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미스 코로나와 신진 코로나 본문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던 코로나 맥주는 생산이 중단됐다. 바이러스와 이름이 같아 소비자들이 등을 돌려 그랬을 것이란 추측이 무성했다. 공장이 멈춘 이유는 아주 달랐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내려진 비필수 업종 영업 중단 명령 때문이었다.
맥시코를 대표하는 코로나 맥주의 정식 이름은 코로나 엑스트라. 깔끔하고 이국적인 디자인과 독특한 음용법 때문에 미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수입 맥주다. 암갈색이 아닌 투명한 맥주병은 시원한 느낌이다. 복고풍의 알파벳 텍스투라체(Textura)로 쓰인 'Corona Extra' 상표와 왕관 마크는 이국적이다. (바이러스 이름 문제 때문에 많이 알려졌는데,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이란 뜻이다.) 미국인들이 바닷가에서 곧잘 마신다는 코로나 엑스트라는 라임이나 레몬을 곁들인다. 갈증 해소를 위해 소금이나 레몬 등을 함께 섭취하는 데킬라처럼 멕시코 특유의 음용법이다.
우리나라에도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왕처럼 위세를 떨쳤던 상품이 있다. 54년 전에 첫 선을 보인 물건이니, 기억에서 멀어질만했다.
"신진공업에서 제작 중이던 소형승용차가 26일 첫선을 보였다. 지난 1월28일 신진자동차공합회사에서는 일본의 도요타자동차회사와 대, 중, 소형 자동차 제조를 위한 제휴를 맺고 우선 '코로나' 1500cc를 국산화 기본차형으로 선정, 그 부속품을 들여와 제작 중에 있었던 것인데 26일 정오 상공부장관이 처녀생산품에 대한 테이프를 끊음으로써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코로나 차 첫선, 국산화 기본차형으로>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1966년 5월 26일 경제면 기사다. 신진자동차공업회사는 1955년에 설립된 신진그룹의 자동차 회사로, 한국 GM의 전신인 부평의 새나라 자동차 공장을 인수했다. 신진자동차의 코로나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국산 승용차의 기준이 됐고, 하루 생산량이 16대 내지 17대였다.
1970년대 신문지면에 개재된 신진자동차의 코로나 광고를 찾아봤다. 구름 위를 달리는 것 같은 포근하고 안락한 드라이브(1970년 2월28일), 더 넓어지고 강해지고 안전해진 신진코로나 세븐티 탄생(1970년 7월8일), 지구 둘레 10바퀴 거리를 달려도 이상 없는 승용차(1971년 7월13일)……. 이 중 제일 재밌는 광고는 1970년 4월8일 광고다.
"미스코리아 진의 아름다움은 신진코로나의 참멋과 일치합니다."
광고는 망토를 걸친 수영복 차림의 미스코리아 유영애씨 사진을 내밀었다. 미스코리아 진에 선발돼 워킹 세리모니를 하고 있는 장면이라 추측되는 사진이다.
지금은 정리된 논란이지만, 한때 바이러스의 이름 짓기로 갑론을박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 우한 바이러스로 부르면 안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러야 한다는 등. WHO 사무총장인 지난 2월 11일 이번 전염병의 이름을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CO’rona) 바이러스(‘VI’rus) 질환(‘D’isease)이라는 뜻을 가진 ‘COVID-19’로 정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정부는 '코비드19'가 아닌 '코로나19'로 부르기로 했다. 한국에서 코로나라는 단어는 아직도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20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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