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인들은 불교의 경전을 넣어두는 마니차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샹그릴라 사원에는 높이 21m, 무게 60톤에 달하는 대형 마니차가 있다. 이 초대형 마니차에는 성불을 염원한다는 뜻을 지닌 '옴마니반메홈'이라는 글자가 무려 124억개나 새겨져 있다고 한다.

 

세계의 지붕 티베트 라싸를 목전에 둔 차마고도는 샹그릴라를 통과한다. 티베트어로 '푸른 달빛 골짜기'를 뜻하는 샹그릴라는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한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는 험준한 설산과 협곡, 광활한 초원이 펼쳐지는 지상낙원으로 묘사된다. 동양을 신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서양인들은 히말라야 부근 어딘가를 피안의 세계로 꿈꾸고 있었다

 

 

홍군장정박물관(紅軍長征博物館) 입구에서 젊은 승려가 관광객들을 구경하고 있다. 박물관은 중국공산당 홍군이 1936년에 국민당 군대에 쫓겨 샹그릴라에 오게 된 과정을 구경할 수 있다.

 

험준한 호도협곡을 통과하면 차마고도는 샹그릴라로 이어진다.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라는 뜻의 샹그릴라는 라싸로 들어가는 목전의 도읍이다. 원래 지명은 윈난성 디칭티베트족자치주 중뎬[中甸]이다.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원이자 산악지형이 대부분인 중덴현은 삼림이 경제 밑천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중극 정부의 천연림보호공정 정책으로 경제의 버팀목을 잃었다. 고민하던 윈난성 정부는 1997년 지역 이름을 샹그릴라로 개명했다.

 

샹그릴라는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1933년에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지명이다. 소설에서 샹그릴라는 히말라야 부근 동양 어딘가에 자리 잡은 평화로운 지상낙원으로 묘사된다. 아름다운 설산과 험준한 협곡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윈난성 중뎬의 아름답고 신비한 분위기는 샹그릴라라 부를만 했던 것이다.

 

 

장족 아이들이 이층집 창문에서 외국인들을 구경하고 있다.

 

2001년 중국 국무원의 비준으로 샹그릴라로 정식 개명한 중뎬은 A급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지난 2011년에는 600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샹그릴라에서 58억 위안의 관광수입을 가져다줬다. 샹그릴라현이 속해 있는 디칭주는 현재 소수민족 문화생태 보호구역이며 윈난성 4대 문화브랜드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샹그릴라 중심가는 활기넘친다. 장족 전통가옥을 그대로 활용한 상점에서는 미처 등산복을 준비하지 못한 관광객들을 위해 노스 XXX도 팔고 있다. 가격은 좀 저렴한데 역시 중국이라 손이 가질 않는다. 중심 광장에는 전통복식의 장족 아낙네들이 가판을 깐다. 음식, 장신구 등을 파는데 그들 모습 자체가 관광상품처럼 느껴진다. 간단한 눈인사와 함께 셔터를 누른다.

 

해가 지면 장이 열렸던 광장은 체조 운동장으로 변한다. 30여분동안 음악에 맞추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배낭객들은 객잔에 머물며 인터넷 서핑을 하며 서로의 정보를 교환한다. 거리에는 홍등이 켜지고 몇몇 주점들이 손님을 기다린다.

 

차마고도에서 말을 찾기 힘들다. 장족 아낙네가 말 대신 삼륜 자전거를 끌고 울툴불퉁한 돌길을 지나고 있다.

 

윈난성 차마고도를 샹그릴라에서 마무리했다. 라싸는 외국인의 출입이 쉽지 않다. 한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는 바람에 여행 초기에는 적잖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오지가 아직도 남아있을까? 사자와 코끼리가 뛰노는 아프리카는 부자들의 사파리 여행지이고, 남아메리카의 정글도 이제 오락 프로그램의 배경이 되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차와 말을 교역했다는 길은 대부분 아스팔트가 깔려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외지인들의 눈에 이색적인 차마고도 마을은 관광수입에 점점 더 의존해가며 그들의 생활풍습을 상품으로 내놓는다.

