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12.25 검은 노동의 흔적
  2. 2014.12.29 광부 아리랑
  3. 2013.10.15 강원도 산꼬라데이 탄광마을

 

 

 

폐광산이 그대로 남아 체험관이 됐다. 광부들이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던 수직갱 조차장에서 어린이들이 손뼉치며 웃고 있다. 목욕탕, 탈의실, 세탁실은 광부들의 치열했던 검은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석탄역사체험관으로 탈바꿈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이야기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에 눈이 내린다. 체험관 뒤로 56년동안 캐낸 석탄 폐석이 쌓여  검은 야산이 됐다.

 

 

 

"동원탄좌가 사라지면 사북 56년의 역사가 사라집니다."
석탄유물보존회 전주익 기획팀장이 동원탄좌 역사에 대해 운을 뗐다. 1948년 채탄을 시작한 동원탄좌는 아시아 민영 최대의 석탄회사였다. 두 차례 오일 파동으로 에너지 수급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광부를 산업전사라 칭송했다. 한 때 5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석탄으로 먹고 살았다. 동네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니고, 운탄업자들은 포대에 돈을 쓸어모았던 시절도 있었다.
"사북은 탄광 노동운동의 중심지입니다."
1980년 사북항쟁이 일어났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던 탄광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당시 광부들의 월급체계는 도급제였다. 생산량만큼 월급이 책정되는 방식. 경영주편을 든 관리직 종사자들은 꼬투리를 잡고 광부들의 노동량을 가볍게 책정했다. 부당한 월급체계는 사측 입장에 동조하는 어용노조의 도움으로 지속됐다.
4월 18일 광부들은 노조지부장 부정선거의혹을 둘러싸고 집회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집회 불허를 통보받은 광부들은 분개했다. 3일 후 21일 광부들을 사찰하던 사복 경찰관이 발각돼, 광부들을 치고 달아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교통사고로 흥분한 광부들은 사북의 주요 건물들을 습격하고 기물을 파괴했다. 3일 후인 24일 노, 사, 정 대표가 합의하며 사태는 일단락되는듯 했다.
사북을 지켜보던 전두환 계엄사령부는 이 사건을 '광부난동사건'으로 규정했다. 사북사건 합동수사단은 4.24합의를 깨고 200여명의 광부와 주민들을 연행하며 군홧발로 짓밟았다. 검찰은 31명을 구속 기소하고 81명을 군법회의에 송치했다. 이원갑씨 등 7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녹슨 궤도에 멈춰선 광부들의 인차에 눈이 내린다. 1칸 8명씩 타고 수천미터 막장에 들어가는데 1시간이다. 광산은 갑, 을, 병 3개조로 24시간 채탄작업이 이루어졌다.

 

 

 "검은 가루는 아무리 씻어내도 배꼽에 남아 있었습니다. 광부들의 아내 배꼽에도, 서울옥 아가씨 배꼽에도 탄가루가 묻어나왔죠"
사북항쟁, 3.3투쟁 등 사북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뿌리관을 지키던 퇴역 광부가 옛 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첩첩산중인 사북의 물가는 도시보다 비쌌다. 태백에서 3벌하는 옷 값이 정선 사북에서는 1벌 값이었다. 그 만큼 오기 힘든 곳이었다. 광산이 잘 나갈때는 남편 고생 모르고 돈을 펑펑 쓰는 아내들도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광부 아내들의 막장 체험이다. 지옥같은 막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광부들의 아내는 마음을 고쳐잡았다.
"광부의 아내들도 막장에 들어가면 눈씨울이 붉어졌죠"

 

 

 

 

하얀 눈만 껌뻑이며 검둥이가 된 광부들은 장화를 먼저 씻었다. 동원탄좌 세화장이 2004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1995년 주민 단위로 일어난 3.3투쟁은 폐광지역 산업시설개발에관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1988년 347개에 달하던 전국의 탄광들은 1994년에는 대형탄광 10여개만 남았다. 폐광촌에 실업자가 넘쳐났고, 지역 경제는 무너졌다. 검은 숨결이 끊어지는 상황에 사북 주민들은 힘을 모았다. 대정부 투쟁을 벌여 끝내 폐특법을 만들어냈다. 카지노를 기반으로 만든 강원랜드가 사북 검은 산 위에 들어섰다.
"흘러간 모든 것들이 유물이 된느 거 아닙니까?" 
리조트가 사북에 들어서자 주민들도 검은 도시에서 벗어나려했다. 탄가루 날리는 광산을 없애자는 것이다. 하지만 석탄시설이 사라지면 피땀흘렸던 광부들의 흔적도 없어질 것이라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퇴역 광부들은 석탄유물보존회를 결성했다. 동원탄좌의 산업시설들을 지키기로 뜻을 모았다.

