 오르자 주인들은 집을 팔았고, 떠난 이웃집은 빈집으로 남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금세 흉물스럽게 변해버렸고 마을 공터에는 쓰레기가 넘쳐났다.

 

 

 

 

 

 

을씨년스럽던 마을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07년부터.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도와주는 대동종합사회복지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폐가들을 정리하고 방치된 쓰레기도 치워버렸다. 지역 미술단체인 오늘공공미술연구소 사람들도 찾아와 허름한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었고 바람개비, 낙하산 등 조형물들을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동네가 화사해지자 바뀐 분위기를 체감한 동네 사람들은 좋은 동네를 만들어보자며 마을가꾸기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도심재생사업인 무지개프로젝트에 공모했다. 때마침 원주민을 내쫓는 기존 뉴타운 재개발 방식에 회의를 품던 대전시는 대동 달동네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주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마을을 살기 좋게 꾸며 나갔다.

 

 

 

 

 

 

마을 산꼭대기에 풍차를 세웠다. 하늘공원이라 이름 짓고 전망대를 만들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하늘공원 연애바위가 입소문을 타자 팔짱을 낀 연인들도 줄을 이었다.

 

“부럽지 뭐. 우리 젊었을 적엔 상상도 못했는데.”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김홍분 할머니(76)가 동네 사랑방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침이면 마을 공동화장실엔 긴 줄이 생겼고,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아낙들은 뒷산 너머로 물을 길러갔다. 산을 자주 넘다보니 동네 아낙들은 전망 좋고 쉬기 좋은 바위를 발견했다. 작은 판잣집에 아들, 손자며느리 다 살다보니 젊은 부부나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뒷산에 올랐다.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정을 나누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랑이 오갔는지 연애바위라고 불렀다.

 

 

 

 

 

 

사랑방을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도시락까지 챙겨온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왁자지껄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봄볕이 좋아 복지관 요가수업을 땡땡이치고 요가 선생님과 함께 봄소풍 왔단다. 봄볕이 좋아 배골산 배나무밭에 꽃이 만발이다.

 

 

 

201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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