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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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도 사투리가 있다

김창길 2016. 3. 28. 16:21




2016년 3월 17일 제돌이, 태산이, 복순이가 포함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제주 대정읍 모슬포항 인근을 지나고 있다. 하얀색으로 1이라고 등지느러미에 표시된 개체가 제돌이다. 김현우 연구사에 따르면 17일에 관찰된 남방큰돌고래는 60여 마리다.




환경 담당 기자가 사진 신청을 했다. 제주도 해안가의 남방큰돌고래를 포착해달라는 것. 망망대해에서 돌고래를 찾으라고?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다. 게다가 제돌이랑 태산이, 복순이도 찍어달라고? 그것도 이틀 만.... 미션임파서블이다. 아무리 고래 박사가 동행한다지만, 돌고래를 조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돌고래 찾기는 제주 서쪽 구좌읍 종달리 전망대에서 시작됐다. 관광객들이 성산일출봉과 우도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중소형 랜트카를 타고 해양수산부 고래연구센터 김현우 연구팀 3명이 전망대에 도착했다. 연구팀이 돌고래를 찾기 위한 장비는 달랑 망원경뿐이었다. 지난 20157월에 부착한 태산이 복순이의 인공위서 표지표는 지느러미에서 떨어져 나갔다. GPS장비가 무용지물이다. 오로지 3명의 눈으로 돌고래를 찾아야했다.




2016년 3월 17일 남방큰돌고래 두 마리가 모슬포항 인근 바닷가를 솟아 오르고 있다.




2-3망망대해를 관찰하던 김현우 연구사가 말했다.

"해안가 포인트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며 돌고래를 추적할 겁니다."

알아서 따라오며 취재하란 얘기다. 종달리에서 시작한 돌고래 찾기는 제주 해안가를 반시계 방향으로 진행됐다. 포인트마다 연구팀이 하는 행동은 간단했다. 높은 곳에서 망원경으로 돌고래 찾기.


'아니, 고작 장비가 망원경 하냐야? 돌고래는 초음파 대화를 한다는데, 초음파 장비 같은 것도 없는 거야? 이런, 돌고래 만나기는 글렀네.'





구좌읍 해안가 포인트에서 김현우 연구팀이 돌고래를 찾고 있다.




김녕항에 도착한 연구하는 돌고래 출석부를 확인했다. 선상 낚시와 돌고래 찾기를 겸한 요트 투어가 유명한 김녕항이다. 2월 돌고래 출석부에는 돌고래가 달랑 한 번 출석했다고 적혀있었다. 제주항이 내려다보이는 사라봉까지 돌고래 찾기를 마친 연구팀이 말했다.

"밥 먹고 합시다!"


점심 메뉴는 각재기국, 멜조림, 고등어구이. 밥상 위가 다 물고기다. 각재기국은 전갱이국, 멜조림은 멸치조림이다.

'전갱아, 멸치야, 고등어야, 너희들 혹시 밥상 위로 올라오기 전에 돌고래 봤니?'





2013년 6월 20일 제돌이이가 성산항 인근 가두리 양식장에서 야생 적응을 하고 있다.




돌고래 찾기는 오후에도 계속됐다. 애월읍의 한 불턱에 들어서자 해녀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본다. 불턱은 해녀 탈의장이다.

"누구?"

"돌고래 찾는 해수부 연구팀입니다."

"여기에 돌고래가 나완?"

"그러게요. 저도 궁금해요."


아침 9시 제주 동쪽 종달리에서 시작한 돌고래 찾기는 제주 남서쪽 대정읍에 이르자 오후 4시가 됐다.

'거봐, 미션임파서블이지.'




2013년 6월 20일 춘삼이와 삼팔이가 복어를 코로 들이 받으며 놀고 있다.







모슬포항 인근 포인트에 이르자 김현우 연구사가 다가와 말했다.

"돌고래가 보이네요."

뭣이라고? 연구사가 가리킨 쪽으로 망원 렌즈를 돌렸다. 하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김 연구사는 트렁크에서 자신의 카메라를 꺼냈다. 300미리 망원 렌즈를 장착한 DSLR 카메라다. 3분이 지났을까? 연구사가 지목한 방향 바다 위 물결이 뭔가 달라 보였다.


"돌고래다!"

수면 위에 등지느러미를 내민 돌고래 떼가 해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연구사는 사진기자처럼 셔터를 연속으로 눌러댔다. 남방큰돌고래는 육지와 불과 10여 미터 되는 곳을 지나 남쪽으로 헤엄쳐 갔다.




2016년 3월 17일 제돌이가(가운데 등지느러미 1번 표식) 포함된 남방큰돌고래가 대정읍 모슬포항 인근을 지나고 있다.




"나중에 정확한 수치가 나오겠지만, 40여 마리가 지나갔습니다. 제돌이, 태산이, 복순이도 있네요."

돌고래 개체 구분은 사진식별로 이루어진다. 사람 얼굴 모양이 각기 다르듯이 돌고래 등지느러미 모양새도 각각이다. 특히, 지난 2013년 방류된 제돌이는 등지느러미에 숫자 '1'이 하얀색으로 적혀있다. 제주 여행객들이 운이 좋아서 돌고래 떼를 만나게 되면 1번 표식을 보고 제돌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3년 성산항 부근 가두리 양식장에서 야생적응 훈련을 받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춘삼이와 삼팔이는 복어 한 마리를 공처럼 코로 들이 받으며 놀고 있었다. 춘삼, 삼팔이보다 늦게 바다로 온 제돌이는 움직임이 적고, 사람이 나타나면 애완견처럼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3년 만에 조우한 제돌이는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야생으로 돌아간 것이다.




3년 만에 다시 만난 제돌이가 포슬포항 인근 바닷가를 헤엄치고 있다.



국제적인 보호종인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 서태평양의 온대 및 열대해역에 약 33천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해역에 서식하는 100여 마리의 남방큰돌고래는 가장 개체수가 적은 돌고래 무리다. 사람보다 다 자란 성체의 몸길이는 2.6m, 무게는 230kg정도다. 진회색 피부에 배는 연회색. 연구사 말에 따르면, 사는 곳에 따라 사용하는 초음파 사투리가 있단다.






2016. 3. 17. 제주도 대정읍 모슬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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