 

 

 

광부복을 나누어주던 작업복실에 서양미인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석탄산업이 활황일 적, 사북에 다녀와야 진정한 기생이 된다는 말도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동원탄좌 석탄역사체험관은 5명의 퇴역광부가 지키고 있다. 홈페이지도 없고, 특별히 홍보활동을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고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 2004년 멈춘 동원탄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5. 12. 사북 동원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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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광부 아리랑

village 2014.12.29 21:47

 

검디검은 선탄장에서 달그락 달그락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고 있다. 눈만 내놓은 광부들이 칼바람을 맞으며 석탄을 걸러내고 있다.

 

 

작년 간다 올해 간다 석삼년이 지나고, 내년 간다 후년 간다 꽃 같은 청춘 탄광에서 늙었다.

기차 떠날 적에 고향 그리워 울고, 막장 삽질하니 땀방울이 핏방울이다.

문어·낙지·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 광부의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는다.

광부아리랑이 흐르는 강원 태백시 철암동 탄광마을 이야기다.

 

 

 

거짓 간판이다. 궁원 다방, 단란주점 젊음의 양지에는 아가씨들이 없다. 광부들이 놀던 상점들은 이제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탈바꿈해 관광객들이 놀고 있다.

 

 

지금의 연탄은 가난을 말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광부증 들고 다니는 사내는 장가가는 것이 쉬울 정도로 인기 많았다. 우리나라 기간산업이 바로 석탄산업이었다.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를 차지하며 제1의 광산 도시로 군림했던 태백시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사업이 추진된 1989년 이전까지는 동네 개들이 돈을 물고 다닐 정도로 영화를 누렸다. 현재 태백의 탄광들은 대부분 갱도 문을 닫았고, 장성광업소가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철암역두 선탄장은 장성 탄광에서 채굴한 석탄에서 폐석을 분리해 상품가치 높은 정탄으로 만들고 있다. 1935년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선탄시설로 2002년 근대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됐으며 지금도 석탄을 만든다.

 

 

 

까치발 건물에서 포대기에 아이를 업은 한 아낙네가 출근하는 남편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마을에 무당집도 여럿 있었다는데, 막장에 들어가는 남편 운을 점치려는 광부 아내의 애타는 마음이 탄광역사촌 동상에서 흘러나오는 듯하다.

 

 

“광부 출근길에 여자가 지나가면 화를 당한다고 욕먹었다죠. 하지만 철암동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따라 석탄일을 나갔어요.”

컴컴한 갱도에서 석탄을 캐내는 건 남자들의 몫이지만, 캐낸 석탄을 불 잘 붙는 연료상품으로 만드는 건 여자들의 손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 광부였던 최순덕씨(58)는 하루 8시간씩 억척스럽게 망치로 석탄을 부숴가며 폐석을 걸러냈다. 일손이 모자라 선탄장은 3교대로 24시간 내내 가동됐다. 석탄가루 마시는 것도 갱도의 남자 광부들과 마찬가지.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진폐증 검사를 받고 있는 최씨는 철암탄광역사촌 문화해설사로 일하며 쇠락한 마을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고 있다.

 

 

 

석탄산업이 호황일 때, 철암동에는 한집 건너 한집이 선술집이 생겼다. 안주는 주로 삼겹살. 광부들은 돼지 기름이 석탄가루를 씻어준다고 믿었다. 철암역사탄광촌 슈퍼마켓 자리에 마련된 옛날 식당 풍경이다.

 

 

“어서 시장이 들어서야죠. 역사촌이 개관했지만 관광객들이 좀 더 오래 머물다 갈 먹거리와 놀거리가 필요해요.”

 

올해 초 개관한 철암탄광역사촌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선탄장 맞은편 까치발 건물이라 불리는 독특한 형태의 상점 건물들이 탄광역사촌이다. 광부들의 호탕한 씀씀이를 받아내기 위해 좁은 상가 공간을 확장하려고 하천변에 까치발 모양으로 기둥을 세웠다. 흉물스럽다며 철거하자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지만 건물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탄광역사촌은 호기심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 페리카나치킨 가게는 문화해설사의 사무실로, 금은방 제일당 옥상은 선탄장 전망대로 활용하며 건물 외관을 모두 보존했다. 식당 3개는 계속 영업을 하고 있지만, 관광객들을 맞이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라 철거된 철암장터가 하루속히 다시 열리기를 마을 사람들은 고대하고 있다.

 

 

 

철암역 건너편 산동네에 올망졸망 광부들의 집들이 모여 있다. 하늘만 빼놓고 온통 까맣던 탄광 마을에 눈이 내렸다.

 

 

하늘 빼고는 온통 까맣던 철암동에 하얀 눈이 내렸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를 녹이려 가정집 보일러의 연탄은 제 몸을 태우고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자신의 몸뚱이를 다 태우며 아랫목을 만들던 저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찰 수 없듯이, 철암동 사람들은 자신들의 동네를 함부로 발길질하지 않았다.

