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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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마을

김창길 2012. 10. 3. 21:06

 

 

 

왠지 기찻길을 보면 걷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양팔을 벌리고 선로 위를 걷고 싶다. 기찻길 산책의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나보다. 관광지도 아니건만 전북 군산시 경암동의 철길마을은 기찻길을 걸으려는 탐방객들로 붐빈다.

 

 

 

경암동은 해방 이후 주인 없는 매립지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오막살이를 시작했다. 철길이 놓인 것은 1944년 경암동 인근에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가 들어서면서부터. 군산역과 공장을 연결하는 화물열차 선로가 경암동 오막살이 마을을 통과했다. 길이 2.5㎞의 짧은 기찻길은 페이퍼코리아선이라 불렸다.

 

 

열차가 멈춘 것은 2008년. 열차가 사라지면서 마을 사람들도 오막살이를 떠나기 시작했다. 떠나간 주민들의 집은 남은 주민들이 창고로 활용했다. 철길은 녹슬고 자갈밭에서는 잡풀이 올라왔다. 열차가 사라진 선로 위에 주민들은 화분을 놓고 평상도 깔았다. 봄이면 나물을, 여름이면 고추를 말리고 선로 위로 빨랫줄도 내걸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소박한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탐방객이 늘어났다. 군산시는 예산을 투입해 공중화장실을 만들고 마을 입구에 탐방로 안내문을 걸었다. 하지만 철길마을 주민들은 달갑지 않다. 철길마을은 주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지 호기심으로 탐방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쑥 불쑥 나타나 셔터를 눌러대는 외지인들이 불편하기만 하다.

 

해가 지고 마을에 가로등이 밝혀졌다. 그늘에서 낮잠을 자던 고양이는 선로 위를 어슬렁거린다. 동네 아주머니는 빨래를 걷고 일터에 나갔던 어른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온다. 불이 켜진 창문 밖으로 가족들의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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