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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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의 시장통에 머물다 (차마고도 vol.3.- 사계진)

김창길 2012. 11. 26. 11:20

 

옥룡설산 야외무대에서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 공연. 현지 주민들이 옛 마방들을 연기하고 있다.


“신농(神農)이 수백가지 풀을 먹다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었다. 그 때 푸른 잎사귀 하나가 신농의 입으로 떨어졌다. 신농이 이 잎을 먹자 정신이 맑아졌다.”

B.C 2500년경에 존재했다는 중국 농업의 신 신농(神農). 중국 사람들은 신농의 이야기를 꺼내들며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 주장한다. 차를 의미하는 말은 서양에서는 'tea', 동양에서는 말그대로 'cha'라고 부른다. 'tea'와 'cha'는 모두 중국 방언이다. 굳이 증명할 수 없는 신농의 존재를 논하지 않더라도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고 모두가 인정한다. 

 

사계진 동쪽에 삼중 누각으로 세워진 고희대.

 

유목민 티베트인들의 주식은 야크의 젖과 고기다. 먹을거리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채소류 섭취도 어렵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를 전해준 것은 당나라 문성공주라는 견해가 있다. 7세기 경 '손챈감포'는 칭짱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했다. 티베트 라싸를 중심으로 통일 왕국을 탄생시킨 손챈캄포는 당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위해 당 태종의 양녀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성공주는 불상과 함께 가져온 것이 바로 차였다. 티베트인들은 차에 빠져들었다.

 

 

사계진 상점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물건을 구입하는 현지인들.

 

윈난성 지엔촨현의 남부에 자리한 사계진은 북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중원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요충지였다. 마방들이 이곳에 머물자 시장통이 번성했다. 남과 북의 물품들이 모이자 사계진은 경제와 문화가 번성하게 됐다.

 

사계진은 차마고도 옛 장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관광지 분위기기 너무 짙은 리장과 달리 사계진 시장통에서는 현재도 여러 소수민족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있다. 백족이 살던 민가의 전형적인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차마고도의 오성급 마방'이라 불리는 어우양(歐陽)씨 집안의 가옥도 잘 보존돼 있다.  

 

 

사계진 전통 가옥에서 이발을 마친 이발사가 붓으로 머리카락을 떨어내고 있다.

 

사계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를 지나는 아낙네가 막대 사탕을 들고 있다. 

 

 

장을 본 아낙네들이 남에서 북으로 가는 상인들이 드나들던 동채문(東寨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불교사원 흥교사 앞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 흥교사는 명나라 영락제(1415년) 때 만들어졌고, 20여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2009년 8월 차마고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