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뱃사람들이 유달산 너른 품에 안겼다. 마을 뒷산에 오른 아낙들은 먼 바다로 나간 남편과 조금새끼들을 위해 기도한다. 붓꽃 빛깔로 노을이 떨어지는 바다는 아낙들의 기도 소리를 싫고 먼 바다로 나아간다.

 

 

목포는 항구다. 1896년 개항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목포다. 항구가 생기자 목포 앞바다에서는 해상시장인 파시가 사시사철 열렸고, 돈 냄새를 맡은 가난한 뱃사람들이 모였다. 몸뚱이 말고 가진 것 없는 그들은 바다가 굽어보이는 유달산 남쪽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었는데, 따뜻했다.

 

아따, 따숩은 기미네

다순구미 마을. 따뜻하다는 의미의 전라도말 따숩다(다순)’와 후미진 곳을 일컫는 기미(구미)’를 일컫는 다순구미는 행정구역 이름으로 온금동이다. 따뜻할 온자와 비단 금자를 쓴다. 정식 명칭이야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쓰면 그만이고, 다순구미로 불러야 동네가 확 와 닿는다. 그 흔한 이층집도 찾아보기 힘든 오막살이들이 다닥다닥 들러붙어 따뜻한 햇살을 받아낸다. 다순구미는 곧 사라진다.

 

 

 

만선의 꿈이 사내만의 것이 겠는가? 한땀 한땀 그물줄을 잇는 아낙들의 손길에서 뱃사람들의 꿈은 무르익어간다.

 

 

얼마나 더 살려고 때려 부숴. 돈 도 없는데.”

지난 2012년 온금동은 재개발촉진지구로 고시됐다. 낡은 불량주택이 밀집한 다순구미 마을이 목포항 관문에 위치해 항구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게 이유다. 빈집들이 많아 담장이 기울고 녹이 슨 대문과 창문 틈새에는 잡초가 피어올랐다. 뱃사람들은 따뜻한 마을을 떠나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처럼 한없이 풍요로울 줄 알았던 바다는 언제부터인가 쉽게 물고기를 내어주지 않았다. 냉장기술이 개발되자 잡아온 고기를 바다 위에서 거래하는 파시도 필요 없어 배들이 모이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 궁색한 집안 살림살이에 효자노릇하던 벽돌공장도 문을 닫았다. 돈 버는 재미로 고단함을 견뎌내며 흥겨워했던 마을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젊을수록 나이 하나 더 먹기 전에 서둘러 마을을 벗어났다.

 

 

 

바다를 향해 열려있는 작은 마당에서 마을 주민이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파른 골목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가뿐 숨을 몰아쉬지만 마당 전망대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며 지나온 날들을 떠올린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조금새끼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지.”

선장 남편을 일찍 여읜 한 할머니는 품팔이로 자식들을 키워냈다. 동네 아이들과 생일이 같은 자식들이 주린 배를 움켜쥐며 곯아떨어지는 밤이면 속절없는 눈물만 흘러나왔다. 생일이 비슷한 동네 아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불렀다. 바닷물이 조금밖에 움직이지 않아 물고기도 숨어서 잠을 잔다는 조금 때, 출어를 포기한 사내들은 집에서 새끼 만들기에 전념하다보니 생일이 비슷할 수밖에. 조금 큰 조금새끼들을 데리고 간 남편 배가 풍랑에 뒤집혀 제삿날이 같은 집도 여럿이다. 아들 하나를 잃었다는 할머니는 물끄러미 마당 수도꼭지를 바라봤다.

 

물이 귀했지. 지금이야 집집마다 수돗물이 나오지만. 그래도 아껴 써야지.”

마을 중앙에는 기념비가 딸린 우물이 있다. ‘공동시암이라 불리는 우물 정자 모양의 샘이다. 옛날 다순구미 마을은 바다 땅이라 파면 갯벌이 나오기 일쑤였다. 주민들은 깔끄막을 헐떡이며 넘나들며 유달산 저수지에서 물을 길러다 먹었다. 한해가 들어 저수지가 바닥이 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바닷물을 식수로 마시기까지 했다. 그러던 중 정인호라는 양반이 돈을 들여 큰 샘을 하나 팠는데, 그 은혜가 감개무량해 동네 사람들은 시혜불망비를 세웠다.

