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빛 금사강 물결이 회오리치고 있다.

 

보이차의 원산지 윈난성 운남역관에서 출발한 차마고도는 헙준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호도협곡을 통과한다. 이 험난한 낭떠러지 길을 지나야 샹그릴라를 거쳐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갈 수 있다. 아찔한 협곡길이지만 티베트로 가야만 하는 마방들은 생명을 걸고 협곡을 건넜다.

 

 

굽이치는 황토빛 금사강과 함께 날카로운 협곡의 모습은 원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호랑이가 건너다녔다고 호도협이라 불린 협곡은 호랑이가 건널만큼 강폭이 좁지 않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옥룡설산과 합바설산 사이를 통과하는 협곡에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 장강(양쯔강)이 흐른다. 장강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긴 강이기도하다. 호도협곡을 지나는 장강을 금사강이라 부르는데, 황토빛 강물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16km에 달하는 협곡을 굽이쳐 흐른다. 급류가 심한 협곡에서는 옆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굉음이 귀를 멍하게 만든다. 상류와 하류의 낙차가 170m인만큼 급류의 모습은 무서울 정도로 굽이친다.

 

 

실제의 차마고도 옛길 아래 새로 만든 길에는 인력거가 운행돼 노약자도 협곡과 장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차마고도는 대략 8개의 길이 있다. 윈난성에서 시작되는 차마고도 호도협 구간은 세계 3대 트레킹 코스로 불릴만큼 험준하면서도 아름다운 길이다. 마방의 후예들은 관광객들에게 말을 제공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고산증이 없는 사람들은 직접 걸어서 호도협 구간을 통과한다. 협곡의 계단식 논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쉼터인 객잔도 나온다. 중도객잔은 세계 제일의 풍경을 자랑하는 화장실도 있다. 스물여덟 개의 협곡이 이어져 '28밴드'라 불리는 호도협 마지막 구비는 2,670m의 가파른 길이다. 마방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걷던 길을 걸으면 당시 '차'와 '말'의 가치에 대한 상념에 젖어든다.

 

 

 

2009년 8월 차마고도 호도협

 

Posted by 김창길

 

옥룡설산 야외무대에서 장이모 감독이 연출한 '인상여강' 공연. 현지 주민들이 옛 마방들을 연기하고 있다.


“신농(神農)이 수백가지 풀을 먹다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었다. 그 때 푸른 잎사귀 하나가 신농의 입으로 떨어졌다. 신농이 이 잎을 먹자 정신이 맑아졌다.”

B.C 2500년경에 존재했다는 중국 농업의 신 신농(神農). 중국 사람들은 신농의 이야기를 꺼내들며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 주장한다. 차를 의미하는 말은 서양에서는 'tea', 동양에서는 말그대로 'cha'라고 부른다. 'tea'와 'cha'는 모두 중국 방언이다. 굳이 증명할 수 없는 신농의 존재를 논하지 않더라도 차의 기원은 중국이라고 모두가 인정한다. 

 

사계진 동쪽에 삼중 누각으로 세워진 고희대.

 

유목민 티베트인들의 주식은 야크의 젖과 고기다. 먹을거리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채소류 섭취도 어렵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는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티베트인들에게 차를 전해준 것은 당나라 문성공주라는 견해가 있다. 7세기 경 '손챈감포'는 칭짱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했다. 티베트 라싸를 중심으로 통일 왕국을 탄생시킨 손챈캄포는 당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위해 당 태종의 양녀 문성공주와 정략결혼을 한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문성공주는 불상과 함께 가져온 것이 바로 차였다. 티베트인들은 차에 빠져들었다.

 

 

사계진 상점에서 전통의상을 입고 물건을 구입하는 현지인들.

 

윈난성 지엔촨현의 남부에 자리한 사계진은 북으로는 티베트, 남쪽으로는 중원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요충지였다. 마방들이 이곳에 머물자 시장통이 번성했다. 남과 북의 물품들이 모이자 사계진은 경제와 문화가 번성하게 됐다.

 

사계진은 차마고도 옛 장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관광지 분위기기 너무 짙은 리장과 달리 사계진 시장통에서는 현재도 여러 소수민족들이 물건을 사고 팔고 있다. 백족이 살던 민가의 전형적인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차마고도의 오성급 마방'이라 불리는 어우양(歐陽)씨 집안의 가옥도 잘 보존돼 있다.  

 

 

사계진 전통 가옥에서 이발을 마친 이발사가 붓으로 머리카락을 떨어내고 있다.

 

사계진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를 지나는 아낙네가 막대 사탕을 들고 있다. 

 

 

장을 본 아낙네들이 남에서 북으로 가는 상인들이 드나들던 동채문(東寨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불교사원 흥교사 앞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아이. 흥교사는 명나라 영락제(1415년) 때 만들어졌고, 20여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2009년 8월 차마고도에서

Posted by 김창길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로 적힌 소원 나무판. 바람이 불면 방울 소리와 함께 소원이 하늘로 올라간다나.

 

차마고도 교역로는 대략 여덟 가지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옛 차마고도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길은 두 개 정도다.

보이차의 원산지 윈난성 남부에서 시작된 길로 따리, 리장, 샹그릴라를 지나 티베트에 이르는 길과

쓰촨성 야안에서 시작돼 티베트 라싸로 이어지는 길.

길은 라싸에서 끝나지 않고 히말라야를 넘어 실크로드와 합류한다. 

 

윈난성 운남역관을 출발한 차마고도는 아름다운 전통 기와집이 모여있는 '리장(여강麗江)'으로 이어진다.

차, 소금 등을 교역하던 마방들의 규모는 다양했다.

