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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봄에는 바람날만하다. 봄바람을 타고 빨간 꽃, 노란 꽃, 푸른 잎의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아, 흑백 톤의 겨울은 자궁 속에 색계(色界)를 품고 있었구나! 접사 렌즈를 통해 봄의 속살을 훔쳐봤다. 남쪽 나라 제주는 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제주 남쪽 서귀포시 위미리 동백군락지에 봄비가 내리자 동백꽃이 후드득 떨어졌다. 붉은 낙화는 돌담길에 레드 카펫을 깔고 상춘객을 기다렸다. 특정 군락지가 없이 제주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도 절정이다. 오늘과 내일은 서귀포시 중문과 대평리로 이어지는 유채꽃 길을 걷는 대회도 열린다. 겨우내 잠자던 밭담 안 채소들도 기지개를 켰다. 제주 북동 구좌읍에서는 당근과 무를 수확하려는 농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촉촉한 흙에서 속살을 드러낸 홍당무와 푸릇한 ..
검은 땅 위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1964년부터 38년간 석탄을 캐던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삼척탄좌는 38년만인 2001년 가동을 멈췄다. 그리고 12년 후에 그곳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삼척탄좌 폐광시설에 들어선 삼탄아트마인이다. 삼탄아트마인은 삼척탄좌(삼탄) 폐광시설에서 예술(아트)를 창조하는 광산(마인)이다. 세계 곳곳에서 예술품을 수집하던 고 김민석 대표가 검은 공장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그가 수집한 10만여점의 예술품을 전시했고, 작가들을 위한 창작공간도 마련했다. 현대미술도 전시하며 폐광시설을 활용한 기획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삼척탄좌 수직갱도 조차장이다. 광부들은 수직갱도 입구를 지옥의 문이라 불렀다. 지옥의 문에 들어선 광부들은 승강기를 타고 자하로 내려갔다. 50미터 간격으로 뚤려..
폐광산이 그대로 남아 체험관이 됐다. 광부들이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던 수직갱 조차장에서 어린이들이 손뼉치며 웃고 있다. 목욕탕, 탈의실, 세탁실은 광부들의 치열했던 검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석탄역사체험관으로 탈바꿈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이야기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에 눈이 내린다. 체험관 뒤로 56년동안 캐낸 석탄 폐석이 쌓여 검은 야산이 됐다. "동원탄좌가 사라지면 사북 56년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석탄유물보존회 전주익 기획팀장이 동원탄좌 역사에 대해 운을 뗐다. 1948년 채탄을 시작한 동원탄좌는 아시아 민영 최대의 석탄회사였다. 두 차례 오일 파동으로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광부를 산업전사라 칭송했다. 한 때 5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석탄으로 먹고 살았다. 동네 ..
온평 포구 부근의 목선 바당(바다) 올레를 걸었다. 제주 개국신화를 간직한 제주 성산읍 온평리에서 시작하는 올레 코스다. 탐라국의 시조 고, 양, 부 3신이 동쪽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이한 곳이 온평리 앞바다다. 수렵생활을 하던 섬 사내들이 육지에서 온 신부들과 결혼한 것이다. 육지에서 내려온 내 딸도 이곳 온평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온평리 앞바다에 설치된 현무암 테이블과 의자 요즘 온평리는 어수선하다. 지난 10일 온평리가 제주 제2공항 부지로 발표되자 마을은 당황했다. 원래 후보지는 아랫마을 신산리였고, 신산리 엮시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지 않았다. 나 역시 당황했다. 딸 아이가 다니는 온평초등학교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해녀들이 세운 온평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줄어들어 폐교위기..
남한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해발 1,950m의 한라산 정복은 쉽지 않다. 성판악, 관음사코스를 타야 백록담을 볼 수 있는데, 왕복 20km 가까이 되는 거리이기때문에 노약자들이 오르기에는 무리다. 한라산 대신 꼬마 한라산을 올라본다. 꼬마 한라산이라 불리는 어승생악은 체력 약한 탐방객들이 한라산 분위기를 살짝 느낄 수 있는 오름(기생 화산)이다. 어승생악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음영이 짙게 드리운 곳이 어리목 계곡이다. 산 정상에 배꼽처럼 나와 있는 부분이 백록담. 어승생악은 꼬마 한라산이라는 애칭답게 제주도 오름 368개 중 가장 높다. 크기로는 군산 오름 다음으로 크다. 한라산 북쪽에 있다. 해발 1,176m로 북한산(836m)보다 높기 때문에 전망이 좋다. 한라산..
단풍 좋아하면 나이 들었다는데.... 북한산 숨은벽을 올랐다. 최고의 북한산 단풍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북한산 10대 비경 중, 4번째에 오를 정도로 산세가 아름답다. 원효봉, 의상봉, 형제봉 등 북한산은 많은 봉우리를 가졌다.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제일 높다. 이 세 봉우리는 백운대를 중심으로 삼각형 모양으로 모여 있다. 그래서 삼각산이라 부른다. 도봉산에서 바라보면 백운대를 중심으로 민방위 마크처럼 북한산 최고봉이 보인다. 강우량이 적어 북한산 단풍빛이 곱지 못하다. 왼쪽 인수봉과 오른쪽 백운대 사이의 하얀 암벽이 숨은벽이다. 백운대와 인수봉은 비경을 하나 숨기고 있다. 단풍이 아름다운 숨은벽이다. 백운대 북쪽 뒤로 솟아 있어 서울에서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숨은벽이라 불렀다. 하지만, 북한..
말 달리던 길을 걸었다. 제주도 갑마장길이다. 서귀포시 표션면 가시리의 중산간 평원은 조선시대 때 최상급 말을 기르는 목장이었다. 그래서 갑마장(甲馬場)이라 불렀다. 제주도 동남쪽 중산간이다. 갑마장길 오른편으로 돌담인 잣성이 이어진다. 갑마장길은 빨간 리본을 따라 걷는다. 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죽하게 뻗어나간다. 해발 200-600m로 한라산과 해안 저지대를 연결하는 제주도의 허리 지역이다. 기생화산인 오름과 화산 숲인 곶자왈이 중산간에 있다. 주변지역에 비해 약간 높은 평지가 펼쳐진 들판인 벵듸도 중산간에 있다. 사슴 모양의 큰사슴이 오름 앞 벵듸가 갑마장이다. 조선 선조 때 김만일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기르던 말들을 임금에게 군마로 바쳤다. 명품으로 인정 받아 녹산장이라 부르던 목장은 ..
판교 차부상회 충남 서천군 판교면 현암리를 다녀왔다. 얼마 남지 않은 차부집을 찾기 위해서. 기차 간이역처럼 시골의 작은 버스 터미널이 차부집이다. 버스표를 판다. 버스표 판매는 부업이다. 잡화점, 방앗간, 약방, 음식점 등 마을에서 길목 좋은 곳에서 장사하던 가게에서 버스표를 팔았다. 버스가 정차하기 좋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은 터미널이 된 것이다. 영화관으로 사용하던 건물. 영화관이 신통치않아 호신술도 가르쳤던 모양이다. 판교면 현암리는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영화관이 있을 정도로 잘 나가는 읍내였다. 판교역이 이전되고 우시장이 사라지자 사람들의 발길을 끊겼다. 사람이 오고가야 돈도 도는 법이다. 장사하기 녹록하지 않자 가게를 운영하던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활력소가 될만한 어떤 계기를 찾지 못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