 

 

 

목포가 가장 물값이 비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물지게 양동이로 3-4시간 걸려 깔끄막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니 정인호가 만든 우물이 보통 우물이었겠는가? 깊은 사연의 큰 샘은 이제 고추말리는 평상이 됐다.

 

 

 

장갑 끼면 그물 줄이 착착 손에 안 잡혀.”

문 닫은 벽돌공장 담장에서 망가진 그물을 고치는 어머니의 거친 손이 안쓰럽다. 돈 되는 일은 한사코 하지 않았다던 남편 덕분에 온갖 고생을 겪어온 손이다. 벽돌공장이 문을 닫기 전까지는 쌀장사를 해낸 손이고, 공장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자 그물에 손을 댔다. 대학 못 보낸 게 속상하다지만 육남매를 보듬어 키워낸 아름다운 어머니의 손이다. 주체할 수 없는 카메라는 어머니의 손을 향했는데, 자식들이 사진 찍히는 거 싫어한다며 고개를 흔드신다. 나이 팔십이 넘어서도 자식 생각이다.

 

조금새끼들을 위해 제를 올렸다던 마을 뒷산 산제당터에 올라 동네를 바라봤다. 고깃배와 여객선, 바지선들이 붓꽃 빛깔의 마을 앞바다를 유유히 지나간다.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올뫼나루터로 돌아오는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는 사라졌지만, 다순구미 마을에 비추는 햇살은 여전히 따뜻했다.

 

 

 

2014. 9. 15 - 17 다순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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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이웃집 앞에 놓인 연탄재에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달았다. “간밤엔 따뜻하셨죠?” 아침에 눈을 뜬 이웃집 아줌마는 연탄재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머리 위에 상추를 키우는 연탄들이 달을 바라보고 있다.

 

 

 

한여름을 목전에 둔 6월에도 마을 고샅길 귀퉁이에 연탄재가 쌓인 달동네가 있다. 누런 연탄재에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담겨 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 오줌 싸는 사내아이, 샤워하는 여인 등 재밌는 벽화가 그려진 충북 청주시 달동네 수암골이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당시 1·4후퇴로 피란온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육군병원에서 빌린 천막에서 생활하던 피란민들이 우암산 기슭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40년 가까이 수암골에서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박만영 할아버지(80)가 옛날 수암골의 모습을 들려준다.

“판잣집은 무슨. 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찍어내고 볏짚으로 하늘을 가렸지.”

황량한 불모지에 흙벽돌로 희망을 쌓아올린 피란민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 대부분을 도시로 출가시킨 노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목욕하는 여인을 무등을 탄 연탄들이 훔쳐보고 있다. 평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는 어디를 보고 계실까?

 

 

 

청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제법 큰 골목길 담장에 지역 예술가들이 타일을 붙이고 있었다. 마을 벽화체험교실에 참여한 방문객들이 그린 조그만 타일 그림이다. 골목길 벽화작업은 2008년부터 시작됐는데, 골목길 정취가 드라마틱해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수암골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동네를 구경하던 여자 아이가 오줌 싸는 사내아이를 보고 등을 돌렸다.

 

 

 

 

“커다란 가게들만 잔뜩 생겨 동네가 사라질까봐 걱정돼.”

 

마을 작업장에서 짚으로 멍석을 만들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쉰다. 방송을 통해 수암골이 유명세를 타자 드라마 제목을 가게 이름으로 내건 커다란 음식점들이 마을 주변에 들어섰다. 골목길을 돌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던 탐방객들은 동네 입구 구멍가게를 지나쳐 전망 좋은 카페에 들어가 지갑을 연다. 수암번영회를 만들어 빼앗길 뻔한 골목길은 지켜냈지만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상업시설은 속수무책이다.

