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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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의 새벽, 쪽배가 뜬다

김창길 2012. 10. 23. 13:42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우포늪 소목마을 나루터에서 만난 한일보씨(64)가 물고기 한 아름을 쪽배에서 내리며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말한다.
“우포 붕어 땜시 저 멀리 부산, 대구에서도 온다카이.”


 람사르 총회로 유명세를 탄 경상남도 창녕군 우포늪은 과거에는 참붕어, 메기, 가물치가 잘 잡히는 습지로 명성을 떨쳤다. 1997년 우포늪이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그랬다.
“그땐 나라에서 한다캐서 좋은기라 생각해따 아입니꺼.”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이후, 우포늪 주변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불만을 터뜨리고 항의했다. 집 앞에 축사도 못 짓고, 내 논에 농약도 못 치고, 쓰레기도 못 태우고…. 우포늪 어업도 마찬가지였다. 습지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창녕군 이방면 마을사람 열세 명에게만 어업 허가권이 부여됐는데, 그중 열두 명이 소목마을에 산다. 열다섯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두 가구를 제외하고 늪에 나가 어망을 친다.

 

 

 “추워야카제. 날 따땃하면 고기 없다카이.”
 고기잡이 한 번 나가자는 청에 못 이겨 소목마을 박한덕씨(58)가 쪽배에 올랐다. 날이 싸늘해져 물풀이 사라져야 풀 사이에 숨어있던 물고기가 나온다고 박씨는 말했다. 쪽배도 마찬가지. 지름이 1가 넘는 가시연꽃잎과 억센 마름을 헤치며 배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어망에 다가간 박씨가 장대를 쪽배에 올려놓고 그물에 붙은 자라풀과 개구리밥을 툴툴 털어냈다. 어망 속에는 가물치 한 마리와 팔뚝만한 잉어 한 마리가 버둥거리고 있다.


 “우포가 동생 여덟 명 시집 장가 다 보내뿔고 내 새끼들도 대학 보냈씸더.”
 박씨는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삼대째 고기잡이를 하는 우포늪 최고의 어부다. 그가 열네 살 되던 해 아버지가 폐렴으로 몸져눕는 바람에 장남 노릇을 톡톡히 했다.

 

 

 

“우포 사랑 하면 내 아입니꺼!”
 우포늪 지킴이 주영학씨(68)가 사이렌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나루터에 나타났다. 나루터에 배를 댄 박씨는 주씨에게 붉은귀거북 한 마리를 건넸다.

 “고맙씸더. 거북이는 오랜마이네. 어제는 큰 쥐 두 마리 잡았다카이.”
 큰 쥐란 뉴트리아로 붉은귀거북처럼 우포늪 먹이사슬을 파괴하는 외래종이다. 황소개구리는 우포에 철새가 많아지면서 없어졌지만, 철새까지 잡아먹는 잡식성 뉴트리아는 정말 골칫거리라고 한다. 거북이를 포대자루에 집어넣으며 주씨가 박씨에게 물었다.

 “총회 끝나고 매일 나오능교?”
 “마을사람들이랑 약속했다카이.”
 농한기가 시작되는 음력 시월부터 소목마을 사람들은 본격적인 고기잡이에 들어간다. 하지만, 올해는 람사르 총회 때문에 고기잡이를 늦추기로 했다. 람사르 총회로 이득을 보는 일은 하나도 없다지만 소목마을 사람들도 은근히 총회를 기다리는 눈치다.

2008년 10월 우포늪 소목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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