 

윈난성에는 무려 26개의 소수민족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차마고도를 따라 엿본 그들의 삶에서 차마고도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동차가 일반화된 중국에서 말들을 끌고 다니는 마방들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제 그들은 생명을 걸고 험준한 차마고도를 지나며 말과 차를 교역하지 않는다. 다만 그러했다는 그들의 모습을 포장해 외지인들에게 팔고 있다. 나는 차마고도였던 길을 걷고 있었다.

 

 

 

2009. 8. 샹그릴라

Posted by 김창길

 

황토빛 금사강 물결이 회오리치고 있다.

 

보이차의 원산지 윈난성 운남역관에서 출발한 차마고도는 헙준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호도협곡을 통과한다. 이 험난한 낭떠러지 길을 지나야 샹그릴라를 거쳐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갈 수 있다. 아찔한 협곡길이지만 티베트로 가야만 하는 마방들은 생명을 걸고 협곡을 건넜다.

 

 

굽이치는 황토빛 금사강과 함께 날카로운 협곡의 모습은 원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호랑이가 건너다녔다고 호도협이라 불린 협곡은 호랑이가 건널만큼 강폭이 좁지 않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옥룡설산과 합바설산 사이를 통과하는 협곡에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 장강(양쯔강)이 흐른다. 장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강이기도하다. 호도협곡을 지나는 장강을 금사강이라 부르는데, 황토빛 강물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16km에 달하는 협곡을 굽이쳐 흐른다. 급류가 심한 협곡에서는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귀를 멍하게 만든다. 상류와 하류의 낙차가 170m인만큼 급류의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굽이친다.

 

 

실제의 차마고도 옛길 아래 새로 만든 길에는 인력거가 운행돼 노약자도 협곡과 장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차마고도는 대략 8개의 길이 있다. 윈난성에서 시작되는 차마고도 호도협 구간은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릴만큼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길이다. 마방의 후예들은 관광객들에게 말을 제공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산증이 없는 사람들은 직접 걸어서 호도협 구간을 통과한다. 협곡의 계단식 논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쉼터인 객잔도 나온다. 중도객잔은 세계 제일의 풍경을 자랑하는 화장실도 있다. 스물여덟 개의 협곡이 이어져 '28밴드'라 불리는 호도협 마지막 구비는 2,670m의 가파른 길이다. 마방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걷던 길을 걸으면 당시 '차'와 '말'의 가치에 대한 상념에 젖어든다.

 

 

 

2009년 8월 차마고도 호도협

 

Posted by 김창길

 

인상여강 현지인 배우들이 차잎을 가득 싫은 광주리를 짊어지고 산길을 오르고 있다.

 

차마고도 옥룡설산 운산평 아래는 대형 야외극장이 있다. 이 극장은 지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연출한 '장이모' 감독의 야외극이 펼쳐지는 곳이다. 첸 차이거와 함께 대표적인 중국 5세대 감독으로 꼽히는 장이모는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1987년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영화계에 데뷔한 인물이다.

 

 

뒤로 보이는 옥룡설산을 배경이 된 야외극장에서 윈난성 현지인들이 호탕한 마방을 연기하고 있다.

 

장이모 감독은 중국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가 '모옌'의 소설 '홍까오량 가족'을 바탕으로 영화 붉은 수수밭을 만들었다. 베를린 영화제 수상으로 유명세를 탄 장감독은 메이저 영화사 미라맥스의 제작비 3500만달러가 투입된 무협영화 '영웅'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이루기도 했다. 이연걸, 장쯔이, 장만옥 등 톱스타가 출연하는 영웅은 장이모를 모르는 사람들도 영웅을 보게 만들었지만, 너무 대중적인 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떤이들은 천화통일을 꿈꾸는 영웅의 이야기가 중화사상을 합리화하려는 한족의 논리가 투영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 나시족 집안에서 결혼한 딸을 보내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장면.

