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인 2016년에 복원된 덴마크 오덴세 래드바이 바이킹 배.

 

 

 

13세기에 몽골족이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했다면, 그보다 앞선 시기에 바이킹은 유럽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접수했다. 몽골족이 뛰어난 기마술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바이킹의 기동력은 그들만의 특출한 항해술. 앞뒤 배모양이 비슷해 전진 후진이 자유롭고, 날렵한 선체는 파도를 빠르게 갈랐다.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북유럽은 물론, 서유럽, 북아메리카, 중앙아시아까지 바이킹이 활약하던 시기를 바이킹 시대(Viking Ager)라 부른다.

 

1935년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Odense) 동쪽에서 바이킹 무덤이 발견됐다. 몇 척의 바이킹 배는 발견됐지만, 바이킹 무덤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무덤과 그 주변은 바이킹 박물관, 래드바이 바이킹 뮤지엄(Ladby Viking Museum)이 됐다.

 

 

바이킹 배를 복원하기 위해 사용하던 나무와 공구들이 케르테민데 피오르드 해안가에 놓여져 있다. 

 

 

일단, 널리 퍼져 있는 바이킹에 대한 오해부터 풀고 박물관을 살펴보자.

 

첫 번, 바이킹은 여러 삽화나 만화에 나온 것처럼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다녔다?

바다의 약탈자, 바이킹 투구에는 뿔이 없었다. 19세기 고대 그리스 로마 연대기 작가들이 날조한 바이킹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다만 바이킹 시대 이전에는 노르만족과 게르만족 성직자들이 특별한 의식을 치를 때 뿔 달린 투구를 썼다.

 

두 번째, 바이킹은 노략질일 일삼는 야만인이다?

맞다. 그들은 잔혹하고 악랄한 해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야만인은 아니었다. 바이킹은 지금 표현을 빌리지만 꽃미남들이다. 출토된 바이킹 유물에서는 면도기, , 핀셋 등이 발견됐다. 당시 다른 유럽 남자들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위생상태도 좋지 못했다. 면도는 돈 많은 귀족층이나 즐길 수 있는 호사. 깔끔한 바이킹 사내들은 금발을 최고로 여겼다. 갈색 머리를 가진 바이킹 남자들은 탈색제를 사용해 머리 색깔도 바꿨다. 금발의 바이킹 사내는 영국 여자들이 홀딱 반할 정도로 멋졌다고 전해진다.

 

 

 

 

박물관에 전시된 바이킹 사내들이 입고 다녔던 비단 망토. 마네킹 옆에 잘 생긴 바이킹 초상화도 걸렸다.

 

 

 

세 번째, 바이킹은 해적질만 했다?

아니다. 바이킹은 배를 타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 가축들을 기르고 농사를 지었다. 여가 시간에는 스키도 즐길 줄 알았다. , 배를 타는 목적이 약탈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바이킹은 유능한 상인이기도 했다. 그들은 가축의 가죽과, 그들의 수공품들, 그리고 노예까지 거래했다.

바이킹 공동체에서 수공업자들의 대우는 좋았다. 그들의 솜씨가 훌륭했기 때문. 바이킹의 수공예품은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철을 가공하는 실력도 뛰어나 품질 좋은 명검을 생산하기도 했다. 바이킹이 전투를 잘 했던 이유는 이 단단한 철검도 한몫 한다. 

 

네 번째, 바이킹 사회는 마초적이다?

바이킹 사회는 당시 다른 유럽보다 여성의 지위가 월등히 높았다. 우선, 바이킹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재산을 소유할 수 있었다. 또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이혼을 하면 결혼 지참금까지 다시 가져갔다.

 

 

 

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와 장신구로 치장한 바이킹 여성들 초상화

 

 

 

박물관이라고 부르기는 다소 작은 건물에는 바이킹 유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은 벨트, 은 그릇, , 망치, 도끼, 금 장신구들.

특이한 건, 고증을 통해 그린 바이킹의 초상화와 바이킹 패션. 물론, 바이킹 내 상류층을 형상화했겠지만 해적이라고 상상하기에는 너무 고귀한 이미지가 흘렀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바이킹의 비단 망토를 보니 정말 영국 여자들이 홀딱 반할만한 패션이었다.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바이킹 이야기를 천에 수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밀밭을 지나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바이킹 무덤이 나온다. 우리나라 왕릉만한 크기의 어두운 무덤 속에는 래드바이(Laday) 족장의 사체가 있던 배가 전시돼 있다. 배에는 11마리의 말과 3-4마리의 개 유골도 실려 있다. 다만 족장의 사체는 없는데, 고고학자들은 바이킹 시대 때 래드바이 족장과 적대적인 바이킹들이 시신을 유기 훼손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바이킹 장례문화는 족장이 그가 쓰 물건들과, 동물, 노예와 함께 족장의 시신을 배에 태워 무덤에 묻는다. 족장은 죽어서도 사후 세계를 향해 항해한다.

 

 

 

바이킹 무덤 안에 전시된 바이킹 배

 

 

 

바이킹은 단일 종족이 아니다. 배를 타고 노략질과 침략, 무역을 하던 노르만족(지금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해적들을 바이킹이라 통칭했다. 바이킹은 아이슬란드를 거쳐 북아메리카에까지 진출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500년 전, 바이킹은 이미 아메리카에 발을 내딛었다. 비록 정착에는 실패했지만.

유럽과 러시아에는 바이킹 침입의 역사가 언어에 나타나 있다. 프랑스 서북부 노르망디(Normandie)는 노르만족 바이킹이 세운 공국이라 노르망디 공국이라 불렀다. 또 러시아(Russia)'Rus'는 스웨덴 고대어로 바이킹(Vikings)이다.

 

 

 

바이킹 무덤

 

 

 

무덤 밖에는 925년에 묻혀 형체만 남은 바이킹 배를 같은 크기로 복원한 래드바이 배가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바이킹 배 복원 작업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올해 5월에 완성됐다. 옛 방식대로 배를 만들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길이 21.5미터의 바이킹 배는 32명이 탑승할 수 있다. 물가에는 배 복원 작업에 사용됐던 장비들을 그대로 전시해 놨다.

 

용맹을 떨쳤던 바이킹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유럽 세계에 녹아든다. 유럽 사람들의 눈에 비친 바이킹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도교 종족이었다. 우리나라 조상들이 주변 민족들을 오랑캐로 생각했듯이, 유럽 사람들도 노르만족을 야만인으로 깎아내렸다. 그런 마음이 입에는 개 거품을 물며 뿔 달린 투구를 쓰고 도적질하는 해적 이미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바이킹 남자들은 영국 여자들이 홀딱 반할 정도로 멋쟁이였다.

 

 

 

 

2016. 8. 덴마크 오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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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창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