 

“소통 없이 돈만 벌고 있는 게 문제죠.”

수암골 마을공동체 마실 이광진 사무국장(56)은 수암골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로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당연한 얘기건만, 당연하지 않은 게 문제다. 수암골이라는 마을 이름까지 상표로 등록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족 탐방객이 수암골 벽화지도를 보며 동네를 구경하고 있다. 간밤 부부의 악다구니 싸움 사연과 쌔근쌔근 잠자는 아기의 숨소리, 새벽녘 귀가하는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골목길이다.

 

 

 

고샅길 담벼락에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가 적혀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던

저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로 찰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있는가?

 

 

 

 

탐방객이 그린 타일을 예술가들이 동네 담벼락에 붙이고 있다.

 

 

수암골은 외지인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하며 연탄재가 되고 있다.

수암골을 함부로 차지 마라.

하얀 껍데기만 남은 수암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40여년 가까이 마을 사람들의 주전부리를 해결해준 삼충상회 앞에서 동네 주민들이 인사하고 있다.

 

2014. 6. 8 - 10. 청주 수암골

 

P.S. 지금 수암골에서는 비주류 독립작가 RM의 <거리에 남긴 연탄들>이 열리고 있다. 거리 전시회다.

(간밤에 따뜻하셨죠?http://photonote.khan.kr/78

(RM http://streetart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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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39, 40.

 

충북 청주의 달동네 수암골에서 거리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515일부터 시작된 연탄, 예술이 되다프로젝트는 무기한으로 진행된다. 스스로를 비주류 독립작가로 규정한 비정규 문화예술 노동자 RM은 자본주의적 문화예술시스템을 거부한다. RM은 보다 진보적인 문화예술행동을 지향하는 독립예술가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난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26.

 

 

2012년 봄이었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그림을 그리던 RM은 이웃집 대문 앞에 놓여 있는 연탄재를 발견하고 낙서를 한다.

간밤에 따뜻하셨죠?"라고.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12

 

 

 

신기하게도 그 연탄재는 며칠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깜찍하게 변해 있는 연탄재를 발견한 이웃집 아줌마가 차마 그냥 내다버릴 수 없어서 그냥 두었단다.

! 슬모없이 버려진 연탄재들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구나!”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11

 

 

 

제 몸을 다 태워버린 후, 아무런 쓸모없이 버려지는 거리의 연탄재들에게 생각과 느낌을 덧씌워 작은 의미를 부여했다. 처음에 거리에 남겼던 연탄재들은 현재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오랜 시간 길 위에서 비, , 바람을 맞으며 한 줌의 재로 사라져버렸다. 쉽게 부서져버릴 수밖에 없는 연탄재들의 운명이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20

 

 

곰곰이 생각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오래 보고 즐길 수 있는 연탄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연탄, 예술이 되다라는 이림의 거리전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만드는 작업 공정을 거친 연탄 작품들이 전시된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37

 

 

RM은 수암골 프로젝트를 위해 약 500여 장의 연탄재를 모아 두었다. , 동네를 돌아다니며 닥치는대로 연탄재들을 모으고 있다. 이렇게 모아 만든 200여점의 다양한 연탄재 작품들과 비공개 작품들이 수암골 일대에 전시된다. 비주류 독립작가 RM의 첫 번째 거리 전시회다.

 

 

 

 

 

거리에 남긴 연탄들 / 청주 / NO 36

 

 

http://streetart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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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슬레이트 지붕이라도 좋다. 지금 이대로 살 수 있다면. 떡 하나, 작은 음료수 한 병도 나누던 동네 인심이 재개발을 버텨냈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냥 달동네라 불리던 대전 대동 산1번지에 봄이 왔다.