 

장이모 감독의 인상여강은 스펙타클하다. 언뜻 생경맞게 느껴지는 야외무대이지만 수백명의 출연진들이 펼치는 연기에 빠져들다보면 실제의 옥룡설산 옛 이야기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연기자들도 모두 현지인들이다. 특별한 주인공이나 대사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전문 배우가 아닌 현지 소수민족들이 연기한다고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공연 마지막 무렵 북춤을 연기하는 현지인들.

 

옥룡설산이 배경이니만큼, 차마고도의 이야기도 나온다. 차 농사를 짓는 아낙네의 고달픈 삶과 마방들의 모습. 특히 마방들은 말들을 타고 원형무대를 돌며 서라운드 시각효과를 연출한다. 무대 양 옆에 영어 자막으로 공연의 이해를 돕는데, 요듬은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 한국어로도 나온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가 기립박수다. 스케일이 다르다. 나도 모르게 관객들과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공연이 끝난후 관객들은 현지 배우들과 기념사진도 찍는데, 차마 그것까지는 하지 못했다.

 

 

 

2009년 8월 차마고도 옥룡설산에서

Posted by 김창길

 

운산평에서 바라본 옥룡설산이 구름에 갇혀 있다.

 

 

윈난성 운남역관에서 시작한 차마고도 탐방은 일년 내내 눈이 녹지 않은 만년설산인 옥룡설산에 이르렀다.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이자 북반구에서 제일 남단에 있는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으며 해발 5,596미터에 달한다. 은빛 용이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다해서 옥룡설산이란 불린다.

 

 

운산평을 가던 중 소들이 길을 막고 있다.

 

옥룡설산은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벌을 받아 갇혀 있던 산이라고 전해진다. 나시족도 옥룡설산을 거룩한 성산으로 여기며 등반을 금기시하고 있다. 빼어난 풍광의 옥룡설산은 중국 정부가 국가풍경구로 지정해 엄격히 관리한다. 국가풍경구는 한국의 국립공원같은 개념으로 옥룡설산은 중국 국가풍경구 최상등급은 ‘5A’에 해당한다.

실제로 옥룡설산 정상은 사람의 정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등반가라도 옥룡설산을 정복할 수 없었다. 쉽게 부숴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기 때문이다.

 

 

운산평 사원 앞에서 야크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차와 말을 교역하던 마방들은 더 이상 옥룡설산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마방의 후예들이 차와 말 대신 여행자들을 말로 실어 나르며 생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옥룡설산은 차마고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호도협곡 중 일부 구간이다. 호도협곡은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 트레일과 페루 맞추픽추의 잉카트레일과 함께 세계3대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 정상 정복이 금지된 옥룡설산은 중국의 위륭쉐산 주식회사와 한국의 한 여행사가 트래킹 코스로 개발했다. 해발 4600m의 설련대협곡 구간까지 트레킹이 가능하다.

 

 

운산평 사원의 승려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옥룡설산 구간 차마고도에서는 고산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해발고도 3,300미터의 운산평은 일반인들도 쉽게 옥룡설산을 감상할 수 있는 고원지대다.

나시족, 이족, 장족 등 여러 소수 민족이 옥룡설산 주변에 살고 있다. 한때 호전적인 기질의 이족들과 장족들이 큰 싸움을 벌여 서로 죽이는 사건도 발생했다고 한다. 운산평으로 유입돼는 관광객이 많아지자 그 이권을 서로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다. 더 이상 유목민이거나 마방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의 비애다.

 

 

옥룡설산 아랫 마을의 천진난만한 어린이

 

2009 차마고도 옥룡설산

 

Posted by 김창길

 

옥룡설산 야외무대에서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 공연. 현지 주민들이 옛 마방들을 연기하고 있다.


“신농(神農)이 수백가지 풀을 먹다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었다. 그 때 푸른 잎사귀 하나가 신농의 입으로 떨어졌다. 신농이 이 잎을 먹자 정신이 맑아졌다.”

