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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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사파리, 지옥의 문에 들어서다

김창길 2015. 3. 27. 13:17

 

 

 

 

케냐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IT도시 콘자 취재를 3일만에 끝냈다. 다음 목적지 아랍에미리트행 비행기는 일요일인데, 토요일 하루가 자유시간이다. 취재를 하려 해도 토요일에는 공무원들과 관계자들이 쉰다는 적절한 변명거리도 있다.

아프리카에 왔으니 사파리 한번 해보자. 폼 나는 사파리 전용 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초원을 누비는 거야!

 

 

 

 

 

 

나이로비에서 하루 일정으로 소화할 수 있는 사파리를 묻자 숙박업소 주인이 '헬스 게이트' 국립공원에 가란다. 헬스 게이트? 지옥의 문? 긴장된 반응을 보이자 주인이 웃으며 말한다.

"초식 동물만 있으니까, 걸어다녀도 돼요."

 

날이 더워지면 동물들이 나무 그늘로 들어가 구경을 못한다기에 동이 트기 전 출발했다. 폐차 직전의 승합차를 탔다. 삐그덕 삐그덕 요란한 소리를 내는 승합차는 포장된 길을 오프로드 승차감을 안겨주며 도심을 빠져 나갔다. 도로 포장상태도 나쁘고 도로 폭도 좁다. 대형 화물 트럭이 들어서면 도로가 꽉 찬다. 아니나 다를까 도심을 벗어나자 벌러덩 배를 드러낸 화물트럭 한 대가 갓길에 누워 있다.

 

 

 

리프트밸리 전망대 민간 휴게소 겸 찻집

 

 

헬스 게이트 국립공원은 나이로비 도심으로부터 약 90킬로미터 떨어졌는데, 중간에 아프리카 대륙의 진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리프트 전망대를 지난다. 한국인 일행 중 맘씨 좋은 아저씨가 커피 한잔 산다기에 전망대에 내렸다. 중동에서 시작된 30킬로미터가 넘는 폭의 협곡 길이 케냐를 거쳐 잠바브웨로 뻗어 나간다는데 총 길이가 무려 7,700키로미터다. 폭이 넓으니 협곡이란 느낌보다 평원같다. 스케일이 굉장하다.

 

삐걱 거리는 승합차로 약 2시간 달려 헬스 게이트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한복판의 산 꼭대기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게 꼭 악마처럼 보인다해서 헬스 게이트라 부른단다. 협곡에서는 온천수가 나온다는데, 워낙 더운 나라라 온천시설은 없다.

'이곳에서 멋진 사파리 전용 차량을 갈아타고 초원을 달리는거구나! 오프로드를 달릴려면 광폭 타이어를 장착한 짚차를 타야 할거야. 창문 유리에는 철조망이 쳐있겠지.'

운전기사는 입장권을 구입하더니 승합차 뚜껑을 들어 올렸다. 아뿔싸! 지붕을 들어 올리면 이게 바로 사파리 승합차였구나.

 

 

 

 

 

 

 

게이트를 통과하자 멀리서 얼룩말들이 보였다.

"! 얼룩말이다!"

한국인 일행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찰칵 찰칵 카메라가 바쁘다.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슬금슬금 얼룰말들에게 다가갔다. 얼룩말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친다.

"! 원숭이다!"

운전사 양반, 저 원숭이가 무슨 원숭이야? 개코 원숭이? 아 맞다, 정말 개코 닮았네. 아냐 아냐 개떼처럼 몰려다녀서 그럴게야. 원숭이를 본 일행들은 또 흥분했다.

"! 기린이네!"

"! 사슴이다!"

일행들은 사파리를 시작한지 대략 20분동안 감탄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분위기가 점차 수그러들더니 표정들이 심드렁하다. 그도 그럴것이 점차 와일드한 볼거리가 나와야하는데 초식 동물들은 너무 얌전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심드렁했다. 나이로비에서 콘자 취재를 가는 길목에서 얼룩말들은 이미 봤기 때문. 심지어 이곳에서 구경하지 못한 타조와 낙타도 구경했기에 낙담이 컸다.

 

 

 

 

 

 

 

헬스 게이트를 나온 일행들은 점심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사파리에 좀 실망한 눈치인것 같았는데, 일행 중 분위기 메이커 한 명이 맥주를 돌리며 분위기 반전에 힘썼다.

", 다음은 나이바샤 호수 보트 투어에요. 홍학떼가 장관이라네요. 자 한잔 합시다, 건배!"

 

헬스 게이트 국립공원 인근의 나이바샤 호수에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지가 있다. 초승달이라 불리는 섬인데, 원래는 동물이 살지 않아 영화를 위해 버팔로, 기린 등 초식 동물들을 풀어놨다고 한다. 30년전 일인데, 지금은 그 동물 배우들이 자연번식하며 홍학의 군무와 함께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나.

 

 

 

 

나이바샤 호수 초승달섬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버팔로와 펠리칸이 평화롭게 쉬고 있다.

 

 

"운이 좋지 않네요. 홍학떼가 저번 주에 다 날아가 버렸어요."

보트 선착장에 도착하자 선장이 미안한 표정이다. 일행들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졌다.

"날도 더운데 대충 보고 철수하지모."

"그래도 하마는 볼 수 있을 거에요. 물에서는 하마가 제일 쎄다잖아요. 볼 만할 거에요."

건배를 제의한 분위기 메이커가 다시 힘을 쓰고 있다. 선장은 하마를 보여주겠다며 요리 조리 배를 운전해 나갔다. 선장이 일행들을 향해 소리쳤다.

"운이 좋네요. 저기, 하마 가족이 있어요!"

일행들은 선장의 손가락질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지만 좀체 하마를 찾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호수 속의 하마는 눈깔과 콧구멍만 수면 위로 내놓기 때문에 가까이 가도 하마의 형체를 볼 수 없다. 하품이라도 해주면 그 큰입을 보며 감탄하겠구만, 하마는 콧구멍만 벌렁거렸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그만 나가자고!"

", 저기 펠리칸이 있네요!"

분위기 메이커 아저씨가 또 안간힘이다. 나도 분이기 메이커를 도왔다.

"저기, 저 새는 가마우지라는 새인데, 2-3분 동안 물속을 잠수하면서 물고기를 사냥한다네요."

"그래? 아프리카에만 있어?"

"아니요, 한국에도 많아요."

미묘한 분위기 속에서 나이바샤 보트 투어는 1시간 만에 끝났다.

 

 

 

나아바샤 호수 보트 투어

 

 

덜컹거리는 승합차를 타고 일행은 나이로비로 향했다. 오는 길에 만난 누워 버린 트럭은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다. 분위기 메이커가 또 한번 기를 쓴다.

, 몇 시에 도착하는지 내기 할까요?”

심드렁하던 일행들의 표정이 밝아 졌다.

“30!”

아냐, 도심에 들어서면 차가 막혀. 1시간!”

운전기사 뒤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운전사에게 5달러를 건넨다.

“50분에 도착합시다!”

운전수는 정확히 50분에 나이로비 숙소에 도착했다.

 

 

 

나이바샤 호수 펠리칸

 

 

2015. 1. 아프리카 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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