 

대동 달동네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이었다. 배나무가 많아 배골산이라 불리던 계족산 남쪽 줄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산비탈을 깎아 작은 평지를 만들고 천막과 판자를 둘러 비바람을 막았다.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비가 새던 판자 지붕을 아스팔트 기름으로 바르거나 슬레이트로 바꿨다. 아스팔트 찌꺼기로 코팅한 루핑 지붕은 없어졌지만 대동 달동네는 아직도 슬레이트 지붕이 비와 눈을 막아주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뭐해. 관리비도 못 낼 텐데.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어.”

 

40년 전, 전셋돈 4000원을 들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서효열 할머니(86)가 지난 일을 회상했다.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 나누며 사이좋게 지내던 달동네는 10여년 전부터 마을을 휩쓴 재개발 광풍으로 뒤숭숭해졌다. 집값이 오르자 주인들은 집을 팔았고, 떠난 이웃집은 빈집으로 남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금세 흉물스럽게 변해버렸고 마을 공터에는 쓰레기가 넘쳐났다.

 

 

 

 

 

 

을씨년스럽던 마을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07년부터.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도와주는 대동종합사회복지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폐가들을 정리하고 방치된 쓰레기도 치워버렸다. 지역 미술단체인 오늘공공미술연구소 사람들도 찾아와 허름한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었고 바람개비, 낙하산 등 조형물들을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동네가 화사해지자 바뀐 분위기를 체감한 동네 사람들은 좋은 동네를 만들어보자며 마을가꾸기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도심재생사업인 무지개프로젝트에 공모했다. 때마침 원주민을 내쫓는 기존 뉴타운 재개발 방식에 회의를 품던 대전시는 대동 달동네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주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마을을 살기 좋게 꾸며 나갔다.

 

 

 

 

 

 

마을 산꼭대기에 풍차를 세웠다. 하늘공원이라 이름 짓고 전망대를 만들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하늘공원 연애바위가 입소문을 타자 팔짱을 낀 연인들도 줄을 이었다.

 

“부럽지 뭐. 우리 젊었을 적엔 상상도 못했는데.”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김홍분 할머니(76)가 동네 사랑방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침이면 마을 공동화장실엔 긴 줄이 생겼고,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아낙들은 뒷산 너머로 물을 길러갔다. 산을 자주 넘다보니 동네 아낙들은 전망 좋고 쉬기 좋은 바위를 발견했다. 작은 판잣집에 아들, 손자며느리 다 살다보니 젊은 부부나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뒷산에 올랐다.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정을 나누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랑이 오갔는지 연애바위라고 불렀다.

 

 

 

 

 

 

사랑방을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도시락까지 챙겨온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왁자지껄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봄볕이 좋아 복지관 요가수업을 땡땡이치고 요가 선생님과 함께 봄소풍 왔단다. 봄볕이 좋아 배골산 배나무밭에 꽃이 만발이다.

 

 

 

201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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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낮 동안 퍼부었던 폭우가 그치고 물만골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도심 빌딩 불빛보다 화려하지 못하지만 황령산을 은은히 밝히는 물만골의 불빛이 따뜻하다.


부산 황령산 계곡에 자리한 동네다.

예로부터 물이 많이 나는 계곡이라 해서 이런 정겨운 이름이 붙었다.

물만골은 격동의 현대사를 지켜보며 이 땅의 숱한 민초들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한국전쟁 때는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을 보듬었고, 급격한 산업화 동안에는 뿌리 뽑힌 농촌이주민들의 고향이 됐다.

부산에 큰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쫓겨난 철거민들도 물만골의 너른 품으로 찾아들었다.

물만골의 맑은 물은 외롭고 힘든 서민들의 눈물을 기꺼이 씻어줬고, 타는 목을 축이게 했다.

내일을 살아갈 힘을 보탰다.

물만골 사람들이 폭우에 유실된 하천 축대를 쌓고 있다. 주민들이 골목조, 하천조로 나뉘어 마을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이제 물만골은 400여가구 1500여명의 주민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며 살아가는 지역공동체가 됐다.

그러나 부산 연제구청의 지적도에는 물만골이 없다.

분명히 정 많은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지만 물만골은 ‘유령 동네’다.

