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다순구미 마을의 조금새끼 본문

- 찍고, 쓰고

다순구미 마을의 조금새끼

김창길 2014. 9. 21. 18:49

 

가난한 뱃사람들이 유달산 너른 품에 안겼다. 마을 뒷산에 오른 아낙들은 먼 바다로 나간 남편과 조금새끼들을 위해 기도한다. 붓꽃 빛깔로 노을이 떨어지는 바다는 아낙들의 기도 소리를 싫고 먼 바다로 나아간다.

 

 

목포는 항구다. 1896년 개항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목포다. 항구가 생기자 목포 앞바다에서는 해상시장인 파시가 사시사철 열렸고, 돈 냄새를 맡은 가난한 뱃사람들이 모였다. 몸뚱이 말고 가진 것 없는 그들은 바다가 굽어보이는 유달산 남쪽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는데, 따뜻했다.

 

아따, 따숩은 기미네

다순구미 마을. 따뜻하다는 의미의 전라도말 따숩다(다순)’와 후미진 곳을 일컫는 기미(구미)’를 일컫는 다순구미는 행정구역 이름으로 온금동이다. 따뜻할 온자와 비단 금자를 쓴다. 정식 명칭이야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쓰면 그만이고, 다순구미로 불러야 동네가 확 와 닿는다. 그 흔한 이층집도 찾아보기 힘든 오막살이들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따뜻한 햇살을 받아낸다. 다순구미는 곧 사라진다.

 

 

 

만선의 꿈이 사내만의 것이 겠는가? 한땀 한땀 그물줄을 잇는 아낙들의 손길에서 뱃사람들의 꿈은 무르익어간다.

 

 

얼마나 더 살려고 때려 부숴. 돈 도 없는데.”

지난 2012년 온금동은 재개발촉진지구로 고시됐다. 낡은 불량주택이 밀집한 다순구미 마을이 목포항 관문에 위치해 항구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게 이유다. 빈집들이 많아 담장이 기울고 녹이 슨 대문과 창문 틈새에는 잡초가 피어올랐다. 뱃사람들은 따뜻한 마을을 떠나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처럼 한없이 풍요로울 줄 알았던 바다는 언제부터인가 쉽게 물고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냉장기술이 개발되자 잡아온 고기를 바다 위에서 거래하는 파시도 필요 없어 배들이 모이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 궁색한 집안 살림살이에 효자노릇하던 벽돌공장도 문을 닫았다. 돈 버는 재미로 고단함을 견뎌내며 흥겨워했던 마을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젊을수록 나이 하나 더 먹기 전에 서둘러 마을을 벗어났다.

 

 

 

바다를 향해 열려있는 작은 마당에서 마을 주민이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파른 골목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가뿐 숨을 몰아쉬지만 마당 전망대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며 지나온 날들을 떠올린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조금새끼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

선장 남편을 일찍 여읜 한 할머니는 품팔이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동네 아이들과 생일이 같은 자식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며 곯아떨어지는 밤이면 속절없는 눈물만 흘러나왔다. 생일이 비슷한 동네 아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불렀다. 바닷물이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아 물고기도 숨어서 잠을 잔다는 조금 때, 출어를 포기한 사내들은 집에서 새끼 만들기에 전념하다보니 생일이 비슷할 수밖에. 조금 큰 조금새끼들을 데리고 간 남편 배가 풍랑에 뒤집혀 제삿날이 같은 집도 여럿이다. 아들 하나를 잃었다는 할머니는 물끄러미 마당 수도꼭지를 바라봤다.

 

물이 귀했지. 지금이야 집집마다 수돗물이 나오지만. 그래도 아껴 써야지.”

마을 중앙에는 기념비가 딸린 우물이 있다. ‘공동시암이라 불리는 우물 정자 모양의 샘이다. 옛날 다순구미 마을은 바다 땅이라 파면 갯벌이 나오기 일쑤였다. 주민들은 깔끄막을 헐떡이며 넘나들며 유달산 저수지에서 물을 길러다 먹었다. 한해가 들어 저수지가 바닥이 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바닷물을 식수로 마시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정인호라는 양반이 돈을 들여 큰 샘을 하나 팠는데, 그 은혜가 감개무량해 동네 사람들은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목포가 가장 물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지게 양동이로 3-4시간 걸려 깔끄막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정인호가 만든 우물이 보통 우물이었겠는가? 깊은 사연의 큰 샘은 이제 고추말리는 평상이 됐다.

 

 

 

장갑 끼면 그물 줄이 착착 손에 안 잡혀.”

문 닫은 벽돌공장 담장에서 망가진 그물을 고치는 어머니의 거친 손이 안쓰럽다. 돈 되는 일은 한사코 하지 않았다던 남편 덕분에 온갖 고생을 겪어온 손이다. 벽돌공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쌀장사를 해낸 손이고, 공장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자 그물에 손을 댔다. 대학 못 보낸 게 속상하다지만 육남매를 보듬어 키워낸 아름다운 어머니의 손이다. 주체할 수 없는 카메라는 어머니의 손을 향했는데, 자식들이 사진 찍히는 거 싫어한다며 고개를 흔드신다. 나이 팔십이 넘어서도 자식 생각이다.

 

조금새끼들을 위해 제를 올렸다던 마을 뒷산 산제당터에 올라 동네를 바라봤다. 고깃배와 여객선, 바지선들이 붓꽃 빛깔의 마을 앞바다를 유유히 지나간다.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올뫼나루터로 돌아오는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는 사라졌지만, 다순구미 마을에 비추는 햇살은 여전히 따뜻했다.

 

 

 

2014. 9. 15 - 17 다순구미

'- 찍고, 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촌 나들이  (0) 2014.10.08
가을이 걸렸네  (0) 2014.10.07
구례 귀농마을  (0) 2014.08.28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2) 2014.08.08
해바라기 마을  (2) 2014.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