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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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기억의 문제

김창길 2013. 8. 4. 20:28

 

 

 

 

경향신문 기획 '김호기, 박인휘 DMZ 평화기행'을 취재를 위해 두 교수님과 함께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먼 길인데다가 휴가절 피서객 차량행렬로 취재차는 속력을 내지 못했다. 왕복 일곱시간이 넘는 지루한 이동시간은 다행히 두 교수님 때문에 즐거웠다. 끊이지 않는 두 교수님의 대화 내용이 흥미진진했기 때문. 마치 라디오 토크쇼를 들으면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두 교수님의 만담은 영화이야기로 이어졌다.

 

"설국열차 재밌다던데요, 봉준호 감독이 제 후배예요."

 

연세대학교 김호기 사회학교수님이 봉감독의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봉감독은 대학시절 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투입해 탄생한 괴물 이야기를 만들것이라고 했단다. 그때는 그냥 하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정말 만들 줄은 몰랐다는 것. 김교수님은 유명세를 타기전 1994년작 '지리멸렬'을 촬영할 때는 자신의 교수실을 빌려주기도 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까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교수 이야기여서 괴씸(?)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교수님이 있었다나....

 

 

 

               <지리멸렬> 에피소드 '바퀴벌레'  Y대 길교수와 과대 김양  

 

토요일(8월3일) 공주님을 외할머니댁에 투입한 후, 아내와 설국열차를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매진!

아내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눌러대더니 외곽의 한 영화관에 좌석을 예약해놓는 기염을 토해냈다. '플란다스의 개'를 본 이후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지라 아내는 봉감독의 영화는 꼭 극장에서 봐야한다며 다른 영화관으로 향했다.

 

 

아내는 설국열차에서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가장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사회학과 출신 감독답게 영화 '설국열차'는 '맬더스'의 '인구론' 등 몇명 사회학이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봉감독은 자신이 대학시절 사회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설국열차는 사회학이론들이 열차처럼 이어져 나온다.

 

각 객차 안의 승객들은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야만 설국열차가 움직일 수 있다는 윌포드(에드 해리스 역)의 대사는 사회계층론을 떠올리게하고, 열차의 엔진은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 이론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이 지도자로 추앙받는 과정은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를 연상케한다. 영화의 끝은 설국열차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이는 기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을 벗어나야만 새로운 사회가 도래한다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엿보게 된다.

 

 

 

 

 

설국열차는 빙하기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노아의 방주다.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열차에 실고 얼음으로 뒤덮힌 지구를 끊임없이 돈다. 한가지 재밌는 점은 기념사진이 필요한 순간에, 열차 내에 카메라가 없다는 것. 나이트클럽, 사우나 등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편의시설이 열차 내에 구비돼 있지만,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진'은 없다. 

주인공 커터스(크리스 에반스 역)도 설국열차 이전의 삶이 어떤 것인지 기억 못한다. 열차 내 반란을 시작하기 지전, 그들은 기념 그림을 찍는다. 속기사처럼 빠르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사진 대신 기념 그림을 그린다.

 

열차를 하나씩 점령해나가는 도중 사상자가 속출하자 늙은 지도자 길리엄(존 허트 역)은 열차 점령은 이정도로 충분하다며 커터스에게 말한다.

"열차를 점령하고 나서 어떻게 할건데?"

주인공 커터스는 대답할 수 없다. 커터스는 열차 꽁무니에서 열차 머리로 전진하는 반란만 꿈꿀 뿐이지 그 이후의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열차 반역에 동승한 송강호는 열차 탈환에는 관심이 없다. 설국 이전의 세상을 기억하는 송강호는 차창을 통해 설국의 모습을 관찰한다. 송강호는 열차의 주인(체제 관리자)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열차 밖으로 나가려 한다. 기존 체제 밖으로 탈출하려한다. 

 

 

 

 

사진기자가 감상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한줄 평.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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