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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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웨딩사진

김창길 2013. 3. 12. 15:46

 

군수 물자를 싫어 나르던 기차를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은 두 커플이 다른 장소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

 

 

웨딩 사진을 찍는 몇 시간 동안 예비 부부들은 유럽 중세의 공주와 왕자로 변신한다.

왕궁 생활 경험이 없기 때문인지 생전 처음 입어보는 공주 왕자 복장을 한 예비 부부들의 표정은 식은 땀을 흘리게한다.

사진가의 요구대로 애써 포즈를 잡고 표정을 잡아보지만 결과물은 항상 어색한 합성사진 분위기다.

 

10여년전 내 웨딩촬영의 경험도 마찬가지.

아내가 내가 사진기자라고 밝히는 바람에 사진가는 우리만큼 식은 땀을 흘렸다.

평소 잘 웃지 않는 나도 안쓰러운 사진가를 위해 왕자 연기를 펼쳐보였다.

 

'아무려면 어때, 패키지 웨딩 상품이라 사진을 안찍을 수도 없고 광대가 되보자!'

 

 

 

 

 

위 사진은 중국 베이징 다산쯔 798예술구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예비 부부들의 모습이다.

아름답고(여자) 멋있게(남자) 포즈를 취하는 우리나라의 웨딩사진 컨셉과 많이 다르다.

가죽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신랑,

만화 코스프레를 떠올리게하는 신부의 깜찍한 표정.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노란색 드레스까지.

 

같이 여행하던 한 동료는 촌스럽다며 키득댔지만, 난 이들의 웨딩 촬영이 너무 맘에 들었다.

우리네 웨딩사진처럼 억지로 표정짓는 사진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베이징 798예술구는 중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예술 특화지구다.

원래 이곳은 구소련과 동독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군수공장지역이었다.

냉전 이후 점차 사라진 공장터를 저렴하게 임대하려는 예술가들이 모여 예술특화거리가 조성됐다.

'798'은 공장의 일련번호다.

 

 

 

 

 

우리네 웨딩 사진은 집들이 손님들에게 보여준 후 다시는 안열어본다고들 한다.

너무 근엄한 유럽의 공주 왕자 컨셉으로 선남선녀가 사진을 찍었으니 당연할게다.

 

798문화구에서 찍는 커플들은 모두 재미있어보였다.

그네들은 억지로 표정짓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즐기며 웃고 있었다.

그들은 웨딩촬영 자체가 하나의 추억이 될것이다.

 

나도 다시 결혼한다면 베이징 798문화구에서 웨딩촬영을 하리라.

저네들보다 더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2012. 10. 중국 베이징 798문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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