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와 함께 초등학교 4학년 소녀는 극장에 갔다. 인천에서 제일 오래된 극장, 애관극장을 찾았다. 대기업 체인점 극장들이 봉준호 감독 신작 '옥자' 상영을 거부했기 때문에 다른 중소 극장들이 스크린에 옥자를 걸었다. 한산했던 동인천 애관극장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인기 블록버스터 영화를 내걸어도 썰렁했건만, 극장 안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만석이었다. 슈퍼돼지 옥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됐다.

 

"근데, 옥자 눈이 사람 같."

 

소녀의 눈은 정확했다. 사진기자인 아빠의 눈은 옥자의 눈이 돼지의 눈인지, 개의 눈인지 구분할 줄 몰랐다. 그제야 아빠의 동공은 열렸다. 옥자의 눈은 물론, 생김새, 행동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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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눈은 왜 사람의 눈일까? 옥자는 주인공 소녀 미자(안서현)가 바라본 옥자인데, 미자에게 옥자는 가축이 아니다. 할아버지(변희봉) 눈에는 가축이겠지만. 옥자는 미자와 함께 유아기를 보낸 친구이자 가족이다. 단순히 유아기를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옥자와 미자가 사는 공간은 첩첩산골이다. 먹거리는 닭 몇 마리를 기르며 수렵 및 채집을 통해 조달한다(옥자는 사냥개처럼 수렵 활동을 돕는다.). 옥자와 미자는 자본주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시간과 공간에서 살고 있다. 미자의 옥자를 생각하기 전에, 할아버지가 바라본 옥자를 바라본다.

"어떤 농부는 자신의 돼지를 아주 좋아하게 되고, 그리고 그는 그것의 고기를 기꺼이 소금에 절여 버린다. 이 문장 속에 들어 있는 두 개의 진술이 '그러나'가 아니라 '그리고'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평론가 존 버거(John Peter Berger 영국 1926-2017)지식인답지 않게 ", 우리는 동물을 구경하는가?"라는 좀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그 대답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다. 먼저, 그는 소농계급이 바라보는 가축에 대한 시선을 짚어본다.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농부인 할아버지는 옥자를 좋아하지만, 옥자는 결국 삼겹살, 목살, 등심, 앞다리살 등으로 해체될 존재라고 미자에게 말한다. 옥자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닌 것이다. 나의 할머니도 그랬다. 마당에 기르던 강아지들은 성인이 되면 없어졌다. 할머니도 강아지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존 버거는 가축은 지배의 대상이면서 숭배의 대상이고, 길러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희생의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자에게 옥자는 좀 더 의미 있는 존재다. 미자와 옥자는 잠도 같이 자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옥자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미자가 돼지의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에는 옥자와 미자의 대화 장면만 있을 뿐, 소리는 없다. 관객은 미자의 반응을 통해 옥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옥자 자신이 사람의 눈빛으로 말을 할 때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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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가 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힌트는 영화에 나오는 한 장의 기념사진에 있다. 직립보행의 재미를 느낄만한 나이의 미자와 아직 슈퍼돼지로 변신하지 않은 옥자가 서로 뒤엉켜 바닥에 뒹구는 모습. 미자는(옥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적인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성장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한 명, 그리고 옥자와 함께 성장했다. 언어는 구별 짓기에서 시작하는데, 미자와 옥자는 서로 뒤엉켜있다. 이름도 비슷하다. 가축이 가족 이름의 돌림자로 호명된다.

옛 기록물들에는 동물과 사람이 서로 뒤엉켜 있다. 마치 동화처럼. 인류 최초의 그림인 동굴벽화의 피사체는 소, 사슴 등 동물이다. 고대 문헌 중의 하나인 일리아스(Illias)에서는 전쟁에서 죽은 인간과 말에 대한 묘사의 방법이 동일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날개를 달거나 하체가 짐승인 종족도 자주 등장한다. 수단 남부의 누에르족의 세계관도 동물과 사람이 뒤죽박죽이다.

