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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시골 초등학교가 다시 살아났다. 마을 인구가 고령화되어 입학생이 줄자 2014년 통폐합 명단에 올랐던 학교다. 마을에서 학교가 사라지게 놔둘 수 없다며 학부모와 교직원,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학교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초등학교 이야기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하굣길에 마을 바닷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60여년전 학교를 위해 미역을 채취하던 학교바당(바다)에서는 아직도 마을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다. “해녀들의 도움으로 살아났던 학교 역사를 이제 우리가 이어가야죠.” 개교한 지 4년째 되는 1950년, 학교에 불이나 전 교실이 불에 탔다. 문애선 교장이 사연을 풀어놨다. 끼니조차 때우기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며 해녀들이 미역..
경상남도 남해군 가천읍 다랭이 마을에 봄이 왔다. 원기 회복에 좋다는 마늘이 따뜻한 해풍을 맞고 흙속을 뚫고 나와 초록빛으로 계단을 물들이고 있다. 풍광이 빼어나다며 지난 2005년에 국가명승지 15호로 지정됐는데, 다랭이에 얽힌 사연은 고단한 삶이다. 400여년전 설흘산 너머 사람들이 미역과 다시마를 채취하러 왔다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 배가 닿을 수 없는 험한 해안 지형이라 정착민들은 농사를 선택했다. 설흘산과 응봉산의 가파른 산비탈에 농작물을 심어야했기에 계단식 농토를 만들었다. 돌부리를 뽑고, 뽑은 돌부리로 석축을 쌓고, 석축 안에 흙을 채워 넣었다. 평균 3미터 높이의 석축이라는데, 1미터 높이의 돌을 쌓을려면 막돌 70-80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계단식 논을 개간하는 걸, 다랭이를 친다고 하..
작년 2월 17일에 사진에 담았던 서울 창경궁 춘당지를 3일에 다시 찾았다. 입춘을 하루 앞둔 원앙의 표정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일찍 방문해서 그런지 춘당지에는 그리 많지 않은 원앙들이 풀리기 시작한 연못에 앉아 있었다. 한낮 기온이 영상권을 회복해 점심 시건 전후로는 꽤 봄기운이 돌았다. 기온 변화야 동물들이 더 잘 알아차리겠지, 수컷 원앙들이 한 발을 들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쩝, 봄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활기찬 원앙들을 보고 싶었는데 졸고 있다니.... 카메라를 내려놓고 30분이 지났을까, 원앙들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폈다. 잠에서 깬 원앙이 목을 축이고 기지개를 편다. 물가로 나간 원앙 두 마리가 갑자기 소란을 피웠다. 수컷 두 마리다. 닭싸움을 방불케하는 공중전을 펼치던 원앙 두 마..
한 걸음 더 돌아 간다해도 그리 힘든 것은 아니다. 한 걸음 천천히 간다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때론 뒤돌아보며 지나온 길도 바라본다. 앞만 보며 내달리며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새로운 2015년을 힘차게 내딛어본다. 덕유산은 정복하기 쉽다. 전라북도 무주리조트 설천매표소에서 돈만 내면 20여분 남짓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오른다. 해발 1,614m 향적봉은 설천봉에서 15분 정도 능선길을 지나 마주하게 된다. 덕유산의 최고봉이다. 노약자들은 대게 여기서 기념 사진을 찍고 곤돌라가 있는 설천봉 휴게소로 되돌아간다. 사진은 향적봉을 지나는 장면이다. 등산객들이 향적봉에서 대피소로 내려오..
검디검은 선탄장에서 달그락 달그락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눈만 내놓은 광부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석탄을 걸러내고 있다. 작년 간다 올해 간다 석삼년이 지나고, 내년 간다 후년 간다 꽃 같은 청춘 탄광에서 늙었다. 기차 떠날 적에 고향 그리워 울고, 막장 삽질하니 땀방울이 핏방울이다. 문어·낙지·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 광부의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는다. 광부아리랑이 흐르는 강원 태백시 철암동 탄광마을 이야기다. 거짓 간판이다. 궁원 다방, 단란주점 젊음의 양지에는 아가씨들이 없다. 광부들이 놀던 상점들은 이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탈바꿈해 관광객들이 놀고 있다. 지금의 연탄은 가난을 말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광부증 들고 다니는 사내는 장가가는 것이 쉬울 정도로 인기 많았다. 우리나라 기간산업이 ..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아서 염리동이라 불렀다. 옛 서울 마포동 소금머리골에 소금배가 드나들던 소금전이 있었고, 대흥동 동막역에는 소금창고가 있었다. 물론, 현재의 염리동에는 소금장수가 없다. 노후한 밀집 주택가는 재개발지구로 지정됐고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워졌다. 컴컴한 골목길은 무서웠다. 우범지역이라는 오명도 따라붙었다. 2012년까지는 그러했다. 서울시는 범죄예방 디자인 사업을 염리동에 착수했다. 범죄예방 디자인? 범죄에 취약한 지역의 생활환경을 도시 디자인 작업을 통해 안전한 생활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뜬 구름 잡는 설명이다. 염리동을 걸어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저절로 이해된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노란 벽돌길처럼 염리동 골목길 바닥에는 노란 점선이 그려져 있다. 노란 점선 골목길 어귀마다 고유 번호가..
단풍 찾아 산을 오르는 계절은 지났다. 추풍에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한 사람들, 아마 이번주가 마지막일게다. 도심 고궁이나 학교 캠퍼스에는 아직 가을 풍경이 남아있다. 아직은, 가을이 떠나지 않았다. 창경궁 춘당지 2014. 11. 23. 서울 이화여자대학 2014. 11. 23. 서울 이화여자대학 2014. 11. 23. 서울 창경궁 2014. 11. 23. 서울 창경궁 2014. 11. 23.
옛 선인(先人)들이 걷던 길이다. 오대산 천년숲속에 이어지는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까지 이어진다. 9km에 이르는 산책길은 계곡을 따라 오솔길과 징검다리, 섶다리, 출렁다리, 자갈길 등이 이어지면서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다. 1구간은 월정사에서 시작해 동피골에 이르는 5,4km 구간인데, 두시간 남짓 걸린다. 평지가 대부분이며 오솔길 군데군데 의자와 쉼터가 마련돼 있다. 한 지역의 생태계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동식물을 깃대종이라 하는데, 오대산 깃대종인 노랑무뉘붓꽃도 만날 수 있다.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 출사 포인트인 섶다리가 운치를 더한다. 동피골에서 상원사에 이리는 3.6km 구간은 1시간 반 코스다. 동피골에는 멸종위기종과 특정식물 등 30여종의 희귀식물을 복원해 놓은 멸종위기식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