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마을'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6.03.22 바람코지 신천리
  2. 2014.06.16 수암골 연탄 마을
  3. 2014.05.01 사랑이 꽃피는 달동네
  4. 2013.02.17 개미마을에는 개미가 없다
  5. 2012.12.23 눈이 오면 낙산에 간다
  6. 2012.10.03 묵호의 꿈






영화 한편이 시골 마을을 아트빌리지로 탈바꿈시켰다. 탈북한 새터민 여성이 팝아티스트로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박진순 감독 영화 '설지'다. 북한에서 선전화를 그렸던 주인공 설지는 탈북한 후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벽화를 그렸다. 누리꾼에게 이목을 끈 설지는 '홍대 벽화녀'라는 별명이 붙었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함께 제주에 내려간다.







설지의 제주 배경이 된 곳이 신천리다. 반어 반농의 시골 마을 신천리는 서귀포시 성산읍의 조용한 마을이었다. 영화의 소재인 벽화를 그리기 위해 팝아티스트 등 예술인들도 마을에 상주하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현재 51점의 벽화가 신천리 곳곳에 숨어있다.







'마을 벽화 주제가 뭔지 아세요?'


'몰라요.'


'무제'







신천리 해안가에서 카페를 하는 주인 말처럼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제각각이다. 해녀, 물고기, 꽃, 미니언즈를 비롯한 만화의 캐릭터들 종잡을 수 없다. 눈속임을 하는 트릭아트 그림도 있다. 어느 누리꾼의 지적처럼 한가지 주제였다면 시골마을을 더 부각시킬수 있을텐데...







'바람코지 신천아트빌리지'라고 소개한 마을 입간판처럼 '바람코지'를 표현했다면 마을 탐방객들이 신천리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바람코지'는 바람이 많이 부는 곶을 말한다.






2016. 3. 13. 성산읍 신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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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이웃집 앞에 놓인 연탄재에 그림을 그리고 말풍선을 달았다. “간밤엔 따뜻하셨죠?” 아침에 눈을 뜬 이웃집 아줌마는 연탄재를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머리 위에 상추를 키우는 연탄들이 달을 바라보고 있다.

 

 

 

한여름을 목전에 둔 6월에도 마을 고샅길 귀퉁이에 연탄재가 쌓인 달동네가 있다. 누런 연탄재에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담겨 있다. 연탄을 실은 리어카, 오줌 싸는 사내아이, 샤워하는 여인 등 재밌는 벽화가 그려진 충북 청주시 달동네 수암골이다.

수암골은 한국전쟁 당시 1·4후퇴로 피란온 가난한 사람들의 터전이었다. 육군병원에서 빌린 천막에서 생활하던 피란민들이 우암산 기슭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40년 가까이 수암골에서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박만영 할아버지(80)가 옛날 수암골의 모습을 들려준다.

“판잣집은 무슨. 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찍어내고 볏짚으로 하늘을 가렸지.”

황량한 불모지에 흙벽돌로 희망을 쌓아올린 피란민들은 이제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자식들 대부분을 도시로 출가시킨 노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목욕하는 여인을 무등을 탄 연탄들이 훔쳐보고 있다. 평상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는 어디를 보고 계실까?

 

 

 

청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제법 큰 골목길 담장에 지역 예술가들이 타일을 붙이고 있었다. 마을 벽화체험교실에 참여한 방문객들이 그린 조그만 타일 그림이다. 골목길 벽화작업은 2008년부터 시작됐는데, 골목길 정취가 드라마틱해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수암골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동네를 구경하던 여자 아이가 오줌 싸는 사내아이를 보고 등을 돌렸다.

 

 

 

 

“커다란 가게들만 잔뜩 생겨 동네가 사라질까봐 걱정돼.”

 

마을 작업장에서 짚으로 멍석을 만들던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쉰다. 방송을 통해 수암골이 유명세를 타자 드라마 제목을 가게 이름으로 내건 커다란 음식점들이 마을 주변에 들어섰다. 골목길을 돌며 찰칵찰칵 사진을 찍던 탐방객들은 동네 입구 구멍가게를 지나쳐 전망 좋은 카페에 들어가 지갑을 연다. 수암번영회를 만들어 빼앗길 뻔한 골목길은 지켜냈지만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상업시설은 속수무책이다.

