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사진기자 아웃도어 룩 본문

- 찍고, 쓰고

사진기자 아웃도어 룩

김창길 2012. 12. 26. 00:00

 

눈이 아직도 즐거운 신참 사진기자들이다. 첫눈이건, 더위를 식혀주는 비이건 사진기자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것들이 부담스럽다. 그것들을 기록해야하는 숙명이 있기에...

 

 

현장이 숙명인 사진기자에게 날씨는 전문 등산가만큼 중요한 요소다. 10년전 신문사 입사 당시 많은 사진기자 선배들이 등산복을 입고 다니는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증은 사진기자 생활 한달 만에 풀렸다. 사무실이나 기자실이 아닌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사진기자들은 각자의 몸을 보호해야 했다.

 

10년 넘게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느낀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성에 대해 몇 자 적어 본다. 아주 주관적인 평가다.

 

사진기자 계급도

 

1. 구스다운이 덕다운보다 따뜻하다?

구스다운(거위털)이 덕다운(오리털)보다 따뜻하다는 것은 측정이 어렵다. 대부분의 아웃도어사들은 기능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구스 충전재를 대부분 사용한다. 오리털 충전재를 사용한 다운점퍼를 입고다니는 사진기자를 만나 볼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착용감은 다르다. 구스다운이 덕다운보다 가볍다. 거위 솜털이 오리 솜털보다 커서 공기를 많이 움켜쥘 수 있다고 한다는데 설득력있다. 다만 보온성에 대한 평가는 다르다. 아웃도어가 아닌 디테일이 예쁜 일반 여성패션 프랜드의 다운 점퍼를 입는 몇몇 여성 사진기자들에 따르면 오리털도 빵빵하게 들어가면 따뜻하다고한다.

 

2. 필파워가 높아야 따뜻하다?

필파워는 다운 점퍼가 압축됐다가 복원돼는 정도를 측정한 값이다. 보통 700에서 시작해 900까지 나오는데, 모 아웃도어사가 필파워 1000의 구스다운을 출시했다.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렸다고한다.

필파워가 높아야 따뜻한가를 따져본다. 대게 소매 부분에 필파워 숫자가 적혀있다. 사진기자들은 간혹 정말 따뜻한가 느껴보기위해 동료의 다운점퍼를 입어보며 성능을 체감해본다. 하지만 필파워를 측정하듯, 다운 점퍼를 구겼다가 다시 복원되는 정도를 보지는 않는다. 그냥 두툼한 정도를 평가할 뿐. 필파워 숫자와 상관없이 걍 겉보기에 두툼해보이는 다운이 제일 따뜻하다는게 중론이다.

 

3. 디테일도 보온성에 영향을 준다.

두툼한게 제일 따뜻하다. 하지만 디테일도 보온성에 많은 영향을 준다. 가령 아무리 두툼해도 목부위, 소매와 점퍼 아랫부분을 어떻게 처리했냐에 따라 보온성은 달라진다. 점퍼 후두가 목부분을 휘감는 형태의 다운점퍼가 따뜻하다. 위 사진 왼쪽과 중간 다운점퍼처럼 뒷머리부분과 턱선 위를 올라오는 후드가 장착돼야 목 부분에서 생기는 인체열을 간직할 수 있다. 소매는 겉감이 손등을 덮으며 안쪽에 시보리 처리가 되야 장갑을 꼈을 때도 냉기를 피할 수 있다. 또 다운점퍼 기장에 따라 보온성에 차이가 난다. 상식이겠지만 엉덩이 정도는 덮을 기장의 다운점퍼가 따뜻하다.

 

 

알겠지만 연출사진이다.

 

 

4. 다운의 성능 만큼 보온 악세서리도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

사실 몸은 어느정도 따뜻하면 추위를 버티기에 지장이 없다. 중요한 것은 머리. 목과 함께 머리는 인체열이 발산하는 주요 부위다. 설사 기능이 떨어지는 점퍼를 입었더라도 털모자를 쓰면 그 이상의 인체열을 보존할 수 있다. 러시아 사람들 대부분이 털모자를 쓰는 것을 상기한다면 당연한 일이다.

 

5. 다운 겉감에 따라 보온성이 달라진다?

다운점퍼를 세심하게 고르는 사람들은 겉감의 종류도 따진다. 윈드스토퍼, 콘듀잇 등 겉감 소재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 차이는 한국에서는 무의미하다. 대부분의 아웃도어 구스다운은 생활방수 정도의 성능을 지닌다. 눈이 와도 젖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 이외의 성능이 필요할까? 영햐 10도시 이하와 폭설에서 한 시간 이상 취재를 하는 사진기자도 그 이상의 성능은 필요로하지 않는다.

헤비다운이 유행하기전 사진기자들은 위 사진처럼 내피형 다운과 고어텍스 외투를 착용하는게 일반적이었다. 고어텍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겉감보단 역시 두툼한 충전재가 들어있는게 따뜻하다.

 

6. 다운 안감에 따라 보온성이 달라진다?

다양한 소재의 겉감을 활용한 기능성을 강조하는 아웃도어사 중 한 회사가 보온성을 높인다는 안감 소재를 개발했다. 은박지가 생각나는 그 안감은 몸의 발열을 보존해 뛰어난 보온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동일 회사는 아니지만 이번에 구입한 내 다운점퍼 등 부분에도 비슷한 소재가 사용됐다.

며칠 입어본 결과, 혹한의 상황에서 그 보온성을 측정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실내로 들어와 몸이 따뜻해졌을 때 등 부분이 유독 후끈거렸다. 몸에서 생긴 열이 은박 성분에 의해 반사돼 보온성을 강화시키는것 같다. 다만 그 은박 소재가 바깥 혹한의 상황에서도 기능을 발휘하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등 부분이 특별히 따뜻하다는 느낌은 없기 때문이다.

