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잔교 위에서 배를 기다리던 군인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F. 스콧 피츠제럴드 소설. 주인공 벤자민 버튼이 거꾸로 나이를 먹으며 결국에 갓난아기로 돌아가 죽는 이야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간은 복잡하게 흐른다. 시간의 속도도 다르다. 처음 주목받은 영화 <메멘토>(2000)에서부터 <인셉션>(2010), <인터스텔라>(2014)를 거쳐 최근 개봉작 <덩케르크>까지 줄곧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기억은 불확실해. 기억은 기록이 아니고 해석이거든.’

 

 

<메멘토>는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범인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주인공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0분.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것과 자기 이름만 기억하는 주인공 ‘레너드’는 외장하드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려 안간힘을 쓴다. 레너드의 외장하드는 문신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다. 주요 단서를 몸에 새긴 문신은 누군가 쉽게 지울 수 없는 기록이고, 한번 찍힌 사진은 다시 만들 수 없는 지나간 과거다. 문신과 사진에 의존해 기억을 되살리려는 주인공은 절규한다.

‘집중해. 집중. 잊지마. 절대 잊지마. 기억해…’


 

 

메멘토. 2014년 재개봉.

 

 

사진 한 장은 어떤 시간을 담고 있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셔터를 누르면 자동으로 프로그램된 짧은 순간을 기록한다. 만약, 주인공의 손에 수동 카메라가 있었다면? 수동 카메라는 어떤 한 장면에 대한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셔터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레너드가 기억하는 시간 단위인 10분을 카메라에 적용한다면 어떤 사진이 나타날까?

 

250분의 1초. 야외 사진 촬영 시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셔터 속도다. 격렬하지 않은 피사체의 움직임을 적당히 고정시킬 수 있는 시간이다. 셔터 막이 열려 있는 250분의 1초 동안 카메라에 장착된 필름이나 CCD는 250분의 1초 동안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다. 셔터 속도를 많이 늦춘다면 사진의 시간성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셔터 막을 오래 개방한 야경 사진을 생각해본다. 카메라는 긴 시간의 장면을 고정시키기 위해 자신의 몸을 삼각대에 고정시킨다. 10분 이상 셔터를 열어 놓으면 어두운 도심에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모습은 단지 흐르는 빛의 궤적으로만 기록된다. <메멘토>의 주인공 레너드는 10분을 기억할 수 있지만, 카메라가 기억할 수 있는 10분은 건물과 땅 등 움직이지 않는 피사체만 기록한다. 사람, 구름, 자동차 등 움직이는 모든 피사체는 그저 흐르는 궤적이 될 뿐이다.

 

 

‘사진은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준다’


독일 문예평론가이자 사상가인 ‘발터 벤야민’은 80여년 전 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복제 장치인 카메라에 대해 생각한다. 사진이 발명된 이후, 우리는 카메라 발명 이전과는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한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처럼 기억하는 장면들은 사실 두 눈으로 직접 본 장면이 아니라 카메라가 본 이미지들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보았다고 착각할 뿐이다.

 

가령 한 마리 말이 달리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걷는 것이 아니라 달리기 때문에 어느 순간 말은 네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두 눈을 통해 기억된 장면이 아니다. 인간의 눈은 500분의 1초라는 빠른 순간을 포착할 수 없다. 스포츠 사진은 대게 셔터속도 500분의 1초 이하로 한 장면을 포착한다. 말이 공중에 떠 있는 장면은 두 눈이 지각한 것이 아니라 이미 두뇌 속에 저장된 공중에 떠 있는 말 달리는 사진을 다시 꺼내어 눈의 시지각과 기억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서울우유의 우유 왕관 사진도 마찬가지. 물방울이 떨어질 때 한 순간 나타나는 왕관 모양은 카메라가 포착한 장면이지 인간의 두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장면은 아니다. 우리는 서울우유 왕관을 보았기 때문에 아스팔트에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그런 모습을 대입시켜 그 장면을 해석한다. 이런 이유로 발터 벤야민은 카메라가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주는 장치라고 말한다. 도저히 지각할 수 없는 시간 단위의 장면을 카메라의 도움으로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정신분석학이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듯이 카메라는 지각할 수 없었던 시각의 세계를 재현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 <인셉션>에서 무의식의 세계인 꿈을 탐험한다. 기억을 훔치는, 또는 없었던 기억을 삽입하는 꿈 도둑들의 이야기다. 줄거리는 다소 복잡하다. 꿈속의 꿈으로, 또 그 꿈속의 꿈으로, 마침내 꿈의 밑바닥인 림보의(limbo. 천국과 지옥 중간의 세계. 영화에서는 다시 깨어나지 못하는 밑바닥의 세계) 세계로 들어가는 양파 껍질 같은 공간에서 사건을 풀어간다. 영화가 더 복잡한 건 이 꿈의 단계에서 시간성도 다르게 설정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5분은 꿈속에서 1시간, 꿈속의 꿈에서는 12시간으로 설정된다. 2014년 작품 <인터스텔라>에서는 우주와 블랙홀의 세계에서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시공간이 펼쳐진다.

 

 

 

인셉션 2010

 

 

 

스릴러와 SF영화를 줄곧 만들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 최신작 <덩케르크>에서 집단의 기억을 건드렸다. 영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펼쳐졌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다. 시공간을 재설정하는 그의 전매특허는 덩케르크 철수작전에서도 작동한다. 땅에서의 일주일, 배에서의 하루, 공중에서의 1시간이 1시간 46분의 영화적 시간으로 재구성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체감하는 기억은 절대적 시간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비록, 공중에서의 1시간이었지만, 그 긴박했던 상황은 육지에서의 일주일과 비슷한 강도의 경험으로 각자의 뇌리 속에 박힌다. 그리고 각자 처한 시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오해도 생겨난다.

 

 

 

“너네 공군은 뭐 했어?”

 

 

 

살아 돌아온 한 육군이 스핏파이어 조종사에게 나무란다. 고립된 육군을 위해 끝까지 공중전을 펼쳤던 비행기 조종사는 할 말이 많았다. 그도 육군과 마찬가지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을 뿐인데, 아군이 같은 아군을 욕하는 것이다. 난처해하는 표정을 본 나이 지긋한 한 영국 시민이 공군 조종사에게 말을 건넨다.

 

 

 

“신경쓰지 말게, 우린 아니까.”

공중에서의 한 시간, 배에서의 하루, 육지에서의 일주일도 아닌 영국 본토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았던 영국 국민의 시각이다. <덩케르크>를 보는 관람객은 영화 속 영국 국민들과 비슷한 시선으로 비행기 조종사를 바라본다. 그들은 공군이건 해군이건 모두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자국의 병사들이다. 병사들이 살아 있어야 적을 막아낼 수 있다. 그래서 민간인들은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작은 배를 몰고 프랑스 덩케르크 해변으로 향했다.

 

 

덩케르크 2017

 

 

본토로 돌아온 병사들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던 눈 먼 노인이 병사의 얼굴을 만지며 말을 건넨다.

“수고했어.”

변변한 전투 한번 못하고 돌아온 병사가 솔직하게 대답한다.

“우린 살아 돌아왔을 뿐인 걸요.”

노인이 다시 말한다.

“그거면 충분해!”

 

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