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낯선 프레임 본문

- 찍고, 쓰고

낯선 프레임

김창길 2013. 8. 19. 15:58

 

아파트 창문 너머로 형형색색의 부산 태극도 마을이 보인다. 아파트 창문틀을 또다른 프레임으로 이용해 액자에 담긴 그림과 같은 효과를 노렸다. 2012.7.

 

 

지난해, 집사람 친구로부터 신문을 구독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여섯 살 유치원생을 키우는 엄마인데, 유치원에서 신문 사진을 활용한 숙제를 내주었다는 것. 신문 사진을 보기엔 좀 어린 나이가 아닌가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치원생이 봐도 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 사진은 보기에 쉬우니까.

광고사진은 제품 하나의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표현한다. 어떤 하나의 사건이나 상황을 극대화시켜 표현한다는 점에서 신문사진과 비슷한 맥락이다. 신문사진은 단 1초 만에 그 사진이 어떤 의미인지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해야한다. 애매한 오브제들을 생략하고 명징한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가득 메운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광고사진과 비슷한 맥락의 신문사진을 비판하는 사진기자들도 있다. 프레임 안에 부수적인 요소들도 보여주어야 좀더 객관적인 사진일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여백도 신문사진에서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문사진에 대한 평가는 신문 지면에 달려있다. 지면에 들어가는 사진이 작다면, 프레임 안에 뉴스의 핵심이 되는 피사체만을 꽉 채워야한다. 하지만, 잡지처럼 비교적 큰 사이즈의 사진이 들어간다면 꽉 찬 프레임의 사진은 답답하다. 현재 대부분의 신문 사진들은 잡지만큼 큰 경우가 작기 때문에 답답한 사진을 찍는게 정답, 아니 모범답안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진의 경우,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쉬운 사진이기 때문에 유치원생이 봐도 이해하기 쉬운 사진이 많다.

보기에 쉬운 사진이 찍기 쉬운 사진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유치원생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사진이 더 찍기 힘든 경우가 많다. 신문사진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사진이 너무 쉽다라는 생각은 그래서 너무 쉬운 생각이다.

 

 

 

화재로 소실되기 전 숭례문. 버스 궤적 사이로 보이는 숭례문. 2006년 12월.

 

 

프레임 자체가 해석이다.

 

프레임안의 장면은 보여주고 싶은 내용이다. 프레임 밖은 사진에 존재할 수 없다. 풍경을 담는 프레임은 그래서 프레임 자체가 해석의 과정을 거친다. 배제하고 선택을 요구하는 프레임은 당연히 해석이다.

전문 사진가들이 DSLR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레임 안의 무궁무진한 세계에 집중하려면 프레임 밖의 세상을 신경쓸 여력이 없다. 요즘 유행인 미러리스 카메라는 카메라 자체가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이 없기 때문에 전문사진가들이 사용하는데 애로사항이 많다. LCD안에 즉자적으로 나타나는 이미지는 프레임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못한 동영상의 이미지일 뿐. 미러리스 카메라는 TV화면을 찍는 과정과 흡사하다.

 

 

tree #1-2 이명호 작가

 

 

 

프레임을 의심한다.

 

지난 818일 사진작가 이명호씨가 숭례문을 소재로 프레임 실험을 시도했다. 숭례문 뒤에 초대형 캔버스를 설치해 사진 찍는 것. 그러나 캔버스 지지대 일부가 무너져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이작가는 이번 숭례문 프로젝트 이전, 나무를 소재로한 캔버스 프레임 사진을 작업했다.

이작가의 캔버스 프레임 사진은 발상이 매우 단순하다. 피사체인 나무 뒤에 흰 캔버스를 설치하면 그만. 하지만 이 단순한 발상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매우 낯선 이미지를 연출한다. 캔버스 앞의 나무는 마치 그림을 연상케하고, 캔버스 밖 실제의 풍경은 마치 사진 액자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한 장의 프레임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이 있다. 하지만 그 프레임은 프레임이 아니라 그 자체가 현실이다. 프레임 안의 프레임 안에 설치한 캔버스는 마치 액자 속의 그림 배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프레임 안의 프레임과 캔버스 앞의 나무만이 실재로 존재하는 피사체다.

이 작가의 캔버스 프레임 사진은 나무 자체보다는 캔버스 밖 프레임에 시선이 간다. 프레임 자체가 현실이며 프레임 안의 내용은 조작이다. (나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는 조작을 취했기 때문.) 이 작가의 사진을 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내가 바라보는 이미지들도 사실은 조작된 것, 아닐까?’

내가 알지 못하는 내재된 프레임 기능(선입견)에 의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tree # 1-2 이명호 작가

'- 찍고, 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도 산꼬라데이 탄광마을  (0) 2013.10.15
참새와 허수아비  (0) 2013.08.28
동물들의 여름나기  (0) 2013.08.12
설국열차, 기억의 문제  (0) 2013.08.04
레인보우 워리어  (0) 2013.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