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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칠흑같이 검은 밤바다는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했다. 사내들이 만선의 깃발을 꽂고 항구에 돌아오면 아낙들은 밤새 생선의 배를 갈랐다. 아비로부터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구멍가게로 향했고, 사내들은 밤새 술을 마셨다. 동네 개가 돈을 물고 다닌다는 소문에 타지인도 뱃일을 하러 이곳 산동네에 판잣집을 틀었다. 화려했던 시절,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의 옛 모습이다. “고기가 있어야지. 버티다 버티다 2년 전에 고깃배 세 척 다 팔아버렸지.” 40여년 묵호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해온 이선문씨는 옛 묵호동의 모습을 회상했다. 동네 아낙들은 사내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지고 언덕 비탈길을 올랐다. 장화를 신고 다니는 논길과 비슷한 진흙탕 고샅길이기에 논골길이라 불렀다. 아낙들은 생선을..
다랑논처럼 산복도로에 계단식으로 들어선 작은 집들이 모여 형형색색의 빛을 내뿜고 있다. 외지인의 눈에는 복고적이고 이색적이다. 한국의 산토리니(그리스 에게해 남쪽의 하얀 섬마을), 부산의 마추픽추(페루 남부의 고원마을), 블록을 쌓아올린 레고마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이야기다.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에 위치한 감천동 달동네는 본래 태극도마을이라 불렸다. 한국전쟁 당시 민족종교인 태극도 피란민들이 이곳에 정착하는 바람에 태극도 신앙촌이 형성됐다. 신도들은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산기슭에 판잣집을 지었다. 뒷집의 조망권을 막지 말고 마을의 모든 길을 통하게 만드는 것. 5평 남짓한 크기의 판잣집들이 옹기종기 천마산을 가득 메웠다. 판잣집들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슬레이트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