 

“소통 없이 돈만 벌고 있는 게 문제죠.”

수암골 마을공동체 마실 이광진 사무국장(56)은 수암골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로 바라봐주기를 바란다. 당연한 얘기건만, 당연하지 않은 게 문제다. 수암골이라는 마을 이름까지 상표로 등록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족 탐방객이 수암골 벽화지도를 보며 동네를 구경하고 있다. 간밤 부부의 악다구니 싸움 사연과 쌔근쌔근 잠자는 아기의 숨소리, 새벽녘 귀가하는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골목길이다.

 

 

 

고샅길 담벼락에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가 적혀 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던

저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로 찰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 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 할 수있는가?

 

 

 

 

탐방객이 그린 타일을 예술가들이 동네 담벼락에 붙이고 있다.

 

 

수암골은 외지인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선사하며 연탄재가 되고 있다.

수암골을 함부로 차지 마라.

하얀 껍데기만 남은 수암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40여년 가까이 마을 사람들의 주전부리를 해결해준 삼충상회 앞에서 동네 주민들이 인사하고 있다.

 

2014. 6. 8 - 10. 청주 수암골

 

P.S. 지금 수암골에서는 비주류 독립작가 RM의 <거리에 남긴 연탄들>이 열리고 있다. 거리 전시회다.

(간밤에 따뜻하셨죠?http://photonote.khan.kr/78

(RM http://streetart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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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슬레이트 지붕이라도 좋다. 지금 이대로 살 수 있다면. 떡 하나, 작은 음료수 한 병도 나누던 동네 인심이 재개발을 버텨냈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그냥 달동네라 불리던 대전 대동 산1번지에 봄이 왔다.

 

대동 달동네는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판자촌이었다. 배나무가 많아 배골산이라 불리던 계족산 남쪽 줄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보금자리를 틀었다.

 

 

 

 

 

산비탈을 깎아 작은 평지를 만들고 천막과 판자를 둘러 비바람을 막았다.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지자 비가 새던 판자 지붕을 아스팔트 기름으로 바르거나 슬레이트로 바꿨다. 아스팔트 찌꺼기로 코팅한 루핑 지붕은 없어졌지만 대동 달동네는 아직도 슬레이트 지붕이 비와 눈을 막아주고 있다.

 

“아파트가 들어서면 뭐해. 관리비도 못 낼 텐데.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어.”

 

40년 전, 전셋돈 4000원을 들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서효열 할머니(86)가 지난 일을 회상했다. 넉넉하지 않아도 서로 나누며 사이좋게 지내던 달동네는 10여년 전부터 마을을 휩쓴 재개발 광풍으로 뒤숭숭해졌다. 집값이 오르자 주인들은 집을 팔았고, 떠난 이웃집은 빈집으로 남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은 금세 흉물스럽게 변해버렸고 마을 공터에는 쓰레기가 넘쳐났다.

 

 

 

 

 

 

을씨년스럽던 마을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07년부터. 마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도와주는 대동종합사회복지관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폐가들을 정리하고 방치된 쓰레기도 치워버렸다. 지역 미술단체인 오늘공공미술연구소 사람들도 찾아와 허름한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었고 바람개비, 낙하산 등 조형물들을 마을 곳곳에 설치했다.


동네가 화사해지자 바뀐 분위기를 체감한 동네 사람들은 좋은 동네를 만들어보자며 마을가꾸기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도심재생사업인 무지개프로젝트에 공모했다. 때마침 원주민을 내쫓는 기존 뉴타운 재개발 방식에 회의를 품던 대전시는 대동 달동네를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주민들은 기쁜 마음으로 마을을 살기 좋게 꾸며 나갔다.

 

 

 

 

 

 

마을 산꼭대기에 풍차를 세웠다. 하늘공원이라 이름 짓고 전망대를 만들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는 하늘공원 연애바위가 입소문을 타자 팔짱을 낀 연인들도 줄을 이었다.

