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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지난 해 동네 마트에서 단숨에 산 책이다. 마트 책코너를 불신하는 내가 대형마트에서 책을 산 것은 이례적이다. '픽쳐'라는 단어에 몇 장 넘겼다. 주인공은 사진작가를 꿈꾸는 변호사였다. 그의 아내는 작가의 꿈을 포기한 주부였다. 음, 나랑 좀 비슷하네, 와이프도 마찬가지고... 프랑스 문화원에서 기사작위를 받을 만큼 프랑스에서 사랑 받고 있는 작가 '더글라스 케너디'의 소설 '빅피쳐'는 진정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스릴러물이다. 진정 나를 위한 삶이란 사진작가였다. 미국 뉴욕 월가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벤'은 사진작가의 길을 걷는 대신 고가의 사진장비를 구입하며 대리만족하며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나간다. 아내가 바람핀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한국판 표지는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아주 가까이 가거나, 아주 멀리 가면 사물의 풍경은 본래 갖고 있던 의미를 상실하고 순수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항공사진 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본 지구'는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들을 낯선 높이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가 작업한 한반도 사진도 역시 그랬다. 사무실 리모델링 관계로 펜트하우스같은 조망이 보이는 꼭대기층으로 임시 사무실을 옮겼다. 붉은 벽돌의 프란체스코 회관 옥상도 내려다보는 위치다. 가끔 수녀님이 출몰하기도 한다. 옥상 텃밭 너머로는 빨래 너는 장면도 종종 목격한다. See Dlfferntly! 미국 배낭여행 도중 뉴욕현대미술관 입구에 다르게 보라는 경구가 적혀있었다.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이 항상 견지해야할 자세다. 하지만 어렵다. 익숙한게 ..
형형색색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다. 노란 단풍은 예쁘다. 붉은 단풍은 아련하다. 단풍의 붉은 빛은 '안토시아닌'이란 색소 때문이다. 안토시아닌은 강한 가을 햇볕을 차단하는 효과를 갖고 있다고한다. 아토시아닌 색소가 없다면 나뭇잎이 약해진다. 단풍잎은 그 잎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안토시아닌 선크림을 바르며 양분을 흡수한다. 길고 긴 겨울철을 보내기위한 안간힘인 것이다. 지난 20011년 겨울 대관령 옛길을 가다 폭설에 떨어진 단풍을 만났다. 눈 장난을 치다가 빨갛게 시린 고사리손처럼 붉은 단풍이 눈을 만지고 있다. 2011년 대관령 옛길에서...
왠지 기찻길을 보면 걷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양팔을 벌리고 선로 위를 걷고 싶다. 기찻길 산책의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나보다. 관광지도 아니건만 전북 군산시 경암동의 철길마을은 기찻길을 걸으려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경암동은 해방 이후 주인 없는 매립지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오막살이를 시작했다. 철길이 놓인 것은 1944년 경암동 인근에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가 들어서면서부터. 군산역과 공장을 연결하는 화물열차 선로가 경암동 오막살이 마을을 통과했다. 길이 2.5㎞의 짧은 기찻길은 페이퍼코리아선이라 불렸다. 열차가 멈춘 것은 2008년. 열차가 사라지면서 마을 사람들도 오막살이를 떠나기 시작했다. 떠나간 주민들의 집은 남은 주민들이 창고로 활용했다. 철길은 녹슬고 자갈밭에서는 잡풀이 올라왔다...
칠흑같이 검은 밤바다는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했다. 사내들이 만선의 깃발을 꽂고 항구에 돌아오면 아낙들은 밤새 생선의 배를 갈랐다. 아비로부터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구멍가게로 향했고, 사내들은 밤새 술을 마셨다. 동네 개가 돈을 물고 다닌다는 소문에 타지인도 뱃일을 하러 이곳 산동네에 판잣집을 틀었다. 화려했던 시절,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의 옛 모습이다. “고기가 있어야지. 버티다 버티다 2년 전에 고깃배 세 척 다 팔아버렸지.” 40여년 묵호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해온 이선문씨는 옛 묵호동의 모습을 회상했다. 동네 아낙들은 사내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지고 언덕 비탈길을 올랐다. 장화를 신고 다니는 논길과 비슷한 진흙탕 고샅길이기에 논골길이라 불렀다. 아낙들은 생선을..
다랑논처럼 산복도로에 계단식으로 들어선 작은 집들이 모여 형형색색의 빛을 내뿜고 있다. 외지인의 눈에는 복고적이고 이색적이다. 한국의 산토리니(그리스 에게해 남쪽의 하얀 섬마을), 부산의 마추픽추(페루 남부의 고원마을), 블록을 쌓아올린 레고마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이야기다.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에 위치한 감천동 달동네는 본래 태극도마을이라 불렸다. 한국전쟁 당시 민족종교인 태극도 피란민들이 이곳에 정착하는 바람에 태극도 신앙촌이 형성됐다. 신도들은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산기슭에 판잣집을 지었다. 뒷집의 조망권을 막지 말고 마을의 모든 길을 통하게 만드는 것. 5평 남짓한 크기의 판잣집들이 옹기종기 천마산을 가득 메웠다. 판잣집들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슬레이트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