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한국에서 제일 많이 사진 찍힌 솔섬 본문
사진에 제목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작용을 할까?
- 솔섬 사진 저작권에 대한 마지막 단상
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ando, South Korea, 2007
한글을 좀 깨우친 딸아이가 자기 방 앞에 팻말을 붙였다. ‘시오니(딸 이름) 방’.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좀 긴 팻말로 갈았다. ‘여기는 허락 없이 들어오면 안됩니다. 시오니 방입니다.’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대상의 의미를 인식했다는 증거다. 또 구별짓기 작용도 한다. 그 방은 다른 방과 달리 딸아이의 방이라는 거다. 하지만 엄마 아빠는 그 방이 딸아이 방인지 이미 알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대상에 동어반복적인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은 거실과 안방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자기 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비로소 자기 방이 어떤 공간인지 파악한 듯싶다. 팻말을 떼고 두 문장을 적어놓았다. 자기 방이니까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고 엄마 아빠라는 타자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사진 제목 달기도 마찬가지다. 의자를 찍은 사진을 ‘의자’라고 제목 짓는다면 그 제목은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동어반복이다. 사진 자체가 피사체에 대한 인덱스, 즉 절대유사의 속성(복사물)을 갖기 때문이다. 의자 사진 제목을 ‘반 고흐의 의자’라고 짓는다면, 제목은 다른 작용을 한다. 반 고흐의 인생을 상상하거나 후기 인상주의의 표현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의자 사진을 보게 된다. 만약 제목을 ‘이것은 의자가 아닙니다’라고 짓는다면 머릿속이 좀 복잡해진다.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1926년 캔버스에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았다. 의자 사진이나 파이프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음, 이건 진짜 의자나 파이프가 아닌 복제물이라는 건가?’ ‘실제의 의자와 파이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지?’ 등 많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진동선 '사진철학의 풍경들' 참고)
보도 사진의 경우 캡션이 반드시 따른다. 대게의 보도사진가들은 오독의 여지가 없는 명징한 사건의 이미지를 쫏는다. 하지만 날 것으로서의 사건에서 오해의 소지가 될 만한 요소도 항상 프레임 안에 들어오게 마련이다. 때문에, 보도사진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다’라며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키며 사진에서 다소 틀린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은 지나치라고 독자들에게 환기시킨다.
다시 마이클 케나의 솔섬 사진으로 돌아간다. 케나의 솔섬 사진 제목은 ‘Pine Trees, Study 1, Wolcheon, Gangwando, South Korea, 2007’이다. 정확하게는 ‘소나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솔섬’으로 통하게 됐다. 이후, 원래 명칭이었던 강원도 삼척 월천리 ‘속섬’은 ‘솔섬’이라 불리며 사진애호가들의 단골 출사지로 급부상했다.
대한항공 사진공모전에 당선된 헤르메스의 사진 제목은 ‘월천리’였다고 한다. 공모전 당선작의 사용권을 획득한 대한항공은 텔레비전 광고에 헤르메스의 월천리 사진을 ‘솔솔 솔섬’이라 칭하며 속섬 사진을 내보낸다. 이에 마이클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 공근혜갤러리는 대한항공이 케나 사진뿐만 아니라 제목도 도용했다고 주장한다.
일단, 마이클 케나의 사진 제목은 괜찮아 보인다. 케나가 솔섬을 보이는 그대로 사진에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솔섬을 보여주지 않고 추상적인 느낌을 표현해냈다. 흑백 데칼코마니 같기도 하고, 소나무 군락이 아니라 공중에 떠 있는 어떤 암흑 물질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듯한 착각도 일으키게 한다. 마이클 케나는 있는 그대로의 피사체를 추상적으로 변형시켜 사진에 담았고, 풍경사진가답게 ‘사실, 그건 한국에 있는 소나무 사진이랍니다.라고 친절하게 제목으로 설명해준다. 즉, 추상적인 풍경의 이미지에 인덱스 기능이 있는 제목을 붙여 다시 현실의 피사체로 돌아오게 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경우는 어떨까? 공모당선작 제목인 ‘월천리’를 활용해 광고를 했다면? 우선 제목 월 천 리 는 어감이 좀 무겁고 너무 웅장하다. 속섬은 어쨌든 작은 섬. 만약 그랜드 케년과 같은 광활한 풍경이었다면 좀 달랐을 것이나 작은 모래톱 소나무 섬을 솔 솔 솔섬이 제격이다.
마이클 케나의 풍경사진 저작권 기사 대부분은 ‘풍경은 만인의 것’이라며 피사체에 대한 저작권만을 문제 삼았는지 모르겠다. 소송의 쟁점 중, 사진 제목 도용 문제도 재미있는 기삿거리인데 말이다. 유명 작가가 찍은 풍경을 똑같은 제목으로 사용해도 저작권에 문제는 없는가도 따져봐야 할 일. 내가 만약 담배 파이프 사진을 찍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내걸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원도에 가거되면 솔섬을 방문해볼 생각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진도 찍어볼 작정이다. 사진 제목은 이미 정해져있다. ‘한국에서 제일 많이 사진 찍힌 솔섬’
2014. 4. 10.
솔섬 관련 글.
1. 솔섬은 만인의 것이나 http://photonote.khan.kr/66
2. 미국에서 제일 사진 많이 직힌 헛간 http://photonote.khan.kr/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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