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서촌 나들이 본문
서울의 서촌을 둘러봤다. 둘러 본 것이다. 서촌에 대해 잘 모른다. 카메라를 들고 수 시간 장면 장면을 채집했을 뿐이다. 어느 사진가의 말처럼 털만 보여주는 단상이다.
꽤 자주 가는 곳이다. 경복궁 서쪽, 그러니까 청와대 서쪽은 서촌은 효자동, 청운동, 채부동 등 몇 개의 동을 일컫는 지역이다. 그곳을 많이 가는 이유는 청와대를 향한 울부짖음이 항상 청운동 사무소에서 들려왔고, 참여연대와 환경연합이라는 튼튼한 시민사회단체의 사무실이 있기 때문이었다. 핫한 취재 장소였던 서촌이 북촌처럼 문화거리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청와대 동쪽인 북촌은 한옥이 많아 꽤 고즈넉한 분위기가 풍겨난다. 북촌에 조선시대 북인들이 살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북인, 남인, 서인 등의 정치적 성향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북촌은 어쨌든 꽤 사는 동네의 풍경이다. 이명박 전대통령도 그곳에 있었고, 제법 값 나가는 집들도 많다. 그러면 서촌은?
북촌처럼 한옥이 있지만 양념처럼 군데 군데 숨어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분명 서민들이 살았겠거니 하는 추측이 드는 모양새다. 서촌의 북쪽은 그래서 다세대연립이 많다. 북촌처럼 한가지 분위기로 특정할 수 없는 서촌은 그래서 재미있다. 그래서 서촌의 상가들은 북촌처럼 분위기 있는 카페와 음식점 위주가 아닌, 다양한 주점들과 식당, 상가들이 골목길마다 마주한다.
서촌도 이미 북촌처럼 유명세를 탔는지 카메라를 든 동호회 사람들이 기웃거린다. 서촌에서 50여년을 사셨다는 ‘미스 올드’ 할머니는 사진 찍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꺄우뚱 거리신다.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남매들을 키우느라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가셔서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를 ‘미스 올드’라 불렀다고 본인을 소개하신다. 주말이면 타지인들이 동네를 점령해버려 짜증도 날법한데 할머니는 그들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신다.
서촌은 채부동 시장 때문에 서민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시장의 반 이상은 서촌 바람을 타고 이미 시장이 아닌 카페와 주점으로 변신했다. 시장 상점 가격도 2배는 올랐다는데 코딱지만한 상점들이 계속 생긴다. 지난 주말 아내와 딸 아이와 함께 감자튀김을 먹으러 시장에 들렀는데, 자리가 만석이라 개업한 맥주집에서 목울 축이고, 공방에서 아내의 수제 귀걸이를 샀다.
오늘 또다시 서촌 청운동 사무소를 들렀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희생자 가족들이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촌은 한이 어린 사람들을 품어 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받아주며, 옛 동네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