무허가 주택촌이기 때문이다.

그저 개발만이 최고인 줄 아는 세상. 당국이나 개발지상주의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공공미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눅눅하고 퀴퀴했던 동네 담벼락이 화사한 봄옷으로 갈아입었다.


1991년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구청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무지막지한 철거반원들이 겁이 나고 두려웠지만, 사람들은 당당하게 맞섰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뛰쳐나와 싸웠죠. 그야말로 꼬부랑 할머니부터 동네 강아지까지도 철거반에 맞섰답니다. 하하하.”

최진권씨(44)의 말이다.

물만골 사람들은 ‘내 집’을 지켜야겠다고 싸운 것이 아니란다.

‘우리 동네’를 위해서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1998년, 이번엔 구청이 물만골을 관통하는 황령산 순환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마을을 통째로 가르는 것, 그것은 곧 물만골 사람 모두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였다.


 

집 앞에 망울을 터뜨린 산수유 너머로 동네 아낙이 텃밭을 꾸미고 있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마을 사람들의 연대보증으로 신용대출도 받았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마을 전체부지의 3분의 1을 구매했다.

살아가는 게 넉넉지 않은 사람들로선 대단한 성과다.

토지대장에는 물만골 모든 가구주의 이름이 올라있다.

공동구매 과정에서 저절로 ‘물만골 공동체’가 생겨났다.

물만골 공동체는 마을의 공동사업도 시작했다.

생계에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싸우지 않고 마을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다.

부녀회 봉제사업, 노인회 자원재활용사업, 건설공동체 일자리 나누기 사업 등이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주거정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돗물이 없고, 비만 오면 쓸려 내려가는 둑도 걱정이었다.

동네 얼굴도 단장하고 있다.

마을 표지를 세우고, 담벼락에는 공공미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그림도 그렸다.

타박타박 소리 나는 나무 계단도 만들었다.

 

 

 

 

 

물만골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동체를 꾸리지만, 걱정이 가신 것은 아니다.

이제 순환도로는 물만골 구간을 빼고는 완공됐고, 최근 취락지구로 지정되면서 투기꾼들이 눈독을 들인다.

마을회관에 나온 물만골 공동체 김이수 위원장, 권병안 간사가 작은 한숨을 내쉰다.

노란 산수유 꽃이 어느새 앙증맞게 피어났다.

물만골 사람들의 마음에는 언제나 따뜻한 기운을 담은 봄이 올까.

오늘도 물만골 맑은 물은 아랫동네 회색빛 아파트촌으로 흘러간다.

 

2010년 3월 부산 물만골

 

 

 

Posted by 김창길

 

 

처음엔 '인디언촌' 불렀다.

한국전쟁 이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인왕산 아래 천막을 세웠다.

옛 사진을 볼 수 없지만, 천막촌의 모습이 인디언 마을과 비슷했단다.

인디언처럼 소리지르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서대문구 홍제3동 주택가 마을이다.

 

 

 

인디언촌.

천막주거지라는 인상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지난 1983년 마을 이름을 개명했다.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마을'로.

개미마을에는 200여가구 400여명의 주민들이 개미처럼 살고 있다.

 

 

 

 

 

이름을 바꾼 개미마을은 지난 2009년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관할 구청과 한 건설사가 40여년 버텨온 주택에 벽화를 그려넣었다.

'빛 그린 어울림 마을'이라는 주제로 이틀동안 그렸다고한다.

 

 

 

 

개미마을 벽화를 둘러봤다.

옛 인디언촌의 천막도, 열심히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벽화에서 개미마을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었다.

인디언 처럼 소리지르는 사람, 혹은 개미라도 그려 넣었으면 좋았겠구만....

몇 달 전에 가본 강원도 묵호 등대마을이 떠올랐다.

벽화의 수준을 떠나서 옛 마을 이야기를 벽화로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어쨋건 개미마을 벽화는 화사했다.

 

 

 

2013.2.14. 홍제동 개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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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