 

 

 

함부로 버리지 못한 연탄재가 손수레에 실려 있다. 선탄장 주변 가정집들은 아직도 연탄으로 추위를 녹이고 있다.

2014. 12. 17. 태백시 철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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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하늘 아래, 구름 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망경대산 싸리재에서 모운동 마을 주위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구름처럼 모여든다'라는 말뜻이 무언지 실감한다.

 

 

구름이 쉬어가는 첩첩산중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생 막장에야 찾아온다는 탄광은 가방끈도 짧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필부들에게 가장 노릇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었다.

두손 두발만 있으면 돈을 캐낸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해발 1000미터가 넘는 망경대산 7부능선 산꼬라데이(산골짜기)를 넘어왔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 옛 탄광촌 모운동마을이다.

 

 

 

동화속 주인공같다는 마을 이장의 농담에 할머니들이 웃고 있다. 탄광촌 50여년의 흥망성쇠를 지켜온 광부의 아내들이다.

 

 

여기 시집온 색시들은 첫날밤에 네 번 놀래요.”

 

2살 때 광부 아버지를 따라 모운동마을에 온 김흥식(58) 이장이 부인 손복용씨를 보며 웃는다.

광산이 돈줄이란 소문에 모운동 광부들에게 시집가는 색시들은 구불구불 굽이치는 험한 산길에 놀라며 눈물 짓는다.

해질 녘 사치재를 넘어온 색시들은 첩첩산중 시집 마을의 반짝이는 야경에 놀란다.

설랬던 첫날밤을 모낸 색시들은 다음날 아침 어젯밤 화려했던 마을이 단지 촘촘히 모인 함석집이란 것에 놀란다.

세 번이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남편을 탄광으로 배웅했던 색시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오며 모든 집들의 모양새가 똑같아 제 집을 찾지 못했단다.

 

 

 

1989년 폐광된 옥동광업소 갱도에서 황금빛 지하수가 흘러나오고 있다. 지하수는 망경대산 절벽에서 폭포를 이루는데, 마을 사람들은 황금폭포라고 부른다.

 

 

우체국, 사진관, 미장원, 양복점, 병원, 당구장, 모 없는 게 없었죠.”

 

서울 부럽지 않을 정도로 시끌벅적했던 모운동 마을은 별표연탄으로 유명했던 옥동광업소 탄광 마을이었다.

옥광회관이라는 극장도 있었는데, 명동에서 개봉한 영화 필름이 두 번째로 도착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간조(월급)날이면 마을 공터에는 영월읍보다 큰 장이 열렸다.

물건을 팔러 오는 상인들로 하루 서너번 산을 오르던 마이크로버스는 콩나물시루가 됐고,

마을 여관들은 빈 방이 없었다.

왕대포집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거나하게 취한 사내들은 요정집을 기웃거렸다는데, 첩첩산골마을에 요정집이 네 개나 됐다고 한다.

 

 

어느 광부의 생명을 지켜주던 안전모였을까? 갱도의 받침목인 동발 붕괴사고는 탄광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사고였다. 옥동광업소 목욕탕 탈의실 창가에 놓인 빛바랜 안전모 위로 햇살이 비치고 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광산마을 모운동은 1989년 탄광이 문을 닫으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바람처럼 빠져나가 현재 30여 가구만 남았다.

 

평생같이 해로하자 했는데, 나만 두고 떠났지 모야.”

 

작년에 진폐증으로 남편을 잃었다는 김옥준(85) 할머니가 평상에서 나물을 손질하며 한숨짓는다.

석탄을 캐던 남편이 폐병을 앓자, 김 할머니는 약초를 캤다.

20여년 이산 저산을 돌며 30여 가지의 약초를 캤고 웬만한 한의사만큼 약초를 잘 다루었다.

신통방통한 할머니의 수제 한약으로 할아버지는 남들보다 오래 사셨단다.

 

 

갱도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을 색시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광부들의 얼굴은 까맸다. 광업소에 목욕탕이 들어서자 광부의 아내들은 목욕물을 데우지 않아도 된다며 좋아했다.  

 

 

요즘은 벽화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 심심하지 않아 좋아.”

 

폐광된 후에도 마을을 떠나지 않았던 김이장은 7년전 부인과 함께 동네 분위기를 바꿀 방법을 생각해냈다.

허름한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것. 손재주 많은 이장 부인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 안에 색깔을 적었다. 마을 노인들도 벽화 색칠작업에 참여시키고자 했던 것.

잿빛 폐광촌은 개미와 배짱이, 백설공주와 난쟁이가 뛰노는 동화마을로 탈바꿈했다.

강원도 김삿갓면 산꼬라데이에 동화마을이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알음알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렇게 모운동은 다시 사람을 모으고 있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광산도시였던 모운동마을이 이제는 작은 산골 촌락이 됐다. 칠흙같은 어둠이 내린 망경대산자락에서 민가의 불빛들이 별처럼 빛나고 있다.

 

2013.10. 1. 강원도 영월 모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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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