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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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꼬라데이 탄광마을

김창길 2013. 10. 15. 09:32

 

하늘 아래, 구름 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망경대산 싸리재에서 모운동 마을 주위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구름처럼 모여든다'라는 말뜻이 무언지 실감한다.

 

 

구름이 쉬어가는 첩첩산중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생 막장에야 찾아온다는 탄광은 가방끈도 짧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필부들에게 가장 노릇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었다.

두손 두발만 있으면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망경대산 7부능선 산꼬라데이(산골짜기)를 넘어왔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옛 탄광촌 모운동마을이다.

 

 

 

동화속 주인공같다는 마을 이장의 농담에 할머니들이 웃고 있다. 탄광촌 50여년의 흥망성쇠를 지켜온 광부의 아내들이다.

 

 

여기 시집온 색시들은 첫날밤에 네 번 놀래요.”

 

2살 때 광부 아버지를 따라 모운동마을에 온 김흥식(58) 이장이 부인 손복용씨를 보며 웃는다.

광산이 돈줄이란 소문에 모운동 광부들에게 시집가는 색시들은 구불구불 굽이치는 험한 산길에 놀라며 눈물 짓는다.

해질 녘 사치재를 넘어온 색시들은 첩첩산중 시집 마을의 반짝이는 야경에 놀란다.

설랬던 첫날밤을 모낸 색시들은 다음날 아침 어젯밤 화려했던 마을이 단지 촘촘히 모인 함석집이란 것에 놀란다.

세 번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편을 탄광으로 배웅했던 색시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오며 모든 집들의 모양새가 똑같아 제 집을 찾지 못했단다.

 

 

 

1989년 폐광된 옥동광업소 갱도에서 황금빛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하수는 망경대산 절벽에서 폭포를 이루는데, 마을 사람들은 황금폭포라고 부른다.

 

 

우체국, 사진관, 미장원, 양복점, 병원, 당구장, 모 없는 게 없었죠.”

 

서울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시끌벅적했던 모운동 마을은 별표연탄으로 유명했던 옥동광업소 탄광 마을이었다.

옥광회관이라는 극장도 있었는데, 명동에서 개봉한 영화 필름이 두 번째로 도착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간조(월급)날이면 마을 공터에는 영월읍보다 큰 장이 열렸다.

물건을 팔러 오는 상인들로 하루 서너번 산을 오르던 마이크로버스는 콩나물시루가 됐고,

마을 여관들은 빈 방이 없었다.

왕대포집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은 요정집을 기웃거렸다는데, 첩첩산골마을에 요정집이 네 개나 됐다고 한다.

 

 

어느 광부의 생명을 지켜주던 안전모였을까? 갱도의 받침목인 동발 붕괴사고는 탄광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였다. 옥동광업소 목욕탕 탈의실 창가에 놓인 빛바랜 안전모 위로 햇살이 비치고 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광산마을 모운동은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바람처럼 빠져나가 현재 30여 가구만 남았다.

 

평생같이 해로하자 했는데, 나만 두고 떠났지 모야.”

 

작년에 진폐증으로 남편을 잃었다는 김옥준(85) 할머니가 평상에서 나물을 손질하며 한숨짓는다.

석탄을 캐던 남편이 폐병을 앓자, 김 할머니는 약초를 캤다.

20여년 이산 저산을 돌며 30여 가지의 약초를 캤고 웬만한 한의사만큼 약초를 잘 다루었다.

신통방통한 할머니의 수제 한약으로 할아버지는 남들보다 오래 사셨단다.

 

 

갱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색시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광부들의 얼굴은 까맸다. 광업소에 목욕탕이 들어서자 광부의 아내들은 목욕물을 데우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다.  

 

 

요즘은 벽화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심심하지 않아 좋아.”

 

폐광된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던 김이장은 7년전 부인과 함께 동네 분위기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냈다.

허름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것. 손재주 많은 이장 부인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 안에 색깔을 적었다. 마을 노인들도 벽화 색칠작업에 참여시키고자 했던 것.

잿빛 폐광촌은 개미와 배짱이, 백설공주와 난쟁이가 뛰노는 동화마을로 탈바꿈했다.

강원도 김삿갓면 산꼬라데이에 동화마을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알음알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모운동은 다시 사람을 모으고 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광산도시였던 모운동마을이 이제는 작은 산골 촌락이 됐다. 칠흙같은 어둠이 내린 망경대산자락에서 민가의 불빛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2013.10. 1. 강원도 영월 모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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