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한쪽 눈을 감는다 본문
거울없는 카메라가 유행이다.
지난 2013년 국내 판매된 렌즈 교환식 카메라 53만612대 가운데 미러리스 카메라가 27만1199대로 51%를 차지하며(시장조사기관 GfK자료) 카메라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기존 렌즈 교환식 카메라인 SLR(일안 반사식 카메라single-lens reflex camera)의 본체에서 reflex 기능을 담당하던 거울이 없는 카메라다.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피사체의 이미지를 CCD(Charge Coupled Device)나 CMOS(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등의 이미지 센서(image sensor)에 등사시킨다. 디지털 똑딱이 자동카메라의 경우, 이 등사된 이미지는 LCD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SLR 카메라는 본체 내의 거울과 오각형 모양의 펜타프리즘을 통해 렌즈가 바라본 이미지를 뷰파인더 밖으로 내보낸다. 뷰파인더에 한쪽 눈을 대고 줌 렌즈의 줌 링을 돌릴 때마다 이미지의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바로 거울과 펜타프리즘 때문이다.
사진은 포착된 경험
사진찍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고가의 SLR 카메라를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한 렌즈가 포착하는 세상을 소유하고자하는 욕망 때문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세상을 보여주는 광곽렌즈, 관음증을 극대화시키는 망원렌즈, 마이크로 세계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접사렌즈 등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는 세상을 카메라 렌즈는 포착한다.
시각의 무한 확장을 가능하게 만든 SLR 카메라는 제법 크기가 크다. 때문에 고가의 카메라와 다양한 렌즈를 휴대할 수 있는 고가의 카메라 가방도 카메라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광곽, 표준, 망원 렌즈를 기본으로 휴대하는 사진기자가 돔키, 빌링햄 등 고가의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는 이유는 그 가방이 휴대성과 내구성이 띄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진기자들은 광곽렌즈와 망원렌즈를 결합한 두 대의 카메라를 휴대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렌즈를 교환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서울 경복궁에서 한 연인이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 찍고 있다. 둘 만의 시간을 간직하기 위해서.
사진이라는 것은 포착된 경험이며, 카메라는 무언가를 얻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식의 이상적인 무기가 되는 것이다. - 수잔 손택 On Photography -
거울을 버린 카메라
세상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SLR 카메라는 휴대성이 떨어진다. 작품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카메라를 휴대하기 쉽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의 후발 주자 파나소닉은 지난 2008년 9월 12일 거울과 펜타프리즘을 제거한 렌즈 교환식 카메라 루믹스 DMC-G1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의 미러리스 카메라다. 거울 반사 공간을 제거한 미러리스 카메라는 똑딱이 카메라만큼 소형화 경량화됐다. 다양한 렌즈의 표현력과 해상력을 겸비하면서.
전문가용 SLR 카메라 개발에 치중했던 캐논과 니콘은 애써 미러리스 카메라를 외면했다. 캐논과 니콘은 여전히 올림픽이 열리는 년도에 맞추어 최신 기술의 SLR 카메라를 발표하는 동시에 다양한 자동 똑딱이 카메라를 만들며 카메라 시장의 선두를 군림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크고 무거운 SLR 대신 스마트폰 카메라와 미러리스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똑딱이의 몰락 http://photonote.khan.kr/64). 카메라 회사의 두 공룡 캐논과 니콘도 결국엔 똑딱이 카메라 매출 감소분을 매우기 위해 2, 3년 전부터 미러리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성능은 나날이 향상돼고 있다. 지난해 말, 소니는 풀 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를 출시했다. 기존 미러리스 카메라는 렌즈가 받아들이는 이미지의 일부만을(프레임 테두리 부분 생략. 즉 크로핑 된 이미지로 저장) 기록할 수 있다. 풀 프레임은 렌즈가 바라본 이미지의 원형을 센서에 기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전문가용 SLR 카메라만 가능했던 이미지 구현 방식인 풀 프레임이 미러리스에도 적용된 것. 기능상으로 SLR카메라와 미러리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을 위해서.
미러리스는 기존 SLR 카메라를 없어버릴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거울 없는 카메라는 거울이 없기 때문에 SLR 카메라를 능가할 수 없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일반적으로 두 눈을 사용해 사진을 찍는다. 렌즈가 보는 피사체는 카메라 LCD에 동영상으로 구현된다. 카메라 사용자는 LCD에 재생되는 동영상을 감상하며 한 순간만을 선택해 메모리에 저장한다. 즉, 카메라 사용자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렌즈가 기록중인 동영상의 이미지 속에서 한 순간만을 선택할 뿐이다.
SLR카메라 사용자는 렌즈와 일치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한쪽 눈을 감고. 결정적 순간의 거장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1908-2004. 프랑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진을 찍을 때 한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위해서이고, 찰나에 승부를 거는 것은 사진의 발견이 곧 나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을 위해서... 사진의 거장만이 말할 수 있는 근사한 말이다. 물론, 두 눈으로도 결정적 순간을 만날 수는 있을게다. 하지만 사진은 근본적으로 한 렌즈로 바라본 세상의 프레임이다. 카메라를 움직이거나 줌 링을 돌려가며 프레임 안의 세계로 몰입한다. 한쪽 눈을 감고 그 눈을 렌즈와 연결시키면 다른 세상은 사라지고 작은 뷰파인더 안에 광활한 이미지의 세상이 펼쳐진다. 쉽게 말해, 한쪽 눈을 감아야 뷰파인더 안 프레임 세계에 몰입할 수 있다.
피로감에 한쪽 눈을 감는다.
미러리스 카메라에는 마음의 눈이 없다. 그것은 한쪽 눈을 감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러리스는 이미 카메라 기계가 기록중인 결과물을 LCD를 보여주며 선택의 순간만을 제시한다. 하지만 미러리스 카메라의 LCD 기능을 담당하는 SLR의 뷰파인더는 아직 기록되지 않은 순간을 보여준다. 사진가는 그 순간의 흐름을 보며 매뉴얼을 조작해 그가 원하는 한 컷 한 컷을 기록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확인한다.
필름 사진 만큼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SLR 카메라도 셔터를 누른 후 결과물을 확인하는 작은 시간차가 존재한다. 아무리 숙련된 전문가라도 사진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100퍼센트 계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짧은 시간에도 SLR은 설레는 기다림을 선사한다. 하지만 미러리스는 그러한 작은 설레임의 순간도 앗아갔다.(미러리스는 렌즈 교환식 콤팩트 자동카메라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브레송은 사진을 발견하고 자신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카메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미지 과잉의 시대를 생산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거나, 손끝으로 터치만하면 그 순간 순간이 기록된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생산되어 넘쳐나는 이미지들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모든 이미지들에서 의미를 따진다는 것이 촌스러운 태도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쨌든 눈의 피로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눈을 뜨고 있는 한, 넘쳐나는 이미지들을 볼 수 밖에 없으니까. 너무 피곤해서 한쪽 눈을 감아야 될지도 모르겠다. 마음의 눈을 위해서.
2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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