B.C 2500년경에 존재했다는 중국 농업의 신 신농(神農). 중국 사람들은 신농의 이야기를 꺼내들며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 주장한다. 차를 의미하는 말은 서양에서는 'tea', 동양에서는 말그대로 'cha'라고 부른다. 'tea'와 'cha'는 모두 중국 방언이다. 굳이 증명할 수 없는 신농의 존재를 논하지 않더라도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고 모두가 인정한다. 

 

사계진 동쪽에 삼중 누각으로 세워진 고희대.

 

유목민 티베트인들의 주식은 야크의 젖과 고기다. 먹을거리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채소류 섭취도 어렵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를 전해준 것은 당나라 문성공주라는 견해가 있다. 7세기 경 '손챈감포'는 칭짱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했다. 티베트 라싸를 중심으로 통일 왕국을 탄생시킨 손챈캄포는 당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위해 당 태종의 양녀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성공주는 불상과 함께 가져온 것이 바로 차였다. 티베트인들은 차에 빠져들었다.

 

 

사계진 상점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물건을 구입하는 현지인들.

 

윈난성 지엔촨현의 남부에 자리한 사계진은 북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중원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요충지였다. 마방들이 이곳에 머물자 시장통이 번성했다. 남과 북의 물품들이 모이자 사계진은 경제와 문화가 번성하게 됐다.

 

사계진은 차마고도 옛 장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관광지 분위기기 너무 짙은 리장과 달리 사계진 시장통에서는 현재도 여러 소수민족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있다. 백족이 살던 민가의 전형적인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차마고도의 오성급 마방'이라 불리는 어우양(歐陽)씨 집안의 가옥도 잘 보존돼 있다.  

 

 

사계진 전통 가옥에서 이발을 마친 이발사가 붓으로 머리카락을 떨어내고 있다.

 

사계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를 지나는 아낙네가 막대 사탕을 들고 있다. 

 

 

장을 본 아낙네들이 남에서 북으로 가는 상인들이 드나들던 동채문(東寨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불교사원 흥교사 앞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 흥교사는 명나라 영락제(1415년) 때 만들어졌고, 20여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2009년 8월 차마고도에서

Posted by 김창길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로 적힌 소원 나무판. 바람이 불면 방울 소리와 함께 소원이 하늘로 올라간다나.

 

차마고도 교역로는 대략 여덟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옛 차마고도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길은 두 개 정도다.

보이차의 원산지 윈난성 남부에서 시작된 길로 따리, 리장, 샹그릴라를 지나 티베트에 이르는 길과

쓰촨성 야안에서 시작돼 티베트 라싸로 이어지는 길.

길은 라싸에서 끝나지 않고 히말라야를 넘어 실크로드와 합류한다. 

 

윈난성 운남역관을 출발한 차마고도는 아름다운 전통 기와집이 모여있는 '리장(여강麗江)'으로 이어진다.

차, 소금 등을 교역하던 마방들의 규모는 다양했다.

일가족 단위에서 말 200필 이상을 끌고다니는 대규모 마방 등 규모에 따라 이동 거리도 달랐다.

마방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교통과 상업 중심지가 됐다.

윈남성 리장은 마방들로 인해 생겨난 대표적 상업 중심지였다. 

식당, 여관, 상점 등이 번성했는고, 대형 상점은 스스로 대규모 마방을 꾸려 물건을 교역하기도 했다.  

 

 

나시족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 지금은 차마고도의 흔적 은 아련하고 이색적인 풍경의 관광지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로같은 골목길과 수로가 얽힌 리장의 전통 마을은 밤이면 저마다 홍등을 밝힌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곳 리장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를 얻었다.

치히로가 길을 잃고 도착한 마을은 밤이 돼자 홍등이 켜지고 온갖 정령들이 출몰하는 유령마을로 바뀐다.

리장의 밤거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시골 촌락이었던 리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96년에 윈남성 일대에 초대형 지진이 발생해 3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다행이 지진은 리장을 피해나갔다.

윈난성 지진 피해를 복구하던 중국 중앙정부와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이색적인 리장의 매력을 발견했다.

