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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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방의 역참기지를 가다 (차마고도 vol.2.)

김창길 2012. 11. 15. 20:41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로 적힌 소원 나무판. 바람이 불면 방울 소리와 함께 소원이 하늘로 올라간다나.

 

차마고도 교역로는 대략 여덟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옛 차마고도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길은 두 개 정도다.

보이차의 원산지 윈난성 남부에서 시작된 길로 따리, 리장, 샹그릴라를 지나 티베트에 이르는 길과

쓰촨성 야안에서 시작돼 티베트 라싸로 이어지는 길.

길은 라싸에서 끝나지 않고 히말라야를 넘어 실크로드와 합류한다. 

 

윈난성 운남역관을 출발한 차마고도는 아름다운 전통 기와집이 모여있는 '리장(여강麗江)'으로 이어진다.

차, 소금 등을 교역하던 마방들의 규모는 다양했다.

일가족 단위에서 말 200필 이상을 끌고다니는 대규모 마방 등 규모에 따라 이동 거리도 달랐다.

마방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교통과 상업 중심지가 됐다.

윈남성 리장은 마방들로 인해 생겨난 대표적 상업 중심지였다. 

식당, 여관, 상점 등이 번성했는고, 대형 상점은 스스로 대규모 마방을 꾸려 물건을 교역하기도 했다.  

 

 

나시족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 지금은 차마고도의 흔적 은 아련하고 이색적인 풍경의 관광지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로같은 골목길과 수로가 얽힌 리장의 전통 마을은 밤이면 저마다 홍등을 밝힌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곳 리장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를 얻었다.

치히로가 길을 잃고 도착한 마을은 밤이 돼자 홍등이 켜지고 온갖 정령들이 출몰하는 유령마을로 바뀐다.

리장의 밤거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시골 촌락이었던 리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96년에 윈남성 일대에 초대형 지진이 발생해 3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다행이 지진은 리장을 피해나갔다.

윈난성 지진 피해를 복구하던 중국 중앙정부와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이색적인 리장의 매력을 발견했다.

돈 많은 한족들은 나시족의 허름한 집들을 헐값에 매수해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발빠른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리장은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못을 사용하지 않은 리장의 목조건물들은 지금도 상점, 찻집, 주점, 객점 등으로 사용된다. 

 

전통 기와가 고스란히 간직된 리장 고성. 1997년 리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리장은 소수민족 나시(納西)족의 자치구역이다.

본래 티베트계 유목민이던 나시족은 강대 민족의 등살에 리장에 정착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던 소수민족이었지만 나시족은 고집스레 자신들의 문화와 풍속을 지켰다.

나시족 고유의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나시고악, 샤머니즘 원시종교인 동파교, 상형문자인 동파문자....

특히, 동파문자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최후의 순수 상형문자다.

동파문자로 쓰인 '고대 나시 동바문화 필사본(Ancient Naxi Dongba Literature Manuscripts)'은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종이 공방에서 닥나무 종이 위해 동파문자를 적고 있는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리장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리장고성은 대부분 한족 소유로 많은 나시족들이 주변 마을로 이전했다.

동파문자 역시 마찬가지.

나시족 고유의 정신시계를 표현했던 동파문자는 이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종이공방에 고용된 나시족들은 관광객들에게 동파문자를 써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동파교의 사제를 동파라고 부르는데,

동파 대다수가 종이공방에 고용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2009년 8월 차마고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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