 

“부럽지 뭐. 우리 젊었을 적엔 상상도 못했는데.”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마을에 들어왔다는 김홍분 할머니(76)가 동네 사랑방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침이면 마을 공동화장실엔 긴 줄이 생겼고, 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아낙들은 뒷산 너머로 물을 길러갔다. 산을 자주 넘다보니 동네 아낙들은 전망 좋고 쉬기 좋은 바위를 발견했다. 작은 판잣집에 아들, 손자며느리 다 살다보니 젊은 부부나 연인들이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뒷산에 올랐다.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정을 나누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랑이 오갔는지 연애바위라고 불렀다.

 

 

 

 

 

 

사랑방을 나와 가파른 계단을 올라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도시락까지 챙겨온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왁자지껄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봄볕이 좋아 복지관 요가수업을 땡땡이치고 요가 선생님과 함께 봄소풍 왔단다. 봄볕이 좋아 배골산 배나무밭에 꽃이 만발이다.

 

 

 

2014.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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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처음엔 '인디언촌' 불렀다.

한국전쟁 이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인왕산 아래 천막을 세웠다.

옛 사진을 볼 수 없지만, 천막촌의 모습이 인디언 마을과 비슷했단다.

인디언처럼 소리지르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는데, 이유는 알 수 없다.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서대문구 홍제3동 주택가 마을이다.

 

 

 

인디언촌.

천막주거지라는 인상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은 지난 1983년 마을 이름을 개명했다.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마을'로.

개미마을에는 200여가구 400여명의 주민들이 개미처럼 살고 있다.

 

 

 

 

 

이름을 바꾼 개미마을은 지난 2009년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관할 구청과 한 건설사가 40여년 버텨온 주택에 벽화를 그려넣었다.

'빛 그린 어울림 마을'이라는 주제로 이틀동안 그렸다고한다.

 

 

 

 

개미마을 벽화를 둘러봤다.

옛 인디언촌의 천막도, 열심히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벽화에서 개미마을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었다.

인디언 처럼 소리지르는 사람, 혹은 개미라도 그려 넣었으면 좋았겠구만....

몇 달 전에 가본 강원도 묵호 등대마을이 떠올랐다.

벽화의 수준을 떠나서 옛 마을 이야기를 벽화로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하지만 어쨋건 개미마을 벽화는 화사했다.

 

 

 

2013.2.14. 홍제동 개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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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낙산 성곽길을 한 시민이 걷고 있다. 낙산 정상에서는 북악산과 북한산 능선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에 보이는 제일 높은 봉우리는 북한산 보현봉이다.

 

눈이 오면 낙산에 간다. 정확히 말하면 눈이 온 다음 날 낙산에 간다. 눈이 오는 당일에는 시계가 혼탁해 먼 풍경을 담을 수 없다.

 

눈이 오는 당일에는 많은 눈이 쏟아지는 장면과 교통체증으로 포인트를 맞춘다. 교통체증이 없는 정도의 반가운 눈이라면 눈 내리는 낭만적인 서울의 모습을 담고, 많은 눈으로 교통에 문제가 생기면 오르막길에서 고생하는 차량 운전자들을 찾아다닌다.

 

눈이 온 다음 날은 대부분 시계가 좋은 맑은 날씨가 이어진다. 반가운 눈 혹은 폭설로 인한 교통체증 다음 날 사진뉴스는 대부분 골목 빙판 출근길이나 아름다운 설경에 포인트를 맞춘다. 두 가지 사진 뉴스를 동시에 취재할 수 있는 종로구 이화마을을 찾았다. 달팽이길이라 불리는 비탈길을 오르면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화동 주택가다. 주택가 위에는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낙산공원이 있다.

 

 

낙산공원 아래 이화벽화마을에서 일본 관광객이 꽃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오고 있다.

