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책] 가려진 세계의 징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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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사지에 대한 오해

김창길 2013. 5. 28. 19:13

사진 만큼 대중적인 이미지가 또 어딨을까? 입과 귀의 기능을 무한 확장시킨 전화기는 이제 시각적인 기능까지 겸비했다. 요즘의 스마트한 휴대폰은 DSLR만큼은 아니지만 자동카메라에 견줄만큼 훌륭한 사진을 생산할 수 있다. 국내 유명 사진작가도 모 휴대폰 회사의 지원 아래 스마트폰 사진전시회를 진행했을 정도다.

 

스마트폰 사진 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사진을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DSLR을 들고 다닌다.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랜즈를 호환해가며 다양한 효과를 주며 사진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 사진 취미에 빠진 사람들은 조금씩 더 많은 돈을 투자하며 좀더 밝은 랜즈, 좀더 넓은 화각, 혹은 망원 기능을 갖춘 랜즈를 손에 넣고 랜즈의 표현력에 감탄한다. 사진은 장비에 따라 작품의 질이 높아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대게 좋은 장비로 찍은 사진들은 좋은 사진 장비로 찍었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을뿐, 사진 자체의 감흥은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밝은 랜즈를 사용해 주변 배경을 흐릿하게 날린 사진을 좋은 사진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사람들은 대게 이 장비 얼마에요?라고 물으며 사진 보다는 장비에 대한 정보를 케내려 한다.

 

 

 

서울의 대표적 출사지 남산 N타워. 서울의 날씨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사진기자들이 자주 방문한다.

 

 

사진 취미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사진 장비와 함께 가장 주목 받는 요소는 출사지다. 여러 사진 동호회를 기웃 거리며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물색한다. 사진 찍기 좋은 곳?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따로 있고, 사진 찍기 어려운 장소가 따로 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다. 출사지를 너무 글자 그대로 해석한 걸까? 인터넷에서 출사지를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출사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는 곳이었다.

 

이런 멋진 사진이 있습니다. 여기에 언저쯤 가면 당신도 당신의 카메라로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도 출사지는 이해할 수 없는 장소다. 이미 존재하는 멋진 사진을 왜 굳이 시간과 돈을 낭비해가며 똑같은 사진을 찍는가? 정말 그 사진이 작품처럼 좋다면 그 사진을 돈을 주고 구입해야하는 것 아닌가? 나도 저 사진처럼 멋진 사진을 찍었다는 위안감을 얻기 위해 출사지로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멋진 피사체를 갖고 싶어하는 욕망일 지도 모른다. 미국 비평가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2004)‘On Photography’ 사진 에세이에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고 지적한다.

 

 

서울 이화동 벽화마을 꽃계단. 사진 찍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마을 주민들은 벽화 하나를 지우기도 했다.

 

 

사진을 배우면서 출사지에 가지 말아야할 이유는 그 장소에 대한 시선 때문이다. , 출사지의 멋진 사진을 본 후, 그곳에 간다면 먼저 각인된 그 멋진 사진 때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기 쉽다. 다양한 사물의 모습을 바라볼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며칠 후, 머레이는 내게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헛간 같은 관광명소를 물어왔다. 우리는 22마일을 운전해 파망턴 근처로 갔다. 그곳에는 사과 과수원이 있었다. 하얀 담장이 넘실거리는 들판을 따라 둘러져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헛간이란 간판이 나타났다. 우리는 그 헛간에 도착할 때까지 모두 5개의 간판을 봤다. 임시 주차장에는 차 40대와 관광버스가 있었다. 우리는 소들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사진 찍기에 좋은, 조금 높은 곳으로 걸어갔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삼각대, 망원 렌즈, 필터 세트도 갖추고 있었따. 부스에서는 한 사람이 엽서와 슬라이드, 그곳에서 찍은 헛간 사진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작은 숲 근처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지켜봤다. 머레이는 작은 공책에 무언가를 흘려 쓰며 오래도록 침묵했다.

 

아무도 헛간을 보지 않아.”

 

그가 마침내 이야기했다. 또 긴 침묵이 따랐다.

 

일단 헛간을 광고한 간판을 보고 나면, 헛간을 보기는 어려워.”

 

그는 또 다시 말이 없어졌다. 카메라를 든 사람들은 언덕을 떠났고, 그곳은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우리는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 여기에 온 게 아니야. 우리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거야. 모든 사진은 분위기를 강화하지. , 그걸 느낄 수 있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의 축적을.”

 

미국 소설가 돈 드릴로(Don DeLillo)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의 한 장면이다. 소설 속에서 잭과 머레이는 헛간을 사진 찍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그들은 사진을 찍는 사진을 찍고 있어.”라고 말한다.

잭과 머레이는 끊임없는 셔터 소리를 들으며 궁금해한다.

사진 찍히기 이전의 이 헛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서울 방이동 올림픽 공원. 꽃밭 뒤로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유명한 '나홀로 나무'가 있다. 넓은 풀 밭에 나무 하나가 홀로 있다.

 

취재 도중 간혹 시간이 생기면 출사지를 들릴 때가 있다. 사람들이 왜 그 장소에 열광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이 부족한지 나도 출사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찍었던 모습이다. 소설 화이트 노이즈의 등장 인물처럼 나도 반문한다.

 

사진 찍히기 이전의 이 출사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13.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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