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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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마을 ‘백발의 맥가이버’

김창길 2012. 10. 29. 13:17

 

 

 

전북 진안군 백운면 원촌마을 농기계수리센터 이야기다. 흰구름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고원지대에 자리 잡은 원촌마을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진다. 백운농기계수리센터 양남용씨(57)가 1t트럭을 몰고 출동하는 소리다. 농번기에 농기계가 고장 나는 것은 농촌에서는 비상상황이다.

“농약 뿌리는데 기계가 갑자기 멈췄다는 신고가 들어왔어.”

 

 

30분 만에 사고를 처리한 양씨는 경운기 개조작업을 시작했다. 힘 좋은 경운기이지만 비탈진 흙길에서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고장 난 트럭에서 떼어낸 후륜 구동축을 자르고, 갈고, 땜질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4륜구동 경운기가 탄생했다.

 

 

 “마을에서 고장 난 모든 걸 고치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씨는 원촌마을의 맥가이버다. 전기가 끊기거나 보일러가 고장 나도 다들 양씨를 찾는다. 고맙다며 치마 속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1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는 동네 어른들을 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핑 돈다. ‘형광등 하나 나가도’ 자신을 찾는 그들의 모습에 ‘난 이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생긴다.

 

 

양씨의 농기계 수리 경력은 어느덧 23년. 백운면 원촌마을의 흰구름처럼 그의 머리도 어느새 백발이 됐다. 할아버지로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마을에서 그는 아직 청년이다.

수돗물이 안 나온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연장통을 짐칸에 싣고 사이렌을 켠다. 다시 출동이다.

 

2012년 6월 전북 진안 백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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