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146)
[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가난한 뱃사람들이 유달산 너른 품에 안겼다. 마을 뒷산에 오른 아낙들은 먼 바다로 나간 남편과 조금새끼들을 위해 기도한다. 붓꽃 빛깔로 노을이 떨어지는 바다는 아낙들의 기도 소리를 싫고 먼 바다로 나아간다. 목포는 항구다. 1896년 개항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목포다. 항구가 생기자 목포 앞바다에서는 해상시장인 파시가 사시사철 열렸고, 돈 냄새를 맡은 가난한 뱃사람들이 모였다. 몸뚱이 말고 가진 것 없는 그들은 바다가 굽어보이는 유달산 남쪽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는데, 따뜻했다. ‘아따, 따숩은 기미네’ 다순구미 마을. 따뜻하다는 의미의 전라도말 ‘따숩다(다순)’와 후미진 곳을 일컫는 ‘기미(구미)’를 일컫는 다순구미는 행정구역 이름으로 온금동이다. 따뜻할 온자와 비단 금자를 쓴다. 정식 명칭이야 나랏일 ..
구례군 백운산에 구름이 피어오른다. 산수동 마을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전남 구례군의 대표적 귀농 마을 몇군데를 둘러봤다. 10여년전 구례를 다녀왔다는 동행한 선배 기자는 당시에 구례에 젊은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한다. 구례군의 귀농 지원 정책에 힘입어 예전에는 없던 마을이 몇개 생겨났다. 예술인마을, 산수동마을, 예술인촌마을, 피아골 은어마을, 오미 한옥마을을 둘러봤다. 구례읍과 가장 가깝지만, 오지라고 불릴만한 산수동 마을이다. 산골마을이라 지금도 도로 포장공사가 진행중이다. 대학을 보내고 은퇴한 윤춘수(54), 김명희(50) 부부가 봉서리 산 중턱에 농장을 꾸몄다. 귀농은 일단 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귀뜸한다. 남자야 불편한 농촌생활에 쉽게 적응하지만 여자는 쉽지 않다. 산수농장도 부인이 농업대..
국내 최초의 중앙정원식 아파트인 동대문아파트. 1965년 완성된 7층짜리 동대문아파트는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살 정도의 부자 아파트였다. 고급 주거지를 자랑하기 위해 복도에 진귀한 살림살이를 내놓도록 경비실에서 독려했다고도 한다. 정동아파트와 더불어 서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부귀영화를 자랑했던 중앙정원 복도라인에는 도르래가 설치돼있다. 도르래는 빨래줄을 지탱하는데, 줄을 잡아당기면 빨래가 복도쪽으로 끌려온다. 빨래를 넌지 얼마 안됐는지 1층 중앙에 들어섰을때 물방울이 떨어졌다. 입주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조심스레 아파트를 둘러봤지만 중앙정원에 울려퍼지는 셔터 소리에 한 아주머니가 놀랐다. 죄송하다는 뜻에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모 신기한게 있냐고 묻는 아줌마의 물음이 더 신기히다. 어떻게 대..
읍내를 벗어나 꼬불꼬불 산길을 휘돌아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진 원형짚단에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붙어 있다. 함박 웃음을 웃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방문객들에게 인사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무왕1리 마을은 해바라기 마을로 변신했다. 2004년 봄에 농업센터 교육을 마친 마을 이장이 해바라기 농사가 다른 작물보다 평당 3배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장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동네 곳곳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개량 품종의 해바라기인데, 다른 해바라기보다 키는 크지 않지만 꽃이 커서 씨가 많이 열린다. 원래 마을 속지명이 ‘저른’이라 하는데, ‘구름이 쉬었다가는 마을’이란다. 해바라기 마을로 입소문을 타 사진기를 든 탐방객들의 발길이..
장마 하늘은 변화무쌍하다. 아침부터 해질 녘까지 쉴새없이 바뀌는 하늘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나에겐 장마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성질이 무척 다른 두 기단이 충돌하면 하늘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전선이 형성된다. 장마전선은 우리나라에서 1년 중 가장 치열한 공기의 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처럼, 장마전선은 한반도 위아래를 훑어간다. 전선의 위치에 따라 한반도의 하늘은 흥망성쇄를 겪는다. 사진들은 장마전선 남쪽에서 바라본 하늘인데, 경향신문사 옥상에서 바라본 파노라마다. 높은 하늘이 으뜸이라는 가을 하늘이라지만 장마 하늘은 평소 느낌과 다른 꽤 근사한 풍경을 선사한다. 손에 잡힐 듯이 낮게 깔리는 장마 구름은 하늘이 그리 높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 구름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륙하는 비..
무더위를 피해 호수공원 호수교 아래 발포매트를 깔고 누웠다.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를 날리며 죽어라 땅만 밟으며 내 몸의 무게를 받아낸 발을 난간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눈과 손은 쉬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나 저 너머의 또다른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바라본다. 같은 매트에 몸뚱이는 같이 있어도 서로 다른 세계와 접속하고 있다. 정신은 여전히 가상세계에 머물며 더위를 식히지 못하고 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빛아래 이제는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들이 가꿔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하지만 연인은 모든걸 훌훌..
오늘(7월3일)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한동안 눈이 즐거울 것이다. 작년부터 비오는 날, 여성들의 우중 패션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원색의 장화를 신고 예쁜 우산을 받쳐들고 걷는 여성들의 모습이 상쾌하다. 촉촉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재밌는 일이 내게 일어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광화문 사거리? 명동? 종로거리? 어디에 가서 비오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볼까 고민하다 이화여자대학교로 향했다. 이대는 일단 젊은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각양각색의 우산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어 좋다. 이대 교정의 비오는 모습은 두 가지 분위기가 느껴진다. 캠퍼스 내의 신록(가을이면 단풍)은 서울 도심의 답답한 분위기를 전환시켜 줄 수 있다. 다른 한가지 분위기는 이대 복합단지 건물이 내뿜는 수직의 풍경이다. 2..
이웃집 앞에 놓인 연탄재에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달았다. “간밤엔 따뜻하셨죠?” 아침에 눈을 뜬 이웃집 아줌마는 연탄재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머리 위에 상추를 키우는 연탄들이 달을 바라보고 있다. 한여름을 목전에 둔 6월에도 마을 고샅길 귀퉁이에 연탄재가 쌓인 달동네가 있다. 누런 연탄재에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담겨 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 오줌 싸는 사내아이, 샤워하는 여인 등 재밌는 벽화가 그려진 충북 청주시 달동네 수암골이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당시 1·4후퇴로 피란온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육군병원에서 빌린 천막에서 생활하던 피란민들이 우암산 기슭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40년 가까이 수암골에서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박만영 할아버지(80)가 옛날 수암골의 모습을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