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여행지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여행지의 랜드마크 앞에서 사진을 한 방 밖고 서둘러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정말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을까?

 

 

 

Martin Parr. Greece, Athens. Acropolis. from small world 1991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신전 앞에서 한 단체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결혼식 단체기념사진처럼 차렷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동양인 단체관광객들과는 달리 서양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며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매그넘 사진작가 마틴 파(Martin Parr)는 랜드마크를 기억하는 기념사진에 대한 익살스런 장면을 포착한다.

 

기념사진은 증명사진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증샷이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물을 남긴다. 그런데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팩트 하나만을 전달할 뿐, 기념사진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념사진은 항장 재미가 없다.

 

BC 432년에 완성된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재단 건물이다. 댕대 최고의 조각가와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2400여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파르테논 신전은 동양인 관광객들에게 사진 배경이 될 뿐이다. 이 단체관광객은 한국인이라고 알려졌다.

 

 

 

 

 

 

Martin Parr. Thailand. Bangkok. The Grand Palace. 1998

 

 

타이왕궁 대궁전에서 사진을 찍는 백인 관광객이다. 기념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입가엔 어색한 미소가 보인다. 아마도 같이 관광온 식구나 친구들에게도 어색한 미소를 강요했을게다.

미놀타 자동카메라를 든 한 손에는 기념품 가게에서 구입한 왕궁 사진이 쥐어져있다. 관광객은 그의 눈과 머리로 타이왕궁을 기억하지 않는다. 돈 주고 산 사진으로 타이 왕궁을 거머쥐고 있다. 타이왕궁은 대머리 미남배우 율브린너가 출연한 '왕과 나'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Martin Parr. Mexico. Tulum. Carnival Cruise Ship. 2002.

 

 

마야 유적지가 있는 멕시코 툴룸 지역의 해변가에서 풍만한 몸매의 두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는 여인은 해변가에서 요염한 자세로 앉아 있는 비키니 입은 금발 미녀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은 백사장이 펼쳐진 해변가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비키니를 입은 해변의 미녀들과 비교되기 싫어서일까? 풍만한 두 여성은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채 해변과 좀 떨어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Sapin. Galice. St Jacques de Compostelle. 1993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방문한 관광객이 대성당이 그려진 비닐봉지에 기념품을 담아가고 있다. 이 대성당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의 갈리시아로 이어지는 기독교 순례길을 따라 퍼져 있는 순례자 성당 중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한다. 관광객은 이곳에 오기전에 파리 개선문을 순례했을까? 개선문이 그려진 그의 티셔츠는 생뚱맞게 하드록 카페라고 써있다.

 

 

 

미국 문화비평가 수잔 손택은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채집의 속성을 갖는다고 한다.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 장소를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망이다. 목표물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른다. 전투에서 이긴 군인이 전리품을 챙기듯, 여행자들은 사진을 챙긴다. 밀양 송전탑 농성장 싸움을 마친 여경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건 이런 마음 때문일게다. 승리의 인증샷! 

 

카메라를 두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지가 두번 다시 오기 힘든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기념사진을 찍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 그러나 만약 용기를 내어 카메라 없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아마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기 위해 가족들의 얼굴을 한번 더 쳐다보지 않을까?

201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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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