 

"인간을 포함, 모든 생물은 원래 친구처럼 한 곳에서 살았다. 여우가 몽구스에게 사주하여 코끼리 얼굴에 몽둥이를 집어던지도록 한 이후에 불화가 시작됐다. 반목은 계속 됐고, 동물들은 서로 헤어지게 됐으며, 각각의 동물이 제 갈 길로 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살게 되고 서로 죽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스스로 숲속에서 살고 있던 위장(stomach)이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왔고, 현재처럼 언제나 굶주리게 됐다. 인간의 몸과는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던 성기들도 각기 남자와 여자의 몸에 붙게 되어 그것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서로를 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됐다. 코끼리는 인간에게 수수를 빻는 방법을 가르쳤고, 그렇게 해서 인간은 오로지 쉬지 않고 노동을 해야만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됐다."(로이 윌리스 <인간과 야수>)

 

누에르족들에게 노동을 가르친 것은 족장도, 아버지도 아니었다. 코끼리였다. 그렇게 동물은 인간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동물이 사람 주변으로 밀려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노동을 가르쳤던 코끼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경꺼리로 전락했다.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 강국이 된 유럽 열강들은 이국땅을 넘보며 식민지를 개척한다. 전쟁의 승리에는 전리품이 따르는 법, 식민지 전쟁의 승자들은 이국의 희귀한 야생동물들을 승리의 기념물로 본국에 데려온다. 동물원이 탄생한 건 바로 이 즈음이다.

 

 

 

바넘 앤드 베일리 서커스단이 제작한 점보 홍보 포스터. 점보의 크기를 과장해 한 학급 분량의 아이들이 등에 앉고도 남는 ‘괴수’로 묘사했다./ 최명애씨 제공

 

 

세계 최초의 동물원인 런던 동물원의 인기 스타는 아프리카 코끼리였다. 점보(Jumbo)! 아시아 코끼리보다 몸집이 컸던 점보는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코끼리 손으로 빵을 받아먹었다. 괴수같이 거대한 동물이 한갓 어린이들의 노리갯감이 된 것. 타민족을 식민화 시키듯, 야생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승리는 동물원에서 목격됐다.

다시 옥자로 돌아간다. 소녀가 말했듯, 옥자의 눈은 사람의 눈이다. 옥자의 전체적인 모습은 하마다. 야생의 하마는 천하무적의 무시무시한 천적인데,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하마의 이미지는 귀여운 존재다. 마치 아기코끼리 점보처럼. 옥자의 얼굴은 애완동물 그 자체다. 강아지 얼굴이다. 덩치가 커서 그렇지 작다고 상상해보면 바둑이 얼굴이다. 더 자세히 옥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옥자의 귀가 아기 코끼리 덤보를 닮았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덤보'의 원래 이름은 '점보 주니어'. 엄마가 점보인데, 그 모티브가 바로 런던 동물원의 인기스타 점보였다.

다시 점보 이야기다. 문화생태학자 최명애씨의 <반려종 이야기-큰 것의 대명사 코끼리 점보>에서 동물과 사람에 대한 시선에 대한 힌트를 읽어낼 수 있다. 런던동물원에서 이상 증세를 보였던 코끼리 점보의 유일한 친구는 조련사 '스콧'이다. 하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쑥기 없는 스콧에게도 유일한 친구는 점보였다. 스콧은 밤이 되면 야수로 변하는 점보와 함께 맥주와 위스키를 나눠 마셨다. 취한 스콧이 노래를 부르면 점보는 코끼리 손으로 트럼펫 연주를 했다니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Orpheus)를 닮았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면 초목과 짐승들이 감동을 받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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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는 코끼리 조련사를 마훗(mahout)이라 부른다. 마훗은 소년 시절에 코끼리 한 마리를 만나 평생 그 코끼리를 돌본다. 마훗과 코끼리의 관계는 단순한 조련사나 사육사가 아니라, 사랑과 착취가 뒤섞인 기묘한 우정을 나누는 이종 간 동반자 관계라고 최명애씨는 말한다. 점보의 마훗이었던 스콧은 점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죽기 며칠 전에는 마치 점보가 살아있는 듯 상상 속에서 점보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한다.

 

영화 옥자의 미자는 슈퍼돼지의 마훗이다. 거대 자본이 데려간 옥자를 미자는 구출 할 수 있을까? 옥자 등에 탄 미자는 코끼리 덤보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 자본주의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2017. 6.

 

Posted by 김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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