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차부집을 기억하시나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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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부집을 기억하시나요?

김창길 2015. 9. 20. 18:54

 

 

 

 

충북 영동군 양산차부슈퍼

 

 

 

버스 옆구리를 쾅쾅 두드리며 ‘오라이’를 외치던 그때 그 버스 안내양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현금처럼 버스표를 받아주던 학교 앞 분식점은 아직도 떡볶이를 팔고 있을까? 10장이 한꺼번에 인쇄된 버스표를 교묘하게 잘라 11장을 만들었던 학교 친구는 잘살고 있을까? 반쯤 찢은 버스표를 내고도 들키지 않았다며 자랑하던 친구였는데….

 

시골에는 버스표를 팔던 가판대가 없었다. 버스가 정차하기 좋은 길목에서 장사를 하는 식당, 방앗간, 잡화점, 이발소에서 버스표를 팔았다. 이런 가게를 차부집이라 불렀다. 차부(車部)는 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터미널이란 뜻이다. 차부집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옛 풍경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버스정류소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차부슈퍼

 

 

 

“카드가 더 싸니까 버스표가 안 팔리지.”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마을 나들목에 있는 양산차부슈퍼는 3년 전부터 버스표를 팔지 않는다. 교통카드 할인율 때문에 사람들이 더 이상 버스표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제법 큰 규모의 상점인데도 물건들은 별로 없다. 채소, 청과, 생선을 판다는 차부슈퍼의 간판은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가게 바로 앞에 생겨난 농협하나로마트 때문이다.

 

 

 

 

충남 서천군 판교차부상회

 

 

 

천안차부슈퍼는 버스 종점이다. 구멍가게라 불러도 될 만큼 작은 가게지만 시외버스표를 직접 발행한다.
“시내버스표는 2년 전부터 안 팔아. 이것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네.”

20년 전에 충남 천안시 동남구 동면으로 시집와 차부상점을 인수했다는 아주머니는 ‘차부슈퍼약’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다. 조그만 마을이라 약방이 없어 간단한 상비약을 비치했다. 슈퍼의 모습은 20년 전과 똑같다. 달라진 건 버스표에 인쇄된 요금 숫자와 버스 시간표뿐인데, 사람들로 북적이던 차부상회 풍경은 온데간데없다.

 

 

 

충북 영동군 학산면 정류장슈퍼

 

 

 

“예전에는 굉장했어. 사람들이 바글댔지.”

 

 

간판도 달지 않은 판교차부상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노인이 잘나가던 시절 동네 자랑을 했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 가곡리는 작은 마을이지만 한때는 극장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우시장이 사라지고 기차역이 이전하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번화가였던 상점가에 드문드문 빈 가게들이 보인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오일장도 한나절이면 파한다.

 

 

군청에서 멀지 않은 마을이지만 판교면을 지나는 버스에는 교통카드 단말기가 없다. 마을 밖으로 나가려면 버스표를 사러 차부상회에 가야 한다. 비가 내리자 마을 사람들이 차부상회 처마 밑에 모였다. 우산을 접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 차부상회는 마을 사랑방이 됐다.

 

 

 

충남 서천군 판교차부상회

 

 

 

차가 오면 금방 떠날 사람들이지만 차부상회는 늘 미닫이문을 열어둔다.

어둠이 내리면 차부상회는 불을 켜고 외지로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오늘도, 막차가 들어올 때까지 차부상회 간판 불빛이 깜박거리고 있을 것이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차부슈퍼

 

충청도 차부상회 201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