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찍고, 쓰고 (134)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조랑말박물관이 소장한 조선시대 오름 지도 제주도는 거인신 설문대할망이 만든 섬이다. 태초에 설문대할망이 방귀를 뀌자 천지가 창조됐다. 할머니는 바닷물 속에서 흙을 퍼올려 한라산을 만들었다. 한라산 근처에 근데근데 흘린 흙들은 오름이 됐다. 조랑말박물관 설문대할망 조형물 한라산 기생화산인 오름은 368개다. 하루에 하나씩 올라도 1년 동안 못 오를 정도로 많은 갯수다. 368개의 오름은 제 각각 독특한 산세와 식생이 분포한다는데, 한라산처럼 분화구에 물을 간직한 물영아리오름을 올랐다. 제주 남동쪽,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 솟아있다. 물영아리오름 민둥산같은 대부분의 오름과 달리 물영아리오름은 숲이다. 나무 그늘이 정상까지 이어져 요즘 처럼 무더운 초여름 날씨에 등반하기 좋다. 하늘높..
청보리 물결따라 가파도 바다 너머로 송악산과 산방신이 펼쳐진다. 청보리 물결이 넘실대는 가파도에 갔다. 제주 남서쪽 모슬포항에서 배로 15분 거리다. 축제 기간이라 입도객이 많아 돌아오는 배시간도 정해져있다. 두시간 남짓. 가파도 청보리축제는 오는 5월 8일까지 열린다. 가파도에서 80년 넘게 지낸 할머니. 가파도 여객선은 카페리가 없다. 랜트카, 오토바이, 버스로 뒤엉킨 우도의 해안도로와 달리 가파도는 한산하다.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2.5km A코스, 2km B코스 두 산책로가 있고, 상동포구와 하동포구를 잇는 4.3km 올레 10-1 코스도 있다. 상동포구 가파도 지도 앞에서는 가파도에서 80년 넘게 산 할머니가 막대기를 들고 산책코스를 설명해주신다. 가파도 돌담. 청보리밭은 섬 중심에 펼쳐진다. ..
2016년 3월 17일 제돌이, 태산이, 복순이가 포함된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제주 대정읍 모슬포항 인근을 지나고 있다. 하얀색으로 1이라고 등지느러미에 표시된 개체가 제돌이다. 김현우 연구사에 따르면 17일에 관찰된 남방큰돌고래는 60여 마리다. 환경 담당 기자가 사진 신청을 했다. 제주도 해안가의 남방큰돌고래를 포착해달라는 것. 망망대해에서 돌고래를 찾으라고?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다. 게다가 제돌이랑 태산이, 복순이도 찍어달라고? 그것도 이틀 만에.... 미션임파서블이다. 아무리 고래 박사가 동행한다지만, 돌고래를 조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돌고래 찾기는 제주 서쪽 구좌읍 종달리 전망대에서 시작됐다. 관광객들이 성산일출봉과 우도의 빼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중소형 랜트카를 타..
영화 한편이 시골 마을을 아트빌리지로 탈바꿈시켰다. 탈북한 새터민 여성이 팝아티스트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박진순 감독 영화 '설지'다. 북한에서 선전화를 그렸던 주인공 설지는 탈북한 후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벽화를 그렸다. 누리꾼에게 이목을 끈 설지는 '홍대 벽화녀'라는 별명이 붙었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함께 제주에 내려간다. 설지의 제주 배경이 된 곳이 신천리다. 반어 반농의 시골 마을 신천리는 서귀포시 성산읍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영화의 소재인 벽화를 그리기 위해 팝아티스트 등 예술인들도 마을에 상주하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현재 51점의 벽화가 신천리 곳곳에 숨어있다. '마을 벽화 주제가 뭔지 아세요?' '몰라요.' '무제' 신천리 해안가에서 카페를 하는 주인 말처럼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봄에는 바람날만하다. 봄바람을 타고 빨간 꽃, 노란 꽃, 푸른 잎의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아, 흑백 톤의 겨울은 자궁 속에 색계(色界)를 품고 있었구나! 접사 렌즈를 통해 봄의 속살을 훔쳐봤다. 남쪽 나라 제주는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제주 남쪽 서귀포시 위미리 동백군락지에 봄비가 내리자 동백꽃이 후드득 떨어졌다. 붉은 낙화는 돌담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상춘객을 기다렸다. 특정 군락지가 없이 제주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도 절정이다. 오늘과 내일은 서귀포시 중문과 대평리로 이어지는 유채꽃 길을 걷는 대회도 열린다. 겨우내 잠자던 밭담 안 채소들도 기지개를 켰다. 제주 북동 구좌읍에서는 당근과 무를 수확하려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촉촉한 흙에서 속살을 드러낸 홍당무와 푸릇한 ..
검은 땅 위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1964년부터 38년간 석탄을 캐던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삼척탄좌는 38년만인 2001년 가동을 멈췄다. 그리고 12년 후에 그곳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삼척탄좌 폐광시설에 들어선 삼탄아트마인이다.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삼탄) 폐광시설에서 예술(아트)를 창조하는 광산(마인)이다. 세계 곳곳에서 예술품을 수집하던 고 김민석 대표가 검은 공장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그가 수집한 10만여점의 예술품을 전시했고, 작가들을 위한 창작공간도 마련했다. 현대미술도 전시하며 폐광시설을 활용한 기획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삼척탄좌 수직갱도 조차장이다. 광부들은 수직갱도 입구를 지옥의 문이라 불렀다. 지옥의 문에 들어선 광부들은 승강기를 타고 자하로 내려갔다. 50미터 간격으로 뚤려..
폐광산이 그대로 남아 체험관이 됐다. 광부들이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던 수직갱 조차장에서 어린이들이 손뼉치며 웃고 있다. 목욕탕, 탈의실, 세탁실은 광부들의 치열했던 검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석탄역사체험관으로 탈바꿈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이야기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에 눈이 내린다. 체험관 뒤로 56년동안 캐낸 석탄 폐석이 쌓여 검은 야산이 됐다. "동원탄좌가 사라지면 사북 56년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석탄유물보존회 전주익 기획팀장이 동원탄좌 역사에 대해 운을 뗐다. 1948년 채탄을 시작한 동원탄좌는 아시아 민영 최대의 석탄회사였다. 두 차례 오일 파동으로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광부를 산업전사라 칭송했다. 한 때 5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석탄으로 먹고 살았다. 동네 ..
온평 포구 부근의 목선 바당(바다) 올레를 걸었다. 제주 개국신화를 간직한 제주 성산읍 온평리에서 시작하는 올레 코스다. 탐라국의 시조 고, 양, 부 3신이 동쪽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이한 곳이 온평리 앞바다다. 수렵생활을 하던 섬 사내들이 육지에서 온 신부들과 결혼한 것이다. 육지에서 내려온 내 딸도 이곳 온평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온평리 앞바다에 설치된 현무암 테이블과 의자 요즘 온평리는 어수선하다. 지난 10일 온평리가 제주 제2공항 부지로 발표되자 마을은 당황했다. 원래 후보지는 아랫마을 신산리였고, 신산리 엮시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지 않았다. 나 역시 당황했다. 딸 아이가 다니는 온평초등학교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해녀들이 세운 온평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줄어들어 폐교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