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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눈보라기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금순이를 목 놓아 찾던 이는 부산 국제시장 장사치다. 굳세어라 금순아! 전쟁 통에 헤어진 이산가족의 사연이 담긴 노래의 고향은 그러나 가사와는 달리 부산이 아닌 대구다. 1952년 여름 가수 현인, 오리엔트 레코드사 사장 이병주, 밀양 출신 작곡가 박시춘, 그리고 여수 출신 작사가 강사랑 네 사람은 대구 교동의 냉면집 강산면옥에서 식사를 마친 후 거리에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굳세어라 금순이가 태어난 곳은 부산 국제시장이 아닌 대구 교동 양키시장인 것이다. 교동 양키시장은 인천 송현동 양키시장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몸 하나 누일 공간 밖에 되지 않는 한 평도 못되는 작은 점방들이 벌집처럼 박혀 촘촘히 박혀있는 다닥다닥한 느낌이 비슷하다. 3층짜리 ..
츄잉껌, 씨레이션, 시바스, 코냑, 말보로, 바셀린로션, 아스피린, 간스메(통조림), 초콜릿, 비스킷, 레브론 샴푸, 콜게이트 치약, 곰보 모양의 케이스에 담긴 곰보스킨…. 구리무(크림)가 왔다며 북을 ‘둥둥’ 치고 다니던 화장품 장사꾼은 리필용 동동구리무 대신 미제 크림과 스킨을 팔았다. 향이 좋은 스킨 올드스파이스를 향수로 뿌리고 다닐 정도로 양키들의 물건은 냄새부터 달랐다. 미국은 멀리 있지 않았다. 따뜻하게 입고, 달콤하게 먹고, 촉촉하게 바르고, 유혹하는 냄새가 나는 물건들이 바로 미국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삶의 밑천이 없던 이북 피란민들이 미군부대 주변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미군과 동거하던 양색시와 부대를 출입할 수 있던 한국 군무원들이 풀어놓은 물건들이 거래됐다...
겨울을 목전에 두고 가을 사진 세 장을 꺼냅니다. 가을이 겨울에 내려 앉았네 잿빛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 색의 향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만추(晩秋)의 삼원색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붉은빛과 주홍빛, 그리고 노란색이 제 몸 바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색을 태우고 있습니다. 성미 급한 겨울 바람이 만추의 삼원색을 시샘합니다. 색의 잔치를 빨리 끝내라며 나뭇가지를 흔들어댔습니다. 후드득 떨어지는 낙엽처럼 제 마음도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아직 가을의 고운 빛깔들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래도 영원히 붙잡아 둘 수는 없겠죠? 영하의 바람을 감당할 수 없었던 은행 단풍 하나가 회색빛 코트 털뭉치 둥지에 내려앉았습니다. 가을은 그렇게 잿빛 겨울에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2017. 11. 16. 정동 낙..
성요셉 아파트 2017. 1. 변두리야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서울 한복판에 이런 오래된 동네가 있을 줄이야. 고층 빌딩 병풍에 둘러싸인 동네에는 새벽에 어시장도 열린다. 고층 아파트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도 있다. 서울 중구 중림동(中林洞) 마을이다. 중림동 도시환경 정비사업 구역. 2017. 1. 중림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도 있다. 약초를 키우던 밭 자리에 세운 성당이라 약현(藥峴)성당이라 불렀다. 종교의 자유가 허용된 1886년(고종 23년) 이후 천주교 신자가 늘어나자 프랑스 신부 코스트(Coste, 한국이름 고의선)가 설계해 1893년에 완공했다. 명동 성당이 4대문 안의 한양 천주교 신자를 위한 예배당이었다면, 도성 밖 신자들을 위한 성소가 바로 약현성..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 2017. 1. 4. 2017년 1월 9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리지 않는 평일 저녁인 지난 4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무심히 지나치던 시민들은 광장에 멈춰 서서 세월호 참사 조형물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사진을 찍었다. 10차례 대규모로 진행된 촛불집회가 바꿔놓은 풍경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농성장 2017. 1. 4. 2017년 1월 9일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천막농성이 시작된 지 910일째 되는 날이다. 참사가 일어난 후 90일 되는 날(2014년 7월 14일),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국회에서 여야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조사권 ..
2016년의 마지막 날 오후 7시에 시작해 2017년 새해 첫 날 새벽까지 이어진 제1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축포를 터트리고 있다. 집회 주최측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제10차 촛불집회를 ‘송박영신(送朴迎新) 범국민행동의 날’로 정했다. 송박영신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인 송구영신(送舊迎新)에 박 대통령 성을 넣은 집회용 조어다. 우리나라 집회 현장에 본격적으로 촛불이 등장한 때는 지난 2002년 부터였다고 한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당시 한국 정부는 무능했고, 미국 정부는 고압적이었다. 한일월드컵 때문에 국민적 관심에서도 벗어났다. 대중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촛불은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를 불지른 ..
예테보리 스텐피린 부둣가에서 자전거를 타던 시민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스톡홀름에 이은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Gothenburg)는 예타강이 흐르는 수변도시다. 북방의 사자로 불렸던 '구스타브 아돌프 2세'가 17세기에 만든 도시다. 유럽에서는 '예테보리' 보다는 '고텐부르크'라고 많이 부르는데, 고텐부르크는 북방 게르만족인 고트족이 사는 성이란 뜻이다. 8월의 예테보리는 상쾌했다. 트램이나 배를 타고 둘러보기 좋다. 시청 앞에 서 있는 구스타프 아돌프 왕이 이곳에 도시를 세우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북해를 잇는 예타강변에는 오랜지색 크레인들이 불쑥불쑥 솟아있다. 'ㄷ'자를 세로로 세운 모양의 거대한 갠트리크레인도 하나 남아있다. 예테보리는 1970년대 세계 두번째로 큰 조선업 지대였다..
세화 해변 9월 늦더위에 딸 아이와 함께 제주 구좌읍 세화 해변을 찾았다. 제주도 동부 해변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해변이다. 갯바위에는 보말, 소라게가 우글거리고, 밀물이면 새하얀 백사장이 펼쳐진다. 지난 8월에는 스노쿨링을 하면서 광어 세끼 한 마리도 손으로 잡았다. 뿔소라 숯불구이 해녀박물관이 있는 세화리에는 매년 해녀축제가 열린다. 2016년에는 9월 24, 25일 양 이틀간 열렸다. 해녀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세화리 일대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소라, 게, 문어 등을 맨손으로 잡는 바릇잡이, 맨손으로 광어 잡기, 태왁만들기 강연, 새내기해녀 물질대회 등 해녀와 관련된 프로그램들이다. 축제를 즐기는 동안 성게 국수, 소라 구이, 한치 파전 등 해녀들이 만든 값싸고 맛있는 해물 요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