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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장마 하늘은 변화무쌍하다. 아침부터 해질 녘까지 쉴새없이 바뀌는 하늘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나에겐 장마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성질이 무척 다른 두 기단이 충돌하면 하늘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고 전선이 형성된다. 장마전선은 우리나라에서 1년 중 가장 치열한 공기의 전쟁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처럼, 장마전선은 한반도 위아래를 훑어간다. 전선의 위치에 따라 한반도의 하늘은 흥망성쇄를 겪는다. 사진들은 장마전선 남쪽에서 바라본 하늘인데, 경향신문사 옥상에서 바라본 파노라마다. 높은 하늘이 으뜸이라는 가을 하늘이라지만 장마 하늘은 평소 느낌과 다른 꽤 근사한 풍경을 선사한다. 손에 잡힐 듯이 낮게 깔리는 장마 구름은 하늘이 그리 높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 구름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륙하는 비..
무더위를 피해 호수공원 호수교 아래 발포매트를 깔고 누웠다. 시원한 강바람에 더위를 날리며 죽어라 땅만 밟으며 내 몸의 무게를 받아낸 발을 난간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눈과 손은 쉬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나 저 너머의 또다른 세상으로 연결시켜주는 스마트폰을 터치하고 바라본다. 같은 매트에 몸뚱이는 같이 있어도 서로 다른 세계와 접속하고 있다. 정신은 여전히 가상세계에 머물며 더위를 식히지 못하고 있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밤 그 별빛아래 이제는 더이상 얽매이긴 우린 싫어요 신문에 TV에 월급봉투에 아파트 담벼락보다는 바달 볼 수있는 창문이 좋아요 낑깡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들이 가꿔봐요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 밤 하늘 아래로 하지만 연인은 모든걸 훌훌..
오늘(7월3일)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한동안 눈이 즐거울 것이다. 작년부터 비오는 날, 여성들의 우중 패션을 보는 재미가 생겼다. 원색의 장화를 신고 예쁜 우산을 받쳐들고 걷는 여성들의 모습이 상쾌하다. 촉촉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재밌는 일이 내게 일어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광화문 사거리? 명동? 종로거리? 어디에 가서 비오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볼까 고민하다 이화여자대학교로 향했다. 이대는 일단 젊은 학생들이 들고 다니는 각양각색의 우산들을 많이 구경할 수 있어 좋다. 이대 교정의 비오는 모습은 두 가지 분위기가 느껴진다. 캠퍼스 내의 신록(가을이면 단풍)은 서울 도심의 답답한 분위기를 전환시켜 줄 수 있다. 다른 한가지 분위기는 이대 복합단지 건물이 내뿜는 수직의 풍경이다. 2..
이웃집 앞에 놓인 연탄재에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달았다. “간밤엔 따뜻하셨죠?” 아침에 눈을 뜬 이웃집 아줌마는 연탄재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머리 위에 상추를 키우는 연탄들이 달을 바라보고 있다. 한여름을 목전에 둔 6월에도 마을 고샅길 귀퉁이에 연탄재가 쌓인 달동네가 있다. 누런 연탄재에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담겨 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 오줌 싸는 사내아이, 샤워하는 여인 등 재밌는 벽화가 그려진 충북 청주시 달동네 수암골이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당시 1·4후퇴로 피란온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육군병원에서 빌린 천막에서 생활하던 피란민들이 우암산 기슭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40년 가까이 수암골에서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박만영 할아버지(80)가 옛날 수암골의 모습을 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39, 40. 충북 청주의 달동네 수암골에서 거리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5월 15일부터 시작된 ‘연탄, 예술이 되다’ 프로젝트는 무기한으로 진행된다. 스스로를 비주류 독립작가로 규정한 비정규 문화예술 노동자 RM은 자본주의적 문화예술시스템을 거부한다. RM은 보다 진보적인 문화예술행동을 지향하는 독립예술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난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26. 2012년 봄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그림을 그리던 RM은 이웃집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연탄재를 발견하고 낙서를 한다. “간밤에 따뜻하셨죠?"라고.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12 신기하게도 그 연탄재는 며칠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월호 침몰 참사 31일째인 16일, 하늘은 맑았으나 사고해역은 대조기로 물살이 강했다. 민관군합동구조팀 중 민간 산업 잠수사 13명이 오늘 철수했다. 사고대책본부는 새로운 인력이 투입돼 실종자 수색작업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 설명했지만, 실종자 가족은 잠수사 철수에 애를 태우고 있다. 참사 28일째인 지난 13일 한 실종자 가족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방파제에 운동화를 놓았다. 다음 날, 하늘은 비를 내렸고, 운동화는 비닐에 덮혀있었다. 오늘은 운동화 위에 손수건과 노란 종이배가 놓여져 있었다. 팽목항 대형 천막에서 실종자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대책본부는 조립식 이동주택을 주차장 쪽에 마련했다. 그러나 체육관에 머물던 가족들은 계속 체육관에 머물기로 했고, 팽목항에 있던 일부 가족만이 이동주택..
세월호 침몰 잠사 30일째인 15일 하늘은 푸르렀다. 전날 새벽 바다를 향해 실종자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자 시신 5구가 수습됐다. 바다를 향한 외침은 오늘도 들려왔다. 운동화를 방파제아 가져다놓은 한 부모는 아직도 자식을 못찾아 신발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희생된 자식을 찾은 한 엄마는 실종자 학생 엄마에게 어서 자식 이름을 부르라고 재촉했다. "어서, 부르라니까" 실종자 학생 엄마는 끝내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눈물을 훔쳤다. 오후 5시쯤 실종자 가족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찾았데!" 가족들은 얼싸안으며 임시시신안치소로 향했다. 세월호 참사 30일째. 아직도 바다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는 20명이다. 2014.5.14. 팽목항
세월호 참사 29일째인 14일 새벽, 실종자 가족들은 팽목항 등대 아래로 모였다.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향해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자, 이틀 만에 딸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기 때문. 28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28명의 실종자 이름을 차례대로 세번씩 바다에 외쳤다. 같은 아픔을 겪고 있기에 자신의 가족이 아닌 다른 실종자의 이름도 자기 가족처럼 불렀다. 순서가 지날수록 외침은 흐느낌으로,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날이 밝아지자 하늘은 비를 내렸다. 애타는 실종자 가족은 아들의 운동화를 파란 비닐로 덮었다. 새벽의 외침을 하늘이 몰라주는 걸까?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오늘은 희생자 선생님을 그리는 노란 리본이 보였다. 선생님의 의무를 다한 니가 장하다는 아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