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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39, 40. 충북 청주의 달동네 수암골에서 거리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15일부터 시작된 ‘연탄, 예술이 되다’ 프로젝트는 무기한으로 진행된다. 스스로를 비주류 독립작가로 규정한 비정규 문화예술 노동자 RM은 자본주의적 문화예술시스템을 거부한다. RM은 보다 진보적인 문화예술행동을 지향하는 독립예술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난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26. 2012년 봄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그림을 그리던 RM은 이웃집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연탄재를 발견하고 낙서를 한다. “간밤에 따뜻하셨죠?"라고.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12 신기하게도 그 연탄재는 며칠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월호 침몰 참사 31일째인 16일, 하늘은 맑았으나 사고해역은 대조기로 물살이 강했다. 민관군합동구조팀 중 민간 산업 잠수사 13명이 오늘 철수했다. 사고대책본부는 새로운 인력이 투입돼 실종자 수색작업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 설명했지만, 실종자 가족은 잠수사 철수에 애를 태우고 있다. 참사 28일째인 지난 13일 한 실종자 가족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방파제에 운동화를 놓았다. 다음 날, 하늘은 비를 내렸고, 운동화는 비닐에 덮혀있었다. 오늘은 운동화 위에 손수건과 노란 종이배가 놓여져 있었다. 팽목항 대형 천막에서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대책본부는 조립식 이동주택을 주차장 쪽에 마련했다. 그러나 체육관에 머물던 가족들은 계속 체육관에 머물기로 했고, 팽목항에 있던 일부 가족만이 이동주택..
세월호 침몰 잠사 30일째인 15일 하늘은 푸르렀다. 전날 새벽 바다를 향해 실종자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자 시신 5구가 수습됐다. 바다를 향한 외침은 오늘도 들려왔다. 운동화를 방파제아 가져다놓은 한 부모는 아직도 자식을 못찾아 신발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희생된 자식을 찾은 한 엄마는 실종자 학생 엄마에게 어서 자식 이름을 부르라고 재촉했다. "어서, 부르라니까" 실종자 학생 엄마는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눈물을 훔쳤다. 오후 5시쯤 실종자 가족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찾았데!" 가족들은 얼싸안으며 임시시신안치소로 향했다. 세월호 참사 30일째. 아직도 바다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는 20명이다. 2014.5.14. 팽목항
세월호 참사 29일째인 14일 새벽,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 등대 아래로 모였다.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향해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자, 이틀 만에 딸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기 때문. 28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28명의 실종자 이름을 차례대로 세번씩 바다에 외쳤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기에 자신의 가족이 아닌 다른 실종자의 이름도 자기 가족처럼 불렀다. 순서가 지날수록 외침은 흐느낌으로,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날이 밝아지자 하늘은 비를 내렸다. 애타는 실종자 가족은 아들의 운동화를 파란 비닐로 덮었다. 새벽의 외침을 하늘이 몰라주는 걸까?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오늘은 희생자 선생님을 그리는 노란 리본이 보였다. 선생님의 의무를 다한 니가 장하다는 아빠의..
기상악화로 3일째 중단됐던 실종자 수색작업이 오늘(13일) 재개됐다. 이른 아침, 한 실종자 가족이 팽목항 등대 아래 아들의 운동화와 운동복을 내려놓았다. 간식과 편지와 함께 사랑하는 내아들. 효도했던 내 아들이 어찌그리 못오고 있는게야. 어서 빨리 돌아와다오. 어서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신발도 옷도 입어 봐야지. 엄마 소원이야. 아들 얼굴 한번 만저나보세. 어서 돌아와줘. 오늘은. 약속하는 거지. 돌아온다고. 기다리마. 아들. 사랑해.... 유가족 대표단과 재난의료지원단이 해경선을 타고 사고현장으로 가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은 오늘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1시경 잠수사가 세월호 4층 선미 우현에서 여학생 시신 1구를 수습했다. 실종자수는 1명 줄어든 28명, 사망자는 1명 늘어나 276명. 28명의 실..
노란 리본에 적힌 사연을 읽다가 눈물 흘리는 자원봉사자 요란하던 비바람이 멈추었다. 숙소에서 눈을 뜨고 창을 여니 하늘이 맑게 개었다. 오늘은 세월호 수색작업이 재개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침몰 해역의 기상여건은 너울성 파도가 일며 여전이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부둣가 멀리에서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렸다. 실종자 가족이었다. 가족은 "왜, 너만 돌아오지 못해!"라며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오후에는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실종자 가족을 찾아 위로했다. 안산에 있던 생존자 실종자 가족들도 팽목항을 찾았다. 오늘도 실종자 29명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을 위해 목포해양경찰서 직원이 의자를 가져가고 있다. 팽목항에서 해경선이 사고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유가족들이 바..
세월호 침몰 26일째인 11일,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진도 팽목항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실종자 29명의 수색작업은 기상악화로 잠정 중단된 상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팽목항은 거센 비바람 소리만 들리고 있다. 실종자 가족의 흐느낌도 비바람 소리에 묻혀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원봉사자들은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2014. 5. 11. 팽복항
슬레이트 지붕이라도 좋다. 지금 이대로 살 수 있다면. 떡 하나, 작은 음료수 한 병도 나누던 동네 인심이 재개발을 버텨냈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냥 달동네라 불리던 대전 대동 산1번지에 봄이 왔다. 대동 달동네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이었다. 배나무가 많아 배골산이라 불리던 계족산 남쪽 줄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산비탈을 깎아 작은 평지를 만들고 천막과 판자를 둘러 비바람을 막았다.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비가 새던 판자 지붕을 아스팔트 기름으로 바르거나 슬레이트로 바꿨다. 아스팔트 찌꺼기로 코팅한 루핑 지붕은 없어졌지만 대동 달동네는 아직도 슬레이트 지붕이 비와 눈을 막아주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뭐해. 관리비도 못 낼 텐데.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