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46)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 농기계수리센터 이야기다. 흰구름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원촌마을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진다. 백운농기계수리센터 양남용씨(57)가 1t트럭을 몰고 출동하는 소리다. 농번기에 농기계가 고장 나는 것은 농촌에서는 비상상황이다. “농약 뿌리는데 기계가 갑자기 멈췄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30분 만에 사고를 처리한 양씨는 경운기 개조작업을 시작했다. 힘 좋은 경운기이지만 비탈진 흙길에서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고장 난 트럭에서 떼어낸 후륜 구동축을 자르고, 갈고, 땜질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4륜구동 경운기가 탄생했다. “마을에서 고장 난 모든 걸 고치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씨는 원촌마을의 맥가이버다. 전기가 끊기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
수능이 코앞이다. 단풍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학부모의 마음, 수험생보다 덜 할까? 몇 시간을 기도한 걸까? 서울 강북구 도선사 부처님 신발에 단풍이 내렸다. 2011년 가을 도선사에서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우포늪 소목마을 나루터에서 만난 한일보씨(64)가 물고기 한 아름을 쪽배에서 내리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말한다. “우포 붕어 땜시 저 멀리 부산, 대구에서도 온다카이.” 람사르 총회로 유명세를 탄 경상남도 창녕군 우포늪은 과거에는 참붕어, 메기, 가물치가 잘 잡히는 습지로 명성을 떨쳤다. 1997년 우포늪이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그랬다. “그땐 나라에서 한다캐서 좋은기라 생각해따 아입니꺼.”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이후, 우포늪 주변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불만을 터뜨리고 항의했다. 집 앞에 축사도 못 짓고, 내 논에 농약도 못 치고, 쓰레기도 못 태우고…. 우포늪 어업도 마찬가지였다. 습지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창..
경기 파주에서 참새 떼를 만났다. 누렇게 익은 벼를 쪼아먹던 녀석들이 배가 부른지 풀숲에 앉았다. 천연덕스럽게 깃털을 다듬고, 조잘댔다. 2010년 가을
지난 해 동네 마트에서 단숨에 산 책이다. 마트 책코너를 불신하는 내가 대형마트에서 책을 산 것은 이례적이다. '픽쳐'라는 단어에 몇 장 넘겼다. 주인공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변호사였다. 그의 아내는 작가의 꿈을 포기한 주부였다. 음, 나랑 좀 비슷하네, 와이프도 마찬가지고... 프랑스 문화원에서 기사작위를 받을 만큼 프랑스에서 사랑 받고 있는 작가 '더글라스 케너디'의 소설 '빅피쳐'는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스릴러물이다. 진정 나를 위한 삶이란 사진작가였다. 미국 뉴욕 월가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벤'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는 대신 고가의 사진장비를 구입하며 대리만족하며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나간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한국판 표지는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아주 가까이 가거나, 아주 멀리 가면 사물의 풍경은 본래 갖고 있던 의미를 상실하고 순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항공사진 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본 지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들을 낯선 높이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가 작업한 한반도 사진도 역시 그랬다. 사무실 리모델링 관계로 펜트하우스같은 조망이 보이는 꼭대기층으로 임시 사무실을 옮겼다. 붉은 벽돌의 프란체스코 회관 옥상도 내려다보는 위치다. 가끔 수녀님이 출몰하기도 한다. 옥상 텃밭 너머로는 빨래 너는 장면도 종종 목격한다. See Dlfferntly! 미국 배낭여행 도중 뉴욕현대미술관 입구에 다르게 보라는 경구가 적혀있었다.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이 항상 견지해야할 자세다. 하지만 어렵다. 익숙한게 ..
형형색색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노란 단풍은 예쁘다. 붉은 단풍은 아련하다. 단풍의 붉은 빛은 '안토시아닌'이란 색소 때문이다. 안토시아닌은 강한 가을 햇볕을 차단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한다. 아토시아닌 색소가 없다면 나뭇잎이 약해진다. 단풍잎은 그 잎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안토시아닌 선크림을 바르며 양분을 흡수한다. 길고 긴 겨울철을 보내기위한 안간힘인 것이다. 지난 20011년 겨울 대관령 옛길을 가다 폭설에 떨어진 단풍을 만났다. 눈 장난을 치다가 빨갛게 시린 고사리손처럼 붉은 단풍이 눈을 만지고 있다. 2011년 대관령 옛길에서...
왠지 기찻길을 보면 걷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양팔을 벌리고 선로 위를 걷고 싶다. 기찻길 산책의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나보다. 관광지도 아니건만 전북 군산시 경암동의 철길마을은 기찻길을 걸으려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경암동은 해방 이후 주인 없는 매립지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오막살이를 시작했다. 철길이 놓인 것은 1944년 경암동 인근에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가 들어서면서부터. 군산역과 공장을 연결하는 화물열차 선로가 경암동 오막살이 마을을 통과했다. 길이 2.5㎞의 짧은 기찻길은 페이퍼코리아선이라 불렸다. 열차가 멈춘 것은 2008년. 열차가 사라지면서 마을 사람들도 오막살이를 떠나기 시작했다. 떠나간 주민들의 집은 남은 주민들이 창고로 활용했다. 철길은 녹슬고 자갈밭에서는 잡풀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