돈 많은 한족들은 나시족의 허름한 집들을 헐값에 매수해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발빠른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리장은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못을 사용하지 않은 리장의 목조건물들은 지금도 상점, 찻집, 주점, 객점 등으로 사용된다. 

 

전통 기와가 고스란히 간직된 리장 고성. 1997년 리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리장은 소수민족 나시(納西)족의 자치구역이다.

본래 티베트계 유목민이던 나시족은 강대 민족의 등살에 리장에 정착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던 소수민족이었지만 나시족은 고집스레 자신들의 문화와 풍속을 지켰다.

나시족 고유의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나시고악, 샤머니즘 원시종교인 동파교, 상형문자인 동파문자....

특히, 동파문자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최후의 순수 상형문자다.

동파문자로 쓰인 '고대 나시 동바문화 필사본(Ancient Naxi Dongba Literature Manuscripts)'은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종이 공방에서 닥나무 종이 위해 동파문자를 적고 있는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리장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리장고성은 대부분 한족 소유로 많은 나시족들이 주변 마을로 이전했다.

동파문자 역시 마찬가지.

나시족 고유의 정신시계를 표현했던 동파문자는 이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종이공방에 고용된 나시족들은 관광객들에게 동파문자를 써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동파교의 사제를 동파라고 부르는데,

동파 대다수가 종이공방에 고용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2009년 8월 차마고도에서

 

Posted by 김창길

 

차마고도 끝자락 샹그릴라. 티베트어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라는 뜻의 샹그릴라는 중국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티베트자치주에 속한다.

 

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서 1세기경 만들어진 차마고도(茶馬古道).

중국 서남부의 특산물인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형성된 인류 최고(最古)의 무역교역로다.

길이 5,000㎞, 평균고도 4,000m에 달하는 이 고대 무역로는 이제 흔적만 남았다. 

 

 

운남역관 입구

 

차마고도는 당·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됐다.

1000년 전 티베트 불교가 티베트의 주도인 라싸[拉薩]에서 윈난·쓰촨 지역으로 전래되기도 했다. 

설산(雪山)들과 아찔한 협곡으로 이어지는 차마고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진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을 연결하는 수천㎞의 아찔한 협곡은 

삼강병류 협곡(Three Parallel Rivers of Yunnan Protected Areas)이라 불린다.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차마고도를 지나던 마방들이 쓰던 안장들. 둥글게 압착한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떫은 맛이 사라지고 향기가 오래 지속된다.

 

차마고도를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고 불렀다. 

수십 마리의 말과 말잡이인 간마런으로 이루어진 마방들이 교역하던 품목들은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 버섯류 등 다양했지만 그중 제일은 보이차다.

 

보이차는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이 마셨던 발효 흑차다.

윈난성 등 여러 지방에서 생산된 차는 푸얼현(普洱縣) 차시장에서 모아 출하하기 때문에,

푸얼차[普洱茶]라 불리기도 한다.

푸얼차는 윈난성에서 생산되는 차잎을 햇볕에 건조시킨 모차(母茶)다.

윈난성 차의 출하량이 부족해 쓰촨성, 베트남,  타이 등지의 차엽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차를 변경 보이차라고도 한다.

티베트인들은 마방들이 싫고 온 보이차의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돌길을 걷는 아낙네.

 

윈난성 수도 쿤밍 서쪽 260㎞ 지점에 위치한 운남역관은 차마고도의 주요한 교역로 3곳이 뻗어나가는 첫번째 관문이다.

운남역관은 역사(휴게실), 마구간, 객점(숙소) 등 차마고도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명대에 가장 번성했던 이 지역은 20세기초 교역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현재는 농업이 주요산업이다.

 

 

운남역관 입구 들판에서 어린이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역관에는 '옛날의 영광은 사라지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는 액자가 걸려있다.
현재의 운남역관은 농민들이 살고 있는 조용한 촌락.

지게를 짊어진 아낙네들과 리어커를 끄는 사내들이 옛 차마고도 돌길을 지나고 있다.

 

 

 

 2009년 8월. 차마고도 운남역관

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