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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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아파트

김창길 2014. 10. 12. 21:14

 

 

 

완공 4개월만에 아파트가 무너졌다. 잠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인 아침 6시 30분 지상 5층짜리 아파트가 폭삭 주저앉아 33명이 사망했고, 38명이 다쳤다. 지난 1970년 4월 8일에 일어난 와우 시민아파트 붕괴 사건. 와우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진 것이다.  
와우 시민아파트 참사는 예견됐다. 지금도 따라잡을 수 없는 건설 기간인 6개월만에 아파트를 완성시켰다는데, 당연히 부실공사였다. 건설비로 쓰여야 할 돈이 건설사들의 뇌물 경쟁에 쓰였다.

 

 

 

 

와우 아파트가 무너지고난 한달 뒤, 남산 자락에 제2의 시민아파트가 준공됐다. 당시 서민들을 위한 시민아파트 사업을 벌였던 김현옥 서울시장은 와우 아파트의 실패는 인정하지만, 회현 제2시민아파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시범' 아파트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시장은 얼마 못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회현 아파트는 40년 넘게 남산 아래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요즘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골동품 아파트의 모습들이 신기하기 그지없다. 10층이나 되는데 엘레베이터는 없고, 6층에서는 난데없이 외부로 이어지는 구름다리가 나온다. 남산쪽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다리인데 건축가의 아이디어가 괜찮아 보인다. 구름다리로 나가 조금만 걸으면 1층 까지 내려갈 수 있는 외부계단과 연결되는데, 마당에는 콘크리트에 묻어 놓은 장독대가 있다.

 

 

 

 

 

시민아파트는 원래 서민들을 위해 기획된 아파트다. 하지만 기획은 기획으로 끝났다. 15년 동안 아파트 입주금 30만원을 내야하는데 원주민들에게는 그럴 돈이 없었다. 당시 물가는 담배 한 값이 60원. 원주민들은 또다른 달동네를 찾아 떠났고, 부자들이 회현 아파트에 들어왔다. 한국방송공사가 남산에 있던 시절이라 윤수일, 은방울자매 등 연예인들도 꽤 살았다.

 

 

 

 

위세 당당하던 회현아파트는 이제 빌딩숲에 덮혀버렸다. 남대문 방향 남산순환로 끝자락에서 유심히 살펴야 아파트를 찾을 수 있다. 오래된 만큼 철거 시도도 많았다. 흉물스럽다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흉물스러운 아파트에 왜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일까? 똑같은 사람의 눈이라도 사진가의 눈과 사업가의 눈은 다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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