 

 

이화동 벽화마을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단골 출사지다. 재밌는 벽화들이 많은데, 한 방송프로그램에 '천사의 날개'라 불리는 벽화 앞에서 어느 유명 연애인이 촬영을 했나보다. 너무 많은 탐방객 때문에 사생활에 침해를 받은 이화동 사람들은 급기야 천사의 날개를 지워버렸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외지인들이 몰려왔던 것이다. 다행히 천사의 날개 만큼 유명한 꽃계단은 남아있다. 외국인 관광객 안내책자에도 나왔는지 일본인 관광객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서울 도심의 구 주택가는 뉴타운 등으로 재개발되기 쉽상이다. 이화마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전 까지만해도 이 일대 주택가는 재개발을 추진중이었다. 하지만 문화재인 서울성곽때문에 주택 고도제한이라는 문제가 불거졌다. 고도제한에 묶인 재개발계획은 경제성에 발목이 잡혔다. 또 새로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개발출구전략을 추진했고, 이화마을은 현재 재개발을 포기한 상태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소요된 비용이 이화마을의 또다른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빙판길에 자동차 주인이 자가운전 출근을 포기했다. 눈 덮힌 자동차는 누군가의 사랑고백 편지지가 됐다.

 

이화마을 위 낙산공원 정상은 남산, 북악산, 인왕산, 북한산을 감상할 수 있다. 산 모양이 낙타의 등을 닮았다고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 불리게 됐다. 조선시대 성곽으로 이어진 낙산은 남쪽으로 동대문인 흥인지문과 이어진다. 낙산의 유방(?)으로 불렸던 이화동약수터와 신대약수터도 있었다고한다.  

 

2012.12. 낙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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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

묵호의 꿈

village 2012.10.03 18:42

 

 

칠흑같이 검은 밤바다는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했다. 사내들이 만선의 깃발을 꽂고 항구에 돌아오면 아낙들은 밤새 생선의 배를 갈랐다. 아비로부터 용돈을 받은 아이들은 오징어 다리를 씹으며 구멍가게로 향했고, 사내들은 밤새 술을 마셨다. 동네 개가 돈을 물고 다닌다는 소문에 타지인도 뱃일을 하러 이곳 산동네에 판잣집을 틀었다. 화려했던 시절,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의 옛 모습이다.

 

 

“고기가 있어야지. 버티다 버티다 2년 전에 고깃배 세 척 다 팔아버렸지.”

40여년 묵호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해온 이선문씨는 옛 묵호동의 모습을 회상했다. 동네 아낙들은 사내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지고 언덕 비탈길을 올랐다. 장화를 신고 다니는 논길과 비슷한 진흙탕 고샅길이기에 논골길이라 불렀다. 아낙들은 생선을 앞마당에 널며 남자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비 오는 날이면 새끼줄이 썩을까봐 물고기를 널지 않았다. 좀 많다 싶게 잡은 날은 한 두 마리씩 이웃집 앞에 놓고 가기도 했다.

 

 

묵호 앞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지자 사람들도 떠났다. 명태는 씨가 말랐고, 오징어도 기름값 생각하면 배를 띄우기 머뭇거릴 정도로 어획량이 감소했다. 묵호 빌딩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했던 산동네는 빈집이 늘어 적막감이 돌았다. 묵호동 산동네에는 이제 옛 시절만 추억하는 노인들만 남았다.

 

 

“쓸쓸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좋아.”

세 달 전에 남편을 떠나보냈다는 한 할머니가 논골길 담장 벽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2010년 을씨년스러웠던 묵호동 산동네는 재밌는 그림이 이어지는 벽화마을로 옷을 갈아입었다. 단지 예쁜 그림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삶을 그려 넣었다. 명태덕장, 오징어덕장, 생선이 담긴 ‘고무다라’를 머리에 이고 오르는 아낙들의 모습, 옛 논골상회에 걸렸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 포스터…. 마을 노인들은 벽화를 보며 옛 시절을 추억하고, 외지인들은 묵호동의 옛 모습을 상상한다.

 

동이 트기 전 묵호동 산동네가 내려다보이는 덕장 언덕에 올랐다. 유월의 꽃밭처럼 화려하다던 묵호 앞바다는 쓸쓸했다. 1963년 첫 불을 밝혔던 묵호 등대만이 검은 바다 묵호를 비추고 있었다.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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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