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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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길의 사진공책

사냥개같은 구식 사람의 사진술

김창길 2020. 2. 5. 22:27

South Africa 2002 ⓒPentti Sammallahti,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스키 보조 다리를 단 오토바이를 탄 검은 개(Animal farm, Solovki, White Sea, Russia 1992), 보드카와 빵을 담은 가방을 물고 집으로 가는 개(Solovki, mer Blanche, Russia, 1992), 해변에 앉아 있는 덩치 큰 개를 향해 화를 내고 있는 갈매기(Western Cape, South Africa 2002), 생선 덕장을 바라보고 있는 열 마리의 길고양이들(Iceland (Cats looking up at hanging fish), 1980)...

 

사진작가의 행운은 어디에서 찾아올까?

 

수면 위에 얼굴만 내민 개구리, 누운 소 위에 누워 자는 개, 염소를 올라탄 원숭이, 짝 짓기 하는 두 쌍의 개, 사람처럼 상체를 곧추 세워 보조석에 앉아있는 푸들, 신부의 웨딩드레스 치마 속을 훔쳐보는 바둑이…….

 

어디서 본듯 하지만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장면들을 수십컷 찍었다는 것은 단지 행운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2016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핀란드 사진작가 펜티 사말라티(Pentti Sammallahti)가 한겨례신문 곽윤섭 사진기자에게 말했다.

 

"나는 포인터 개처럼 사진 촬영할 시점을 기다린다. 운과 그때 상황에 모든 게 달려 있다."

 

하지만 사진기자들이나 동물을 찍은 사진작가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두 문장에서 제일 힘든 요소가 무엇인가를. 그것은 '기다림'이다.

 

사냥개(포인터 개)처럼 기다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렸다고 해서 절묘한 순간이 그대로 폭착되는 것도 아니다. 사진은 동영상이 아니다. 동물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최소 250분의 1초보다 짧은 셔터 스피드가 필요하다. 초 단위 이상의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긴 기다림 속에 찰나를 잡는 일, 이건 안 해본 사람은 절대로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이다. 펜티 사말라티는 기다림의 깨달음을 이렇게 말했다.

 

"내 곁에 있는 돌이, 해변가에 있는 배가,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이, 그림을 그리는 듯 날아가는 새들이 내게 말한다.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곽윤섭의 사진마을 연재)

 

 

 

 

India Delhi 1999 ⓒPentti Sammallahti,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펜티 사말라티의 사진들과 기사들을 살펴 본 나는 두 명의 구식 사람들이 떠올랐다. 한 명은 허구의 사람으로 벤 스틸러 감독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에 등장하는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 연기)이다. 또 한 명은 무려 3시간 30분 가까운 러닝 타임을 기록하며 노익장을 과시한 영화 <아이리시맨 >(2019) 감독 마틴 스콜세지다.

 

영화 <월터>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은 분명 펜티 사말라티를 떠오르게 할 만큼 구식으로 작업하는 풍경사진작가다. 잡지 라이프지의 필름 관리 책임자인 주인공 월터는 휴대폰 없이 오지를 누비며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 숀 오코넬의 소재를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펜티 사말라티 역시 항상 어딘가를 여행하며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그의 사진이 국내에 소개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그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에 열렸던 국내 첫 전시회 제목인 <여기 그리고 저 멀리(Here Far Away)도 영화 <월터>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포착하기 힘든 눈표범을 만나고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며 나무라는 월터의 힐난에 사진작가 숀 오코넬은 말한다.

 

"가끔은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거기에 머물지"

"바로 저기, 바로 여기(Right there, right here)".

 

또 한명의 구식 사람 마틴 스콜세지가 떠오르는 이유는 펜티 사말라티도 돈을 쫒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마틴 스콜세지는 마블 영화는 영화가 아니고 마블의 영화촬영 현장은 놀이공원이라며 요즘 유행하는 영화의 흐름에 일침을 가했다. 지난 2019년 뉴욕타임즈를 통해 마틴 스콜세지가 마블 영화가 영화가 아닌 이유를 말했다.

 

"현대 프랜차이즈 영화의 근본은 상품으로 소비될 때까지 마켓 리서치와, 관객 테스트, 점검, 수정, 또 다른 점검의 과정을 고쳐 준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뉴스1, 정유진 기자, <"마블 영화는 테마파크" 마틴 스콜세지, ... "위험 감수하지 않아">, 2019. 11. 5.)

 

영화의 상업적 성공을 위한 위험요소들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영화의 예술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며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등 영화의 거장들도 마틴 스콜세지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펜티 사말라티 역시 사진의 전통을 고수한다. 다만 요즘 사진의 흐름들인 디지털 사진이나 연출 사진에 대해 비판하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하지만 펜티 사말라티는 마틴 스콜세지처럼 자신의 작업을 오로지 돈 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미술시장이 선호하는 대형 사이즈가 아닌 25x30cm 정도의 작은 사이즈로 인화한다. 가격도 100만원에서 300만원을 책정하며 그 이상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거부한다. 가격을 높이기 위해 한정 인화하는 에디션이 "예술가를 유명 인사로 만들고 그의 은행 잔고를 불려주지만, 결국은 자기 패러디로 이어지는 많은 경우를 보았다"며 예술의 우상화 효과도 거부한다. 하지만 작품 가격이 비싸지 않다고 해서 펜타 사말라티의 사진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펜티 사말라티의 모든 사진들은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그의 작은 암실에서 인화되기 때문이다.

 

 

 

Seoul , KOREA,2016ⓒPentti Sammallahti, 사진제공 공근혜갤러리

 

펜티 사말라티의 국내 두 번째 개인전 <Beyond the wind>가 오는 213일부터 322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 서울을 첫 방문했던 2016년 갤러리 옆 청와대 담장 위의 소나무 사이로 지나는 까치를 촬영한 작품 등 50여 점의 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고령(70)에 건강이 좋지 않아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방한이 어렵다고 한국 에이전시는 밝혔다.

 

 

202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