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가로림만 물범아 본문
천연기념물 제331호이자 멸종위기 2급 잔점박이 물범이 오지리 앞바다에서 카메라를 경계하고 있다. 지난 2009년 오지리 지윤근 이장은 물범 아홉 마리가 모래톱 위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2010.7.
숲에 이슬을 더해주는 바다. 이름도 아름다운 가로림만(加露林灣)은 충청남도 서천시 대산읍 오지리와 태안군 이원면 내리를 사이에 두고 잘록하게 들어간 호리병 모양의 바다다. 전체 해안선 길이 162km, 연안 면적 1만5985ha의 호리병 바다는 산란기 어류들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천혜의 황금어장을 형성한다. 15개 어항 1987가구 4946명의 어민들이 가로림만에 기대 산다.
밀물 때 8000ha의 광활한 갯벌을 드러내는 가로림만의 입구는 불과 2.5킬로미터. 병목 현상으로 물살이 빠르다. 정부는 너른 갯벌 대신 빠른 유속을 택했다. 한전 자회사인 한국서부발전은 2006년 조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1조원을 들여 2020m 길이 조력댐을 짓는 것이다. 이후 서부발전과 포스코·대우·롯데건설 등이 출자해 만든 (주)가로림조력발전은 2011년 산업부를 통해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했으나 환경부는 2012년 반려했다. 하지만 가로림조력발전은 평가서를 보완해 지난해 11월 산업부에 다시 제출했다. 산업부는 이를 검토해 이번 2월 초 환경부에 접수한 것이다.
‘환영, 가로림만조력발전소 건설에 따른 어업피해보상착수 설명회’
마을 입구에 걸린 현수막 아래서 오지리 지윤근(58) 이장이 한숨이다.
“싸울까봐 안가유.”
지난 2009년 실시됐던 조력발전소 설명회는 주최측이 찬성하는 주민들만 입장시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태안기름유출사고가 났을 2007년 태안에서 밀려오는 기름띠도 한마음으로 닦아내고 바다를 지켰던 마을 분위기는 사라졌다. 형님 아우하며 잘 지내던 이웃들이 발전소 얘기만 나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저쪽 마을은 1억을 준다, 이쪽 마을은 2억을 준다는 괴 소문에 바다 일에 소홀해지고도 한다. 자식 농사도 다 바다 농사 덕분이었던 이장인데 바다를 팔려는 이웃들이 야속하기만하다.
“주인 없는 저금 통장이라니까유.”
물이 빠지고 진회색 갯벌 들판이 광활히 열렸다. 호미와 소쿠리를 든 웅도리 어민들이 흥얼거리며 바지락 농사를 나갔다. 호미질 한번에 갯벌 속에 숨어있던 바지락 두 세 개가 튕겨 나온다. 빠른 손놀림에 소쿠리는 금새 바지락으로 넘쳐난다. 낚지 잡이에 나선 사내들은 갯벌 삽질이 한창이다. 삽질에 걸려드는 낚지가 적었는지 아낙네들의 핀잔이 들려온다. 서너 시간 갯벌과 시름하면 하루 벌이 십만 원이 넘는다. 욕심나지만 바지락 씨가 마를까봐 한달에 스무날은 갯벌을 놀린다. 꽃게와 어류 치어도 때때로 방류한다. 바다와 함께 살아야하는 어민들의 지혜다.
웅도리 아낙들이 바지락을 캐러 가로림만으로 나가고 있다.
바지락, 굴, 낚지, 게, 갯지렁이, 민챙이, 소라 등 다양한 갯것들의 보금자리에 천연기념물 제331호 잔점박이 물범 대여섯 마리도 출현한다. 개체수가 줄어 멸종위기종 2급으로 분류된 물범이다. 언제부터 물범이 가로림만을 찾아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오지리 주민들은 어렸을 적 삼십여 마리의 물범이 누런 모래톱 위에서 뒹구는 모습을 자주 보곤 했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이후 5년 동안 우리나라의 갯벌은 여의도면적의 21배가 줄어들었다. 송도국제신도시, 평택항 배후단지, 여수 율촌산업단지 등 갯벌매립사업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연합은 조력발전소가 가로림만에 설치되면 모래 진흙 등의 퇴적현상으로 갯벌 생태계가 교란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제 보금자리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잔점박이 물범은 ‘꾸우웅 꾸우웅’하며 먹이 사냥에 한창이다.
2010. 7. 가로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