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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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찍고, 쓰고

솔섬은 만인의 것이나

김창길 2014. 3. 30. 18:15

 

 

 

 

강원도의 한 작은 소나무섬을 둘러싸고 영국 유명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와 국내 대기업 대한항공이 다툼을 벌이고 있다. 풍경사진 저작권울 둘러싼 다툼으로 비쳐지는 싸움이다.

 

대한항공은 지난 20118TV광고 우리(에게만 있는)나라-솔섬 삼척편에 아마추어 사진작가 헤르메스(블로거명)의 소나무섬 풍경사진을 사용했다. 이 사진은 17회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 입선 작품이다. 문제는 이 사진이 마이클 케나가 지난 2007년 찍은 솔섬(Pine Trees, Study1)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마이클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 공근혜갤러리는 지난해 7월 헤르메스의 솔섬 사진이 케나의 모작이라며 대한항공을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헤르메스의 솔섬 사진

 

 

풍경사진의 저작권에 대한 국내 첫 판결은 대한항공에 손을 들어줬다. 지난 32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3(심우용 부장판사)동일한 피사체를 촬영할 때 이미 존재하는 자연물이나 풍경을 특정 계절·시간·장소에서 어떤 앵글로 촬영하느냐의 선택은 아이디어이지 저작권의 보호대상이 될 성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다수 언론은 풍경은 만인의 것이라며 공근혜갤러리측의 무리한 저작권 요구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기사를 쏟아냈다.

 

 

케나와 헤르메스의 사진은 다르다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정도로 적극적인 법정 대응에 나선 마이클 케나는 그 사진은 컬러에 직사각형이고 내 사진은 흑백에 정사각형이지만 이것을 배제하면 우리는 정확히 같은 촬영 지점에 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피사체를 찍었다는 이유로 풍경사진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은 다수 언론이 지적했듯이 무리가 있다. 대한항공측은 "광고에 사용한 작품은 역동적인 구름과 태양빛이 어우러져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것으로 케냐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케나 이전에도 솔섬을 촬영한 작가는 많고 자연경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촬영 가능한 것이어서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내가 보기에 두 사진은 피사체만 같을 뿐 매우 다른 사진이다. 마이클 케나의 사진은 솔섬 풍경에서 색체를 제거해 흑백의 빛을 장시간 받아들인 고요한 수묵화같은 사진이다. 빽빽한 소나무 숲은 그 형체만 남아 추상적인 기호만 존재한다. 얕은 모래톱도 그 실재의 의미를 상실하고 굵은 붓으로 그어놓은 두꺼운 수평선처럼 사진에 남아 어둡게 빛바랜 하늘과 바다를 갈라놓는다. 실재의 솔섬 풍경을 피사체로 선택했지만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솔섬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반면 헤르메스의 사진은 광활한 자연속의 작은 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대한항공은 1997년에 찍은 국내 사진작가 옥맹선씨의 솔섬 사진을 찾아내 법정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10년 전에 이미 국내작가가 찍은 앵글이라며. 1차 법정 싸움에서 이긴 대한항공은 공근혜 갤러리와 마이클 케나 등에 명예 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 등 추가적인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유사 사진에대한 우회 도용 의혹

 

공근혜 갤러리측이 솔섬 사진에 대한 저작권 소송을 냈다는 사실 하나만을 보면 갤러리측의 무리한 요구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솔섬 사진을 둘러싼 다툼의 과정을 생각해본다면 대한항공이 갖고 있는 사진에 대한 입장은 다소 실망스럽다.

 

일단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의 수준이 도마 위에 오른다. 유명 영국사진작가가 찍은 솔섬 을 비슷한 구도로 찍은 작품을 입선시켰으니 말이다.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케나의 솔섬 사진을 몰랐다면 자질이 부족한 사람들에 의한 공모전 심사였고, 케나의 솔섬 사진을 알고도(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인데) 입선시켰다면 심사를 대충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문제작을 광고에 활용했다.

 

솔섬이 마이클 케나의 것은 아니지만 그는 사라질 위기에 있었던 솔섬을 지켜냈다. 케나가 사진 촬영을 했던 지난 2007년 솔섬은 LNG 생신기지 건립 계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해졌다. 솔섬은 단지 작은 모래톱 소나무섬이었을 뿐이었지만 케나는 이곳을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으로 세계 곳곳에 알렸다. LNG 생신기지 건설 자체가 보류된 것은 아니지만 사진의 유명세 덕분에 솔섬은 보존하기로 결정됐다. 만약 대한항공이 한국의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고 알리고자 여행사진전을 공모했다면, 솔섬을 지켜낸 마이클 케나의 이야기를 광고에 활용해야하지 않았을까?

 

풍경은 만인의 것이라는 많은 기사들처럼 마이클 케나의 솔섬사진 법정소송 사건은 저작권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헤르메스의 솔섬 사진이 유명 국제사진전에 입상해 그것이 문제가 됐다면 그것은 사진 저작권의 문제를 따져볼만하다. 하지만 이번 소송건은 논란의 소지가 분명한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사진을 광고에 사용한 대기업의 윤리적, 예술적, 사회적 태도를 법으로 다지는 다툼이다. 공근혜갤러리측도 솔섬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며 갤러리가 문제삼는 것은 케나 사진을 연상케하는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사안에 대한 소송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찍힌 헛간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경쟁적으로 찾는 출사지 촬영도 생각해볼 문제다. 유명 출사지를 촬영한다는 것 자체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미 유명한 출사지에서 사진가들은 무엇을 찾으러 그곳에 가는지 스스로 물어야할 것이다. 지난 블로그 '출사지에 대한 오해(http://photonote.khan.kr/49)에 소개한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의 헛간 사진에 대한 대목을 다시 소개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헛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며칠 후, 머레이는 내게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헛간 같은 관광명소를 물어왔다. 우리는 22마일을 운전해 파망턴 근처로 갔다. 그곳에는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 하얀 담장이 넘실거리는 들판을 따라 둘러져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헛간이란 간판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 헛간에 도착할 때까지 모두 5개의 간판을 봤다. 임시 주차장에는 차 40대와 관광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소들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사진 찍기에 좋은, 조금 높은 곳으로 걸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삼각대, 망원 렌즈, 필터 세트도 갖추고 있었따. 부스에서는 한 사람이 엽서와 슬라이드, 그곳에서 찍은 헛간 사진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숲 근처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머레이는 작은 공책에 무언가를 흘려 쓰며 오래도록 침묵했다.

 

아무도 헛간을 보지 않아.”

 

그가 마침내 이야기했다. 또 긴 침묵이 따랐다.

 

일단 헛간을 광고한 간판을 보고 나면, 헛간을 보기는 어려워.”

 

그는 또 다시 말이 없어졌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언덕을 떠났고, 그곳은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우리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게 아니야. 우리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거야. 모든 사진은 분위기를 강화하지. , 그걸 느낄 수 있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의 축적을.”

 

201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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