 

 

폭우에는 고어텍스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7. 고어텍스는 곧 아웃도어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동안 고어텍스 소재를 사랑했다. 사진기자협회 공동구매를 통해 저렴하게 고어텍스를 구매하기도 했다. 고어텍스는 방수는 물론 체내 습기를 배출하는 효과를 지녀 제2의 피부라 칭송받는다. 하지만 과대포장이다. 비를 어느정도 맊기는 하지만 성능이 오래가지는 않다는게 사진기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몇 달이 지난 고어텍스는 물기를 차단하지 못하고 흡수한다. 또 체내 발열도 과장돼 실내로 들어온 기자들은 체내습기 배출을 위해 빨리 자켓을 벗어던진다.

전문 등산가들도 고어텍스 자켓을 오래 입지 않는다고 한다. 기능이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어텍스 기능을 유지시켜 준다는 스프레이도 있다. 아웃도어 회사에서 사용하는 고어텍스는 한 외국 의류소재업체의 특허품이기 때문에 그 회사의 가격정책에 의해 값이 좌지우지된다. 독점 소재이기 때문에 비싼 것이다.

고어텍스의 독점적 성격 때문에 많은 아웃도어 회사들이 요즘 자체 원단을 개발했다. 하이벤트, 컨듀잇, 콘트라텍스 등 고어텍스와 똑같은, 혹은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값은 고어텍스보다는 조금 저렴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선택할 정도로 가격이 착하지는 않기 때문에 기왕이면 고어텍스를 구입하는게 일반적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 고어텍스는 아웃도어의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매, 혹은 어깨 부분에 표시된 고어텍스 표시는 등산복의 보증서처럼 변해버렸다. 고어텍스는 곧 아웃도어인 것이다.

 

 

모 카메라회사에서 제공한 우비를 입은 사진기자들이 장맛비를 취재하다 강풍을 맞고 있다

 

8. 방수는 비옷이 최고

방수는 가격도 저렴한 비옷이 최고다. 방풍 기능도 우수해 보온성도 제공한다. 사진기자들도 많은 비가 올때는 고어텍스 자켓 위에 비옷을 걸친다. 하지만 역시 비옷의 한계는 자명하다. 체내 습기를 전혀 배출하지 못한다. 하지만 폭우 속에서는 비옷이 최고다. 실내에 들어와 벗어제끼면 그만이니까.

비닐 비옷은 실용성에서 최고다. 작은 사이즈의 비닐 비옷은 한번 입고 버릴 수 있는 최고의 방수복이다. 하얀색이 제일 무난하다. 물론 폼은 좀 안난다. 환경에도 좋지 않다.

 

 

우면산 사태를 취재하는 한 사진기자가 장화를 신고 있다.

 

9. 비싼 아웃도어 장화의 성능

모르겠다. 남자들이 대부분이 사진기자들은 회사에 비치된 싸구려 장화를 사용한다. 라텍스를 사용했다는 아웃도어 여성 장화에 대한 성능 평가는 여성들에게 남겨둔다. 하지만, 그래도 고무 아니겠는가? 통풍이 쥐약일게다. 빗방울이 장화 안으로 들어온다면 최악일 것이다.

등산화의 경우 고어텍스 소재는 꽤 쓸만한 기능을 발회한다. 물론 고무장화처럼 완벽한 방수능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쾌적하면서 어느 정도의 방수 성능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아웃도어 회사들이 고어텍스와 비슷한 원단 소재를 개발했지만 그 소재를 사용한 등산화를 만들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하다.

등산이 생활화된 요즘 경등산화가 대세다. 두꺼운 가죽과 발목을 감싸는 중등산화는 활용도가 적기 때문. 둘레길 산책이 유행인 지금 운동화처럼 가벼운 경등산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험한 산행에 경등산화는 적합하지 않다. 설악산 대청봉을 한번 오르 내린 내 경등산화는 만신창이가 됐다.

 

 

나이스 가이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가 반바지 차림으로 육상 트랙 위를 지나가고 있다.

 

10. 여름 아웃도어 용품의 성능

봄, 가을, 겨울 사진기자들은 아웃도어 제품들에 많이 의지한다. 하지만 여름은 그냥 시원하고 편한 옷을 입는다. 더우면 반바지(반바지를 허용하지 않는 신문사도 많다.), 편한 운동화, 혹은 샌들. 폭염 속에서 그저 얇고 편한 옷을 착용하면 그만이다. 다만 강한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위해 모자와 썬글라스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자와 썬글라사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일반 브랜드를 이용한다.

 

 

몇해 전부터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모 아웃도어사의 두툼한 다운점퍼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 요즘 학교 난방이 잘 안돼는지 의아해했다. 요즘은 중고등학생은 물론 직장인들도 두툼한 헤비다운을 즐겨 입는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케나다산 구스다운도 자주 볼 수 있다. 날씨가 많이 추워진건 사실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두터운 헤비다운은 몇 분동안의 강추위를 막아줄 수 있는 좋은 방한대책이다. 하지만 좀 과한 복장이 아닌가 싶다. 실내에 들어가면 좀 더울텐데... 유행이란 이성을 초월한다.

 

여담이다. 모피를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이 왜 구스다운이나 덕다운은 반대하지 않을까 궁금했다. 몇달전 학교 선배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동물보호단체 상근자로 전향했다. 송년회에서 만난 선배는 때마침 다운 자켓을 입고 있었다.

"형, 모피는 안돼고 오리털은 괜찮아요?"

피식 웃으며 선배가 대답했다.

"솜이야."

 

2012년 혹한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