일가족 단위에서 말 200필 이상을 끌고다니는 대규모 마방 등 규모에 따라 이동 거리도 달랐다.

마방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교통과 상업 중심지가 됐다.

윈남성 리장은 마방들로 인해 생겨난 대표적 상업 중심지였다. 

식당, 여관, 상점 등이 번성했는고, 대형 상점은 스스로 대규모 마방을 꾸려 물건을 교역하기도 했다.  

 

 

나시족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 지금은 차마고도의 흔적 은 아련하고 이색적인 풍경의 관광지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로같은 골목길과 수로가 얽힌 리장의 전통 마을은 밤이면 저마다 홍등을 밝힌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곳 리장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를 얻었다.

치히로가 길을 잃고 도착한 마을은 밤이 돼자 홍등이 켜지고 온갖 정령들이 출몰하는 유령마을로 바뀐다.

리장의 밤거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느끼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시골 촌락이었던 리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1996년에 윈남성 일대에 초대형 지진이 발생해 3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죽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다행이 지진은 리장을 피해나갔다.

윈난성 지진 피해를 복구하던 중국 중앙정부와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이색적인 리장의 매력을 발견했다.

돈 많은 한족들은 나시족의 허름한 집들을 헐값에 매수해 관광지로 탈바꿈시켰다.

발빠른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리장은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못을 사용하지 않은 리장의 목조건물들은 지금도 상점, 찻집, 주점, 객점 등으로 사용된다. 

 

전통 기와가 고스란히 간직된 리장 고성. 1997년 리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리장은 소수민족 나시(納西)족의 자치구역이다.

본래 티베트계 유목민이던 나시족은 강대 민족의 등살에 리장에 정착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던 소수민족이었지만 나시족은 고집스레 자신들의 문화와 풍속을 지켰다.

나시족 고유의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나시고악, 샤머니즘 원시종교인 동파교, 상형문자인 동파문자....

특히, 동파문자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최후의 순수 상형문자다.

동파문자로 쓰인 '고대 나시 동바문화 필사본(Ancient Naxi Dongba Literature Manuscripts)'은

200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종이 공방에서 닥나무 종이 위해 동파문자를 적고 있는 모습.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 리장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재 리장고성은 대부분 한족 소유로 많은 나시족들이 주변 마을로 이전했다.

동파문자 역시 마찬가지.

나시족 고유의 정신시계를 표현했던 동파문자는 이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종이공방에 고용된 나시족들은 관광객들에게 동파문자를 써주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동파교의 사제를 동파라고 부르는데,

동파 대다수가 종이공방에 고용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2009년 8월 차마고도에서

 

Posted by 김창길

 

차마고도 끝자락 샹그릴라. 티베트어로 '내 마음 속의 해와 달'라는 뜻의 샹그릴라는 중국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티베트자치주에 속한다.

 

크로드보다 200년이나 앞서 1세기경 만들어진 차마고도(茶馬古道).

중국 서남부의 특산물인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형성된 인류 최고(最古)의 무역교역로다.

길이 5,000㎞, 평균고도 4,000m에 달하는 이 고대 무역로는 이제 흔적만 남았다. 

 

 

운남역관 입구

 

차마고도는 당·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됐다.

1000년 전 티베트 불교가 티베트의 주도인 라싸[拉薩]에서 윈난·쓰촨 지역으로 전래되기도 했다. 

설산(雪山)들과 아찔한 협곡으로 이어지는 차마고도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진사강[金沙江], 란창강[瀾滄江], 누강[怒江]을 연결하는 수천㎞의 아찔한 협곡은 

삼강병류 협곡(Three Parallel Rivers of Yunnan Protected Areas)이라 불린다.

200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차마고도를 지나던 마방들이 쓰던 안장들. 둥글게 압착한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떫은 맛이 사라지고 향기가 오래 지속된다.

 

차마고도를 따라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고 불렀다. 

수십 마리의 말과 말잡이인 간마런으로 이루어진 마방들이 교역하던 품목들은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 버섯류 등 다양했지만 그중 제일은 보이차다.

 

보이차는 중국 서남부 소수민족이 마셨던 발효 흑차다.

윈난성 등 여러 지방에서 생산된 차는 푸얼현(普洱縣) 차시장에서 모아 출하하기 때문에,

푸얼차[普洱茶]라 불리기도 한다.

푸얼차는 윈난성에서 생산되는 차잎을 햇볕에 건조시킨 모차(母茶)다.

윈난성 차의 출하량이 부족해 쓰촨성, 베트남,  타이 등지의 차엽으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차를 변경 보이차라고도 한다.

티베트인들은 마방들이 싫고 온 보이차의 맛에 흠뻑 빠져들었다.

 

 

지게를 짊어지고 돌길을 걷는 아낙네.

 

윈난성 수도 쿤밍 서쪽 260㎞ 지점에 위치한 운남역관은 차마고도의 주요한 교역로 3곳이 뻗어나가는 첫번째 관문이다.

운남역관은 역사(휴게실), 마구간, 객점(숙소) 등 차마고도의 유적이 가장 잘 보존돼 있다.

명대에 가장 번성했던 이 지역은 20세기초 교역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현재는 농업이 주요산업이다.

 

 

운남역관 입구 들판에서 어린이들이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 역관에는 '옛날의 영광은 사라지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는 액자가 걸려있다.
현재의 운남역관은 농민들이 살고 있는 조용한 촌락.

지게를 짊어진 아낙네들과 리어커를 끄는 사내들이 옛 차마고도 돌길을 지나고 있다.

 

 

 

 2009년 8월. 차마고도 운남역관

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