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굳센 금순이의 고향은? (양키시장 vol.2. - 대구 교동) 본문
눈보라기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금순이를 목 놓아 찾던 이는 부산 국제시장 장사치다. 굳세어라 금순아! 전쟁 통에 헤어진 이산가족의 사연이 담긴 노래의 고향은 그러나 가사와는 달리 부산이 아닌 대구다. 1952년 여름 가수 현인, 오리엔트 레코드사 사장 이병주, 밀양 출신 작곡가 박시춘, 그리고 여수 출신 작사가 강사랑 네 사람은 대구 교동의 냉면집 강산면옥에서 식사를 마친 후 거리에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굳세어라 금순이가 태어난 곳은 부산 국제시장이 아닌 대구 교동 양키시장인 것이다.
교동 양키시장은 인천 송현동 양키시장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몸 하나 누일 공간 밖에 되지 않는 한 평도 못되는 작은 점방들이 벌집처럼 박혀 촘촘히 박혀있는 다닥다닥한 느낌이 비슷하다. 3층짜리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포진된 모양새도 닮았다. 몇몇 상인들에게 물어봤지만 상가 건물이 들어선 년도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개성에서 피난 나온 교동 양키시장의 터줏대감인 군복 노포의 주인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동인천역 양키시장처럼 교동의 상인들도 영화롭던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 시장통이 썰렁한 것이다. 인천 송현동의 양키자장은 동인천역 상권의 몰락과 호흡을 같이했다. 하지만 교동의 양키시장이 위치한 중앙로역 부근과 동성로는 활기찼다. 섬처럼 고립된 지역처럼 양키시장 골목만 한산하다. 사람 하나 지나갈만한 상가 내 개미골목은 개미 한 마리 없다. 상가 2층의 점방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렸다.
카메라를 어깨에 맨 기자를 바라보는 상인들의 눈초리는 매섭다. 단속에 이력이 난 것이다. 시장 풍경사진이라지만 그들에게는 책잡힐 증거 자료 사진이다. 때마침 정말 단속반이 떴다. 상가 안쪽까지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상인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용했던 골목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씨레이션을 팔면 안된다는 젊은 단속반의 경고에 옷가게 주인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배 째라! 따뜻한 겨울이라 옷 장사도 안되는데 단속반 잔소리까지 들어줄 여유는 없다.
아직까지 시장 단속반이 있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굳이 따지자면, 적법한 세금을 내지 않은 물건을 팔았다는 것인데 정직하게 세금 내면 양키사장 물건 값에 경쟁력이 생기겠나. 공항 면세점처럼 사치품을 파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불법 거래를 그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일 터. 단속반이나 상인들의 실랑이가 말싸움으로 끝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게다.
아직 안 갔어? 사진 찍고 이야기 듣는 일이 쉽지 않을 테니 그만 가보라고 충고하던 백발의 노인이 봉지 커피를 내밀었다. 가게에서 나가라고 단호히 꾸짖던 노포의 주인도 시간이 흐르자 자식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로 추임새를 넣었다. 아주 가깝진 않지만 고향이 가까웠다. 황해도 개성과 옹진군. 내 아버지는 인천 양키시장 인근 수도국산에서 피난민 생활을 시작했고, 늙은 주인인 이곳에 정착한 것이다. 아버지는 철물 장사를 했고, 늙은 주인은 옷을 팔았다. 내 아버지는 장사를 접었다. 늙은 주인은 아프지 않은 날까지 가게 문을 열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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