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겨울 다람쥐 본문

- 찍고, 쓰고

겨울 다람쥐

김창길 2013. 1. 4. 19:50

 

 

혹한의 겨울이다.

기록적인 한파 풍경을 담으러 동분서주하다 2년 전에 만난 다람쥐가 떠올랐다.

지금보다는 좀 덜 추웠지만 갑작스레 몰아닥친 한파 사진을 찍기위해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구곡폭포에 갔다.

얼어붙은 구곡폭포 빙벽을 찍기 위해서였다.

 

손이 시릴 만큼의 시간 만큼 빙벽 사진을 찍고 뒤돌아설때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돌아서던 찰나,

다람쥐 한 마리가 눈 속에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한 겨울에 다람쥐가?'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는게 아니었나?'

'너무 추워서 잠도 안오나?'

 

셔터를 살살 누르며 살며시 다가갔다.

(참고 : 살살 누른다고 셔터 소리가 작게 나는 것은 아니다.)

인기척에 금새 도망가는 다람쥐는 제법 가까운 거리를 허락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다람쥐는 언 눈을 먹고 있었다.

 

'폭포수가 얼어붙어 눈을 먹는군.'

 

눈을 먹는 다람쥐의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셔터를 계속 눌렀다.

좀 더 좋을 퀄러티를 위해 가까이 다가갈까 고민하며 뷰 파인더의 다람쥐 크기를 계산했다.

만족할만한 이미지 사이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2미터 정도의 거리를 남겨두고 녀석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속셈이었다.

제법 괜찮은 각도의 사진을 찍은 후에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카메라를 내려놓으면 다람쥐와 더 친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기대가 너무 지나쳤다.

다람쥐는 바위 틈으로 사라졌다.

 

계곡을 내려와 노트북을 켜고 포토샵으로 다람쥐 사진을 확인했다.

 

'음, 이정도면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싫어도 되겠군.'

 

제일 좋은 장면 다섯 컷을 골라 회사로 전송했다.

데스크의 반응도 무척 좋았다.  

회사로 돌아오는 취재차 안에서 녀석